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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Dec 17. 2022

책방, 팟캐스트, 그리고 공동체

Korean Literature Now(KLN) 기고 에세이

*한국문학번역원 발행 영문 계간지 Korean Literature Now(KLN)에 기고한 에세이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kln.or.kr/lines/essaysView.do?bbsIdx=1909



언젠가 “황량한 땅에 연둣빛 풀이 자라듯 곳곳에 책방들이 생겨났다.”고 쓴 적이 있다. 내 마음 속 풍경이 그러해서 쓸 수밖에 없는 문장이었다. 동네마다 터줏대감처럼 자리하던 책방들(그 많던 ‘서림’ ‘문고’ ‘서점’ 등)이 낙엽처럼 뚝뚝 떨어져 사라지고, 어느 샌가 책을 사려면 온라인 서점에 접속해야 했다. 그곳은 편리했고, 원하는 책을 빠르게 만날 수 있었지만 그밖에 ‘내가 원하는지도 모르고 늘 기다려왔던 책’을 우연히 만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베스트셀러와 높은 할인율로 판매되고 있는 책이 커다란 목소리로 독자를 유혹했다. 그것은 그것대로 재미가 있었다. 나름의 재미와 함께, 그러나 어딘지 건조함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황량한 땅에 연둣빛 풀이 자라듯 곳곳에 책방들이 생겨”난 것이다.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출판 홍보기획, 온라인 서점 MD라는 직업을 거치면서 가장 크게 체감한 것은 역시 2014년의 일이다. 책을 과도하게 할인해서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덕분에 이전까지는 무료배송과 높은 할인율로 구매자의 편의를 보장하는 온라인 서점과 도무지 경쟁이 되지 않아 사라지던 동네의 책방들이 연둣빛을 내며 조그맣게, 곳곳에 생겨났다. 

나는 신이 났다. 어디에 가든 책방이 보이면 들어갔다. 시장 어귀에도, 천변 산책길 옆에도, 주택가에도, 고궁 옆에도, 꼬불꼬불 골목길 안에도 책방이 있었다. 어느 지역에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그 지역 이름을 붙여 ‘(그 지역)책방’을 검색해보았고, 그러면 반드시 한 군데 이상은 책방이 발견되어, 찾아가곤 했다. 그곳을 중심으로 지역을 탐방하는 새로운 여행법의 시작이었다. 그런 책방에는 그 지역에만 전해오는 독특한 이야기를 담은 독립출판물과 개성 넘치는 큐레이션을 볼 수 있었고, 그것들을 목격하는 것은 자체로 아주 중요한 여행의 추억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사는 동네에도 단정한 책방이 문을 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산책길에 아주 우연히, 갓 문을 연 그곳을 발견했을 때에 내 세계도 또 한 번 새로운 문을 열었다. 그곳에 들어가 (나 혼자 이렇게 불러도 괜찮다면)우리의 만남을 축하하는 심정으로 책을 구매하니 책방의 주인은 놀랍게도 소담한 꽃씨를 선물로 주었다. 파란색 책방 포스터와 함께. 그러고 보니 그때의 만남이 꼭 지금과 같은 계절이었다. 쌀쌀한 바람이 무색하게 미래의 꽃을 품은 씨앗이 따뜻했다. 이 다정한 선물로 나의 독자 생활은 더욱 촉촉해졌다. 어느 때는 꼭 사고 싶었던 책을 부러 그 책방에 주문해서 구매하기도 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한다면 하루 만에도 책을 배송 받아볼 수 있는 때에, 나는 불편을 감수하는 마음이 이렇게나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남몰래 열광했다. 동네 책방이 책과 나 사이에 개별적인 관계 맺기를 가능하게 해주었으므로 그랬다. 

