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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Apr 08. 2018

66 사이즈인 나, 레깅스가 잘 어울리는 외국 여자

두 몸매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논하시오.

written by 집순이


몇 주 전, 갈라파고스에서 티셔츠를 한 장 샀다. 갈라파고스에 사는 희귀 새 푸른 발 부비새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하늘색 반팔 티. 어떤 사이즈를 살까 고민하다가 S 사이즈를 집었다. 내 인생에 몇 없는 S 사이즈 쇼핑. 평소라면 자신 없이 M, 혹은 마음 편히 L을 샀을 것이다.


여행하면서 체중이 조금 줄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내 몸이 그렇게 큰 편은 아니니까 S 사이즈도 시도해보자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이 말은 평소에 내가 내 몸을 큰 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하지만 돌아다녀보니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체형들이 존재했고 그 속에서 난 체구가 큰 여자보다는 키 작고 근육량도 적고 뭔가 아담한 느낌을 가진 여자들 쪽에 더 가깝게 속해 있었다. 뭐, 이건 절대적인 팩트라기보다(내가 세상 여자 모두를 만난 게 아니니까.) 내가 다닌 유럽, 남미, 북아프리카 여자들 틈에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

한국에서 나는 거의 평생에 걸쳐 "너 다이어트는 언제 하려고?", "어이구, 팔뚝 봐라. 허허.", "너는 '그래도' 짧은 치마 잘 입고 다니는 편이잖아." 식의 말들을 들어왔다. 엄마는 "난 너한테 뭘 많이 먹인 게 없는데 뭐 때문에 이렇게 통통해졌지?" 종종 물었고,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을 그만 먹으라며 도중에 뺏었고, 그 음식을 남동생이 막 먹었고, 나는 서러웠고, 그렇게 결혼 전까지 살았고, 결혼으로 자유를 얻자마자 살이 막 불었고... 어머 구질구질한 얘기다.

어느 날은 내 몸이 싫고 어느 날은 내 몸을 매력적이라 느꼈지만 둘 중 어느 쪽도 남들에게 쉽게 혹은 자주 얘기하지 않았다. 남들이 자기 몸매를 비하하면서 한도 끝도 없이 자아비판을 하는 게 듣기 힘들 때 "나는 내 몸이 그렇게 싫은 건 아니야. 만족해." 얘기하고 더 이상의 멘트는 하지 않으려 했다.

66 사이즈를 입는 나는 한국에서 사회적 비만인에 속한다. 보아하니 또 의학적(?)으로 규정된 비만인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본인들 딴에는 그렇다고 우기는) 가벼운 농담과 조언을 막 던지기 적당한, 사람들 대화 속에서 상처를 받아먹기 좋은 그저 그런 몸매다. 예전엔 그런 말들이 상처였지만 이젠 상처받지 않는다. 이야, 아직도 이런 말을 막 던지는 애가 있어? 정도로 생각하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몸매 얘기든 타인의 몸매 얘기든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영어권 사람들에게

"How are you?"

"I'm fine." 인사가 있다면, 한국인에겐(특히 여자에겐)

"야, 너 왜 이렇게 살 빠졌어?"

"뭔 소리. 나 쪘어. 네가 더 빠졌네." 인사가 있다. 어떤 이는,

"오, 너 얼굴 되게 좋아졌네?"

"그...래?"로 찝찝한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차라리 "오늘 구름 참 예쁘지 않아?"로 시작하자. 만나자마자 저 멀리서부터 그날의 미세먼지 지수 외치면서 정보성 있는 인사를 나누든가. 뭐라도 다른 인사를 찾아내자. 몸매 애기는 너무 지겹지 않니. 진짜로.


