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과 숫자
episode 1.
길을 잃은 여행객이 지나가는 독일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 행인이 답하기를,
"여기서 약 150m 걸어가신 후에 오른쪽으로 꺾으시고, 약 350m만 걸어가시면 왼쪽에 있어요."
episode 2.
나의 독일인 친구.
"나는 쾰른에서 약 35 km 떨어진 곳에서 왔어. 아주 작은 도시이지. 인구 수는 약 60,000명 정도야."
episode 3.
나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독일 친구들은 하객을 상대로 퀴즈를 냈는데, 그 질문은 '서울과 독일인 남편의 시골 고향의 거리'이었다. 아무런 힌트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독일인 하객들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자신들의 모든 지식을 총 동원하며 문제를 풀어 나간다.
'비행기가 1시간에 날 수 있는 거리는 대충 xxkm이니깐 대충 서울까지는 xxkm이지 않을까?'
이에 반해 나의 가족과 한국인 친구들은
'거리? 뭐 대충 비행기 12시간 타고 차로 3시간 달리면 오는 거리지.'
독일에 살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당황스러운 경우는 바로 이 순간, 숫자와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이다. 당황스럽다. 왜 다들 이렇게 몇 km, 몇 m 등등, 정확한 숫자로 이야기하는지 말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 또한 그 숫자와 관련되어있다. 서울의 인구수와 면적은 얼마나 되는지, 한반도 면적과 심지어 제주도의 크기와 인구 수까지 묻는다. 심지어 서울에서 베이징, 도쿄 까지의 거리를 묻는다. 이제는 너무도 많은 질문을 받아서 서울의 인구수와 면적의 크기 정도는 머리 속에 기억해 두고 있다. 역사와 관련된 년도, 제일 높은 산의 지상에서부터의 높이, 서울 근교 도시에 대한 정보를 세세하게 물어본다.
얼마 전 재미 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중국인 Yang Liu의 작업 'Ost trifft West'(동양이 서양을 만나다)에는 간단한 그래픽으로 동서양의 인식의 차이를 표현한다.
당신은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파란색은 서양, 빨간색은 동양인을 상징한다고 한다. 파란 쪽은 직설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기본적 성향인 독일인을 상징하는 것 같고, 두리뭉실한 빨간 쪽은 나를 보는 것 같다. 모든 것이 가능하면 정리되어있고, 정확하고 딱 들어 맞아야 하는 성미의 독일인을 설명하기에 좋은 자료인 것 같다.
독일어를 배울 때 왜 독일의 숫자는 왜 뒤에서부터 거꾸로 세는지에 대해 선생님께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선생님은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답하시기를,
"독일 사람들은 정확한 것을 좋아해요. 옛날에 글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쓴 방법이었고 숫자를 일의 단위부터 세어야 상거래시에 정확하게 산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만약 숫자를 위에서부터 세면 뒤에 뭐가 나올지 모르니깐 불안하잖아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설명이다. 그 오래전부터 독일인들은 예측가능성과 정확함을 추구했던 것이다. Alles in Ordnung?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숫자가 싫어 문과를 선택한 나인데, 이곳에서 살려면 이 숫자들과 친해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