더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소담한 선물이나 즐거운 불편 때문만은 물론 아니고, 책방에서 작지만 단단한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기획되어 바깥을 향해 손짓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가령 이런 것. 코로나19로 모든 대면 모임이 철저하게 막혀버렸던 오래지 않은 시절에 그 책방은 멋진 소설가들이 자신의 ‘작가노트’를 공개하는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대규모 오프라인 북토크라면 불가능했을 기획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작가가 자신의 내밀한 기록이 담긴 소중한 자료들을 많은 사람들 앞에 꺼내놓는 일이라는 것이 안전하지도 않을뿐더러 그 자료가 작가와 멀찍이 앉은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달랐다. ‘줌’을 통해 소설가와 독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연결되었다. 모니터 안에서 작가는 어디에도 보여주지 않았던 희귀한 자료들을 공개했고, 건너 모니터에서 독자는 그 멋진 이야기들을 들으며, 소중한 자료를 살펴보며 자신이 느낀 감동의 이야기를 수시로 채팅창에 전했다. 십 수 년간, 일 때문이든 호기심 때문이든 열렬한 애정 때문이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강연이나 북토크 행사를 꾸준히 경험해온 나는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풍경을 보면서 조금 흥분했다. 어쩐지 자신의 궁금증을 거리낌 없이 질문하는 사람들이 오프라인 행사에는 많지 않고(한국만의 문화일까?), 그래서 행사장 입구에서 질문을 받거나 애초에 행사를 신청할 때 질문을 댓글로 남기도록 해 그것을 북토크 후반의 질의응답 시간에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훨씬 활발하고 자유로운 소통이 이루어졌다. 작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채팅창에 질문이 올라오면 진행자는 수시로 그 질문을 작가에게 건넸고, 답변 받았다. 무대 위의 작가와 무대 아래의 독자가 아니라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 참여자로 작가와 독자가 함께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책으로 연결되고자 한 사람들은 팬데믹 시절에도 어떻게든 만났다. 나 역시 2021년에 한 출판사 플랫폼을 통해 온라인 독서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해외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매달 한 권씩 읽는 모임을 세 달 동안 진행했다. 방식은 이랬다. 진행자인 내가 매주 책과 관련한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기획한 미션 주제를 제시하면, 마감일에 맞춰 참여자들은 모임 게시판에 자신의 글을 올린다. 나는 그 글에 하나씩 댓글을 달며 대화를 나눈다. 무엇보다 관련 뉴스, 함께 읽으면 좋을 글 등을 댓글에 곧바로 남기고 연결시킬 수 있어 좋았다. 휘발되어버리는 대화가 아니라 간직할 수 있는 편지를 주고받는 것 같은 경험이었달까. 매달 마지막 주에는 줌 미팅으로 각자 ‘내가 꼽은 한 문장’을 이야기 하면서 그달의 소설 한 권을 마무리했다. 소설 때문이었는지, 자신의 방에서 일어나는 온라인 미팅 방식 때문이었는지, 그곳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대화는 아주 내밀했고, 뜨거웠다. 어쩌면 만남이 금지된 시기에, 그럼에도 만남을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으로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온라인 독서모임의 온도를 달구었을지 모른다. 


이후 조심스럽게 오프라인 만남이 재개되었다. 손소독제로 방역을 하고, 체온을 측정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사람들은 책방에, 강연장에 모였다. 눈을 맞추고 서로의 몸짓을 읽으며 이야기 나누는 일은 역시 그 나름의 분명한 희열이 있다. 기다렸다는 듯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눈빛은 풀꽃처럼 예뻤다. 감사하게도 내가 사는 동네의 책방(이쯤에서 밝히자면 그곳은 지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책방오늘,’이다)에도 귀한 만남이 열렸다. 특별히 기록하고 싶은 날은 2022년 8월 5일 저녁, 『그 여자는 화가 난다』(마야 리 랑그바드, 난다, 2022)의 ‘메아리낭독회’가 진행된 날이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는 덴마크의 시인이자 국가 간 입양의 당사자인 마야 리 랑그바드의 저서로 2014년 덴마크에서 먼저 출간되고, 8년이 지난 2022년 7월에 시인의 출생국인 한국에서 출간된 책이다. 무려 7년에 걸쳐 쓰였다는 『그 여자는 화가 난다』는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라는 첫 문장을 시작으로 거의 모든 문장이 “그 여자”로 시작해 “화가 난다.”로 끝이 난다. 이 강렬하고 압도적인 책에, 나는 책을 펼친 순간부터 사로잡히고 말았다. 마치 불에 덴 것처럼 붙들렸던 이 독서 경험은 책방에서 열린 ‘메아리낭독회’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날로 깊이 들어가 본다. 여름밤, 책방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진행자가 낭독회의 시작을 알리고, 시인과 통역가가 책방 가운데 자리한 피아노 옆에 마이크를 들고 선다. 가장 먼저 시인이 덴마크어로 책의 한 대목을 낭독한다. 이어 통역가가 한국어로 그 대목을 낭독한다. 다시 시인이 낭독하고, 또 다시 통역가가 낭독. 이들이 낭독하는 동안 피아니스트는 즉흥 연주로 낭독에 함께 한다. 피아노의 음악은 시인과 통역가의 낭독을 따라 고조되기도 하고, 깊이 어두워지기도 하고, 서정적으로 퍼지기도 하면서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숨죽여 귀 기울이는 사람들. 이 순간 이곳의 모두는 화가 난다고 말하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함께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차마 숨도 크게 내쉬지 못한 채 낭독을 들으면서, 나는 “한국의 어린이들을 입양자녀로 받아들인 세계 각국의 양부모들에게 공식적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화가 난다.”(147쪽)고 했던, “세계에서 국민 1인당 한국계 입양인의 수가 가장 많은 국가”(150쪽)인 덴마크에게 화가 난다고 했던 책 속의 화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기를 고대해왔다는 시인이 한국의 독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덴마크어로 자신의 책을 낭독해야 하는 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메아리낭독회’는 참석자 전원의 낭독을 포함하는 것이어서 자리한 모두가 자신이 읽고 싶은 책 속 문장들을 차례대로 읽었는데 그 한국어가 시인에게 어떤 의미일지, 시인의 얼굴을 자꾸만 엿보고 싶은 마음과 차마 바라보지 못할 것 같은 복잡한 마음으로, 그렇지만 이 쏟아지는 감정이 그 자체로 『그 여자는 화가 난다』라는 한 권의 책이 아닌가 생각했고 그 책을 이러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게 된 데에 한없이 큰 행운을 느꼈다. 


