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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K Sep 22. 2015

흔한 독일인의 여행법

가을이다. 저녁 9시가 넘어도 밝았던 해의 길이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진 공기와 울긋불긋 푸르름을 머금은 나뭇잎 사이로 단풍이 드는 것을 보면 분명, 여름은 지나간 것 같다. 


독일에서는 해가 참으로 귀하다. 여름을 제외하고는 맑고 쨍한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더위를 싫어하는 나도 독일의 여름을 기다리게  된다. 이곳의 여름은 한국처럼 끈적임도 없고, 직사광선만 피하면 서늘하고 기분 좋은 날씨이다. 이와 더불어 여름을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는 긴 여름 휴가 시즌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법적 유급 휴가는 연간 30일이다. 이와 더불어 공휴일과 추가 근무에 따르는 휴가를 합하면 훨씬 더 많은 날을 휴가로 얻는 셈이다. 독일인의 연초 계획의 첫 기준은 단연코 여름 휴가와 크리스 마스 휴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보통 7월, 8월은 여름휴가 기간이라서 이 시기에 만약 유럽에 있는 회사와 미팅을 잡거나, 이메일을 보낸다면 답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독일 유력 뉴스잡지 Focus가 독일 평균 관광객(Urlauber)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휴가를 가는 사람들의 월 평균 소득은 2000-3000 유로로 나타났다.  배우자나 파트너와 혹은 자녀는 1.5명을 둔 가족단위로 휴가를 즐기는 것이 보통의 독일 휴가객의 모습이다.  독일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여행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여행 전

사진: Fotolia

독일인들에게 새로운 장소를 가는 것은 설렘과 함께 새로운 위험요소를 만나는 일이다. 모든 것이 컨트롤 가능한 것을 선호하는 많은 독일인들은 이러한 요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여행 전부터 철저한 준비를 한다. 평균 18시간의 인터넷 정보 비교 및 검색을 통해 약 74일 전에 예약을 마치고, 관광지 관련 서적을 사서 미리  여행지에 대해 숙지하며, 목적지까지의 길을 종이에  인쇄해 놓는다. 만약 북유럽과 같은 비용이 많이 드는 여행지라면, 현지에서 필요한 각종 식료품을 챙긴다. 나도 이번 여름 휴가를 노르웨이로 다녀왔는데, 독일인 신랑과 둘이서 자동차로 이동하였고 쌀, 빵, 파스타, 전기밥솥 등 식료품을 챙겨갔다. 북유럽투어를 할 예정이라고 말을 했더니 주변 독일 친지들이 음식 및 필요한 것들을 하나 하나 짚어주며 꼭 챙겨가라고 당부를 하였던 터이다. 덕분에 치명적인 물가 속에서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지만, 숙소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눈빛은 왠지 '너 독일에서 왔지?'라고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 외에도 독일인들은 휴가를 갈 때에 잘 갖추고 준비된 관광객에 속한다. 간단한 언덕을 가더라도 특수소재 등산복, 등산신발, 각종 필요 장비, 만약의 만약을 대비한 응급약 등을 철저히 준비한다.


여행지에서

당신이 만약  유럽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을 위해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면 독일인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탑승 안내방송 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았다면 대부분 독일 사람들일 것이다. 보통 그렇게 줄을 서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유도 모르고 오랫동안 서서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명 시간이 남은 것을 아는 데에도 그렇게 줄 서 있는 독일인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줄을 서게 된다. 

사진: HolidayCheck

한국과 독일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 한국 버스에는 가방 던지는 아주머니가 있다면, 독일에는 수건으로 영역을 표시하는 아저씨가 있다! 처음 독일에 와서 놀란 일은 많은  독일 사람들은 휴가지에서도 일찍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시간과 돈을 들여 휴가를 왔으니 최대한 관광을 하고 싶은가 했지만, 이유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일전에 업무차 베를린에 간 적이 있는데  나와 같은 방을 쓰던 일행 중 한 명은 새벽 6시에 알람을 맞추어 놓은 것이다.  알람 소리에 일어난 일행은 수건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빈 손으로 나타났다. 그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충분히 수면을 취한 후 일어나 아침을 먹고, 여유롭게 가장 붐비는 시간에 호텔 수영장에 들어가 누군가가 펼쳐 놓은 수건 위의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이유는 이 자리를 맡아놓기 위함이었다니! 참으로 당황스러웠지만 조사에 따르면 47%의 독일인들이 이와 같이 수건으로 자리를 예약하는 부지런한 습관이 있다고 한다. 


유행은 다시 돌아오는 거야!

사진: HolidayCheck

당신이 만약 관광지에서 흰색 양말에 샌들을 신은 사람을 만났다면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들은 패션의 선두주자, 독일의 아저씨들이다. 최근 들어 이런 패션이 다시 유행한다고 하는데, 역시 패션은 돌고 도는가 보다. 여름 휴가지에서 만나는 독일 아저씨의 패션은 한결같다. 약 35%의 남성이 휴가지에서 양말+샌들 믹스매치(Sandalen-Socken Kombi)를 즐긴다. 그들의 패션 철학 또한 명쾌하다. 빨리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해변가를 걷다가 모래가 들어가면 양말을 벗으면 되고, 시내 관광시 많이 걸어서 발에 땀이 차면 양말이 흡수시켜주니 이 얼마나 쾌적하고 효율적인가! 


여행 후

휴가 다녀온 후 5명 중 1명의 독일인은 휴가 예약 홈페이지에 자신이 묵은 호텔 및 서비스를 평가하고 경험 공유한다. 한 번 좋은 호텔 발견하면 다음에도  같은 호텔로 돌아가는 충성고객 비율은 40.1%에 달한다. 이와 더불어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독일인들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이를 추려서 인쇄를 해 종이 앨범에 자신의 여행앨범을 만들어 간직한다. 이렇게 만든 여행 앨범은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여행의 추억을 되새긴다. 


여행의 의미. 우리는 어떻게 여행하는가?

독일과 한국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 비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의 여행 준비 과정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우리는 여행을 가서 사진 찍고, 쇼핑하는 것에 바쁘다. 여행을 다녀온 후 사진은 많지만 다녀온 유적지나 성당의 이름 혹은 역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또한  그중 한 명이다. 


이런 나를 반성하게 만든 것은, 독일인들의 여행 태도를 보면서였다. 이들은 사진 찍는 것보다 여행 가기 전 미리 여행지 관련 책을 사서 공부하고, 현장에서는 그 내용을 되뇌며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려 한다. 여행 중간 휴식을 취할 때에는 인터넷 보다는 책을 읽는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읽을 책을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사진을 정리, 앨범을 만들면서 여행의 전 과정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다들 바쁘게 살아간다. 이러한 복잡함 속에서도 조금만 노력을 한다면 우리가 가는 짧은 여행 속에서도 그 가치를 두 배, 세 배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법의 여행을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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