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더라도 괜찮아
월요일
1. 길게 느껴졌던 어젯밤은 지나가고 다시 밝아오는 아침 해. 오늘 아침엔 가벼운 복장을 하고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왔더니 기분이 좋다. 운동 후에는 아주 아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샤워 시설이 잘 구비된 스튜디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난 수업에 잘 빠지지 않게 되었다. 차로 5분여 거리. 덜 마른 머리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옷을 정리하고, 자고 있는 킴을 살짝 깨운다. 인기척을 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오늘 같은 날에는 자게 놔두고 홀로 간단하고 내 취향의 아침을 만들어 먹는다. 부엌 소리에도 일어나지 못하는 남편. 내심 신이 나기도 한다. 두 가지의 과일, 고소한 원두로 내린 커피, 바게트와 리코타 치즈, 그리고 딜. 빛이 좋은 거실 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한 입 가득 입에 넣었는데. 아. 이 든든한 맛. 이런 날에는 유튜브지!라는 생각이 들어 오래전부터 보고 싶어 나중에 보기에 넣어둔 해외 브이로그들을 꺼내 보았다. 자주 보는 카테고리는 그들의 아침 루틴. 깨끗하고 단정한 아침 일상을 구경하면서 나 역시, 좋은 영향을 얻곤 한다. '나중에 볼 동영상'은 유튜브의 정말 유용한 기능인 듯. 벼루고 벼루든 순간. 나만의 사치와 평온의 시간을 즐기는 이 아침이 근사하게 흘러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JxNswWJDDUU&list=PLdmxSMnA15lW9v6eJ3TOYuRHCeYQPBova&index=3&t=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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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2.
하나가 사라지면 두 개로 늘어나는 걱정.
원하는 것을 찾고 싶어 헤매지만 가끔은 휩쓸리고 몰입해서 길을 잃기도. 북극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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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어느 초겨울의 기록)
3.
오후
어제 남긴 치킨과 새로 구운 토스트와 스크램블. 커피의 이상한 조합으로 늦은 아침을 먹고 (맛있었다!).
출근. 친구에게 물려받은 털신을 신고, 히비스커스 차를 연하게 내려 홀짝대고 있자니 차가운 공기도 조금씩 누그러진다. 뭔가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게 아쉽네. 매니큐어 통을 뒤지니 노란색이 보인다. 이름은 ‘머스터드 레트로’. 조심히 바르고 식히는 중. 손톱에 색을 칠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내 손톱이 좀만 더 짧고 네모났으면 더 귀여웠을 것 같은데. 난 엄지손톱이 좀 큰 거 같아. 딱 1/3 만 줄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그냥 30대로 바뀌고. 계속 시간이 흐르며 나를 관찰하는 시간이 누적될수록. 객관적인 판단력은 높아지고 높고 이상적인 욕심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중. 하지만 그만큼 더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진 자기 평가가 참으로 현실적이어서 말이지요. 욕심은 더 구체적이고 작아지며, 내 머릿속에 자세히 적힌다. 좀 더 편안해지기를. 나로부터!
4. 갖고 싶은 PHAIDON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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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5.
어른이 되면 이렇게.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던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정작 어른이 되고 보니 또 그렇게 할 수 없다. 집안일이란 나 혼자만의 생각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란 걸.
6. 작업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온갖 시리즈, 영화, 책에 마음과 시간을 더 쓰는 중.
7. 아티클 발췌
HomePod 스피커를 홍보하기 위한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3월 5일 유튜브에 올라온 이 뮤직비디오는 일주일도 안 돼 6백만 조회수를 돌파하며 온라인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비주얼로 유명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제작하였고, 영국의 트립합 계열의 가수 FKA Twigs가 피곤한 일상을 뒤로하고 환상적인 음악 세계에 빠져드는 역할을 맡아 연기와 안무를 선보였다. 배경음악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싱어송라이터 겸 래퍼 앤더슨 팩(Anderson Paak)의 ‘Till It’s Over’다.
https://www.youtube.com/watch?v=SwoVLDYjOcc
8. FKA Twigs, 그녀의 노래 중에 아침에 듣기 좋은 곡은 <Water Me>
He told me I was so small (그는 내가 너무 작다고 말해)
I told him "Water me (그럼 나에게 물을 줘)
I promise I can grow tall (더 자란다고 약속할게)
When making love is free" (사랑을 나누는 건 돈이 드는 게 아니잖아)
이 가사를 들으며 난 이유 없이 어린 왕자와 장미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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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9.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밤. 열한 시부터 자정을 넘기는 시간까지의 회포였다. 살짝만 건드려도 우수수 떨어지는 말들의 낙엽수가 터지며. 사실 오랜만이라고 해봐야 1-2주가 전부인데.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새 차가 생겼고, 침대 매트리스를 조금 더 큰 사이즈로 바꾸었고 독서와 휴식을 위한 이지 체어를 샀다. 아 트리도 꾸미던 중이었다! 이런 변화들은 너무 당연한 일이야 라는 생각이 스쳤고 나는 그 작고 사소한 공백쯤은 메꿀 수 있을 만큼 공감하고 서로의 오래된 사정을 알고 있는 관계에 대해 안도와 묘한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 이 감정들을 정의 내리기에 당시에 나는 차분하지 못했고 오랜만에 좀 들떠 수다스러워졌겠거니 했다. 지금에서야 글로 적어가며 서서히 이해가 되는 그랬던 나.
10. 1절 가사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간다. 너무 큰 주제를 잡아서인지 멋대로 써지지 않는 이야기. 기교 부리고 싶다가도 잔잔히 숨어 흘러가고 싶다가도 통통 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 변죽이 심할 땐 잠시 놓아 보는 것도 좋다더라, 누군가 해준 말이 기억난다. 그리하여 쓰게 되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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