행운. 그러니까 역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들이다. 우연히 찾아간 책방에서 ‘내가 원하는지도 모르고 늘 기다려왔던 책’을 만나는 행운이, 전례 없는 격리와 단절의 시절에 온라인을 통해 색다르고 뜨거운 만남을 이뤘던 행운이, 열광하며 읽은 책의 저자를 마침 즐겨 방문하는 책방에서 만나는 행운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책)을 어떻게든 잘 좋아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꺼이 기울이며 해나간 덕분이라는 것. 

이 틈에서, 어쩐지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게 되고, 설명하기 곤란한 긍지를 느끼게 된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꼼꼼하게 목격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쉽게 나빠지기 쉬운 것들 틈에서 좋아하는 것을 공들여 좋아하는 태도를 잃지 않은 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깊은 애정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는 독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은 지난 10월에 5주년을 맞았다. 5년을 돌아보며 느끼는 것은 <책읽아웃>이 이제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가 됐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애청자들을(그 스스로도) ‘광부’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이 이름은 <책읽아웃>과 관련된 다양한 소식들을 서로 바쁘게 공유하며 ‘보석 같은 정보를 부지런히 캐오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첫 방송이 나간 지 꼭 5주년이 되던 지난 10월 19일에는 광부 님 중 한 분이 직접 그린, <책읽아웃> 제작진 아홉 명의 얼굴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그림이 소셜미디어에 연달아 올라왔다. 함께 올라온 ‘광부의사랑을받으세요’라는 해시태그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나. 이런 멋진 이벤트가 처음도 아니어서 나에게는 광부 님께 선물 받은 티셔츠, 스테인리스 빨대, 엽서와 스티커 등 세상에 둘도 없을 귀한 선물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참 아름답다고, 물건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공동체가 되었다고 말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광부 님들은 그동안 자신들만의 소규모 독서모임을 운영하기도 하고, 책 한 권을 함께 돌려 읽기도 했다. 그나저나 책 한 권을 돌려 읽는다니. 대단히 특별한 독서법이다. 이는 각자의 생각과 전하고 싶은 메모가 담긴 책을 받아 읽고, 마찬가지로 나의 생각과 메모를 적어가며 책을 읽은 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인데 그렇게 책에는 점차 손때가 묻어간다. 책이라는 물건에 읽는 이의 역사를 새기면서 책 한 권이 <책읽아웃> 공동체 사이를 여행하는 것이다. 책의 여행.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그 책을 생각하면서 이 책이 <책읽아웃>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을 투명한 실로 엮어주고 있다고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그 책이 더 멀리, 더 오랫동안 사람들을 만나길 바라면서. 


문학적 경험을 얘기하는 지면에서 결국 사람을 만나는 경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여기, 점점 책 읽는 인구가 줄어든다는 뉴스를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는 이곳에서 놀랍도록 적은 수의, 한 줌의 가만한 ‘책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마음을 다해 만나기 위해 애쓰고, 자신의 마음을 나누려 고민하고, 그 바람이 하나의 커다란 원이 되어서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도 서로를 지켜준다는 사실이야말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가장 특별한 문학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자신을 마주한 사람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그제야 비로소 작은 목소리들을 용기 내어 발화할 때 일어나는 파동이야말로 참혹한 소식들에도 완전히 좌절하지는 않을 수 있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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