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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6. 2015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영원성'

 나를 살게 하는 '고도'

고도는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에서 에스트라공이 '만일 온다면?' 가정했을 때 블라디미르는 '그럼 살게 되는 거지'라고 대답한다.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살게 되는 것이라니... 연극 무대에는 단출하게 두 방랑자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등장한다. 나는 무대 앞의 어두운 곳에 앉아있기만 하면 됐다. 블라디미르의 대사에만 더 집중해 보기로 했다.  



블라디미르(대사 발췌)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오랫동안 속으로 타일러 왔지.

오래전부터 늘 생각해 온 건데...

이제 와서 실망해 봤자 별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고통을 당하는 게 너 하나 밖에 없는 줄 알아?

그래도 그건 오고야 말 거라고 가끔 생각해 보지.

제 발이 잘못됐는데도 구두 탓만 하니.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복음서를 쓴 네 사람.... 그중 한 사람만이 구원받은 도둑 얘기를 하고 있는데,

왜 나머지 세 사람 얘기는 제쳐놓고 그 사람 말만 믿는지 모르겠다니까.

외로워서.

꿈 얘긴 할 것 없다.

너 혼자 삭혀야지.

우리의 역할이라? 그야 탄원자의 역할이지.

고도에게 묶여 있다고?

타고난 대로니까.

근본이야 달라지지 않는 거지.

밤은 영영 오지 않는 걸까?

시간은 멈춰버렸는걸.

기다리는 거야 버릇이 돼 있으니까.

신이 안 나요.                                                                      



그들은 잊었다. 다시 고도를 기다린다. 나머지 세월을 사는 사람들 그들은 기다리는 것과 옛 추억을 떠올리는 일, 배가 고프면 순무를 먹고 밤이 되면 잠이 든다. 모두가 고도를 기다리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고도는 올 것이 확실한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다만 소년이 오면 고도에게 나를 봤다는 것을 알려달라고 전할 뿐이다. 소년은 미래에서 오는 아이 같았다. 형은 과거이며 양떼를 몰고 때론 원망도 받는다. 그들의 모든 것을 멈출 고도란 당연히 죽음... 끝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나 나는 의심 없이 읽어 나갔다. 그들은 메마른 가지에 잎이 돋아나고 그 가지에 목을 멜 생각도 하지만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내일 고도가 오지 않는다면 목을 매자고 한다. 한데 온다면? 그들은 고도가 오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유쾌한 허무주의라고 베케트는 표현하고 있다. 그가 전쟁에서 보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무대에는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목줄이 메인 럭키, 채찍을 들고 럭키를 끄는 포조가 등장한다. 럭키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오고 가는 저항하지 않는 인간처럼 보였다. 에스트라공은 포조가 먹다 버린 럭키의 뼈다귀를 자기가 뜯어댄다. 블라디미리는 인간(럭키)을 저런 식으로 다루는 것에 탄식한다. 여기는 사파리인가? 인간세계인가? 무대엔 이 네 사람이 존재한다. 그중 한 사람만이 구원받는 도둑 얘기(역사)를 나는 믿게 될지도 모른다.



짐을 내려놓지 않은 럭키를 보며 블라디미르는 포조에게 그 이유를 계속해서 묻는다. 포조는 이유를 말해주지만  블라디미르는 럭키를 쫓아버릴 생각이냐고 계속에서 되묻는다. 포조는 이런 녀석은 쫓아버릴 것도 없이 그대로 죽여버려야 하는 건데라고 의미 없이 대답한다. 에스트라공은 뼈다귀를 뜯을 때도 알아봤지만 럭키가 울자 따라 울기까지 한다. 거기다 손수건까지 건네려고 한다! 정말 밉상.. 이런 밉상! 럭키에게 정강이를 차여도 싸다. 그런 에스트라공을 업고 갈 생각을 하는 블라디미르... 이들의 이야기는 대체 뭔가? 내가 생각하는 그 축소판?이라도 되는 걸까?



여기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중절모를 쓰고 있다. 럭키는 숱이 많은 백발이며 포즈는 완전한 대머리다. 모자를 써야지만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무대장치일 뿐? 그들은 모두 광대놀음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뭔가를 아는 척하는 블라드미르, 생각이 없는 에스트라공, 완전히 늙어버린 노인 럭키, 포조는 럭키의 아들처럼 도 느껴졌다.  늙은 부모를 대하는 학대받은 아들이라면 포조와 럭키의 관계가 이해가 될까.. 한편으론 럭키가 모자를 쓰고 읊어대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문명을 소리 내서 말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문화가 없는 인간이란 야만성 그 자체가 아닐까. 모자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을 쓰는 것을 말하는 것도 같았다.