"넌 젖살 언제 빠져?", "살 빼고 싶은 생각은 없니?", "너는 아기 코끼리 닮았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여자들이 몸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몸매만 죽어라 관찰하고 관심 갖고 자아비판한다는 걸, 해외에서 그렇게 살지 않는 외국 여자들을 보며 종종 깨달았다. 내가 제일 질투하는 외국 여자가 누구인지 아는가? 예쁜 여자도 아니고 예쁜 몸매의 여자도 아니다. 길거리에서 조깅하는 여자다. 그 여자의 몸매가 어떻든 간에 부럽다. 뭐랄까, 몸매와 더불어 몸을 신경 쓰는 사람처럼 느껴진달까. 꾸준히 자발적으로 뛰는 여자라니. 진짜 되고 싶은데 진짜 하기 싫다. 아, 부럽다. 난 아마 안 되겠지...

어떤 의미에선 나만큼 멍청하게 자아비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뛰든지, 아님 질투를 말든지. 운동하든지, 운동하고 싶은데 하기 싫다고 징징대지 말든지.


몸매를 수식하는 말이 뚱뚱하다, 통통하다, 날씬하다, 말랐다 정도라고만 생각하며 살았던 것을 반성한다. 내가 쓰는 말이 내 사고를 지배하고 통제해왔다. 무의식적으로 세상에는 저 네 부류의 몸매만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왔다.

몸매를 수식하는 다른 말들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런 걸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몸매라는 주제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몸매를 가지고 있다.' 정도가 어떤가 싶다. 너는 네 몸매, 나는 내 몸매로 살고 있다는 것 이외에 다른 건 필요 없는 것 아니야? 어떤 수식어든 그 말에 일종의 가치관, 판단이 묻어있는 느낌이 든다. 내 몸매나 남의 몸매에 더 이상 아무 가치도 부여하고 싶지 않다. 몸매는 그저 몸의 태, 그 이상은 아니야. 누군가의 몸을 판단하고 있는 나 자신이 느껴지면 딱 그 상태에서 중지하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 굳이 언어나 위아래를 훑어보는 눈빛으로 상대방 마음속에 '몸매'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지 말 것. 그것 말고 상대방과 이야기할 주제가 단 하나도 없는 게 아니라면.


한국에선 즐기지 않았지만 돌아가면 자주 입고 싶은 옷, 나시.


아르헨티나 여행이 내게 준 가장 좋은 기억이자 친구인 xenia는 아르헨티나 사람들 사이에서 비만이 아주 큰 사회적 문제라며, 한국은 어떻냐고 물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체격이 꽤 큰 사람들을 많이 봤었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비만 문제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쨌든 "한국에도 그런 문제들이 있지."대답했다. xenia는 그렇냐고 고개를 끄덕였고 이야기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그때 난 겉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여기에서는 비만이 아닐지 몰라도 한국에선 비만이란다. 사람들은 내가 짧은 치마나 원피스, 핫팬츠 좋아라하며 입는 걸 보고 '얘는 얘 몸매에 어느 정도 자신 있어 하니까.'라고 말해. 그걸 건강한 마인드라고 말하는 애도 있고 이상하게 입꼬리 올리면서 웃는 애들도 가끔 있어. 내가 단지 그 옷을 입고 싶어서 입는 거라고 생각하는 애가 몇 명이나 될까? 왜 다들 66 사이즈 여자는 몸매 드러나는 옷을 자신감으로 입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나조차 이 글의 첫 부분에 '평소라면 자신 없이 M, 혹은 마음 편히 L을 샀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자신감이 아니라 취향으로 입은 거라고 얘기하고 싶다. 재수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근데 그건 또 왜 재수 없는 거야..'


66 사이즈인 나, 레깅스가 잘 어울리는 외국 여자.

두 몸매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논할 게 뭐가 있니.

정답은 "없다."


스페인 옷가게에서 마주친 마네킹. 예쁜 몸매는 무엇일까. 그 말의 존재 목적은 무엇일까.



* 여행 기록
집순이 인스타 @k.mang
지랄방구 인스타 @changyeon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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