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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Jun 05. 2018

뭘까, 여행.

놀고먹으면