포조 : 당신들은 모르겠지만......끔찍하다고...... 제발 이놈 좀 없어졌으면 좋겠소.....(p53)



럭키의 모자를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가 자기들의 모자와 서로 번갈아 쓰고 벗는 놀이?를 한다. 이후에 포조와 럭키가 한번 더 등장하는데 포조는 장님이 되고 럭키는 새로운 모자를 쓰고 나타난다. 포조를 도와줘야만 될 상황인데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위의 모든 장면을 객석에서 보고 앉아 있으면 우습기도 할 것 같다. 의미를 알아내는 건 너무 어렵고.. 미로 속에 갇힌 것 같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건 나도 저 무대에 서게 되리라는 것이다. 내가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고 방랑하는 동안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죽음을 택하게 된다면 이게 오로지 나의 생이기 때문일까? 이 문명이란 것은 앞으로 전진할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20세기와 21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세상이지만 곧 모두 사라지게 될 뿐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읽는 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졌다고 한다. 작품의 토대가 되는 기다림의 상황은 오히려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음으로 인해 보편성을 띠어 1957년 미국의 샌 퀜틴 교도소에서 공연되었을 때 죄수들은 예상을 뒤엎고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주었고. 그들은 <고도>가 '바깥세상이다!' 혹은 '빵이다!' 혹은 '자유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1960년대 폴란드에서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은 <고도>가 러시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고, 프랑스 통치 하의 알제리에서 공연되었을 당시 땅이 없는 농부들은 그들에게 약속되었으나 아예 실시되지 않은 토지 개혁에 관한 연극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니 나도 내 마음대로 생각해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 속에서 삶과 죽음은 되돌이켜 보면 잔혹하다. 문명의 이기(利己)가 몸서리치게 싫어할만하지 않았을까. 베케트 자신도 1,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레지스탕스 운동에도 가담했고 나치를 피해 도망도 다녔다 그 이후에 쓴 글이다.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무의미.. 그리고 사랑 무엇이 더 있을까... 모든 책의 공통된 주제를 보게 되는 것 같다..



고도Godot가 영어의 God와 프랑스어의 Dieu의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베케트는「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고 했으며「여기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고도란?

고도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할 수 없이 생각은 이어진다. 블라디미르가 그 소년을 통해 고도에게 전해달라고 했던 건 미래의 '나' = 지금의 '나'(익명의 독자)에게 전달된다.


작가의 숙명이란 무엇일까? 그가 기다린게 '나'였다니.... 그가 남긴 작품 속 주인공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계속해서 '나'를 기다려왔다.

살아남은 작품이 되었다. 지금 내가 읽었고 또 다른 고도를 기다릴 것이다. 계속해서 살아남은 작품이 되기 위해....

 

작가의 고도는 '나'였다.(진심 그렇게 믿고 있다.)

베케트가 허무와 무의미로 무장하고 있어도 그 나무 한그루는 기억하고 있다. 사랑했던 추억....


다수의 고도는 다를 것이다. 당신과 나를 살게하는 '고도'는 무엇일까...    


                                


사뮈엘 베케트 Samuel Beckett

사뮈엘 베케트는 조지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와 더불어 흔히 아이랜드 출신 작가 5인방으로 불린다. 그는 스승이면서 친구였던 조이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독특하게 발전시켰고, 특히 소설에서는 내면세계의 허무적 심연이 추구되었으며, 희곡에서는 인물의 움직임이 적고 대화가 없는 드라마 형식화되어 있다. 그의 전 작품을 통하여 세계의 부조리와 그 속에서 아무 의미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절망적인 인간의 조건을 일상적인 언어로 허무하게 묘사하였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어떤 스캔들이나 여성문제로 남의 입에 오른 적이 없으며,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모든 일을 중단하고 칩거하다 그해 12월에 부인 곁을 갔다. 베케트는 부인이 사망하자 여생의 대부분을 부인에 대한 추억을 찾는 데에 집중했다. 부인이 좋아했던 것들을 사 모았고, 사진을 꺼내 정리하는 등 친구가 방문했을 때에도 죽은 부인 얘기 외에는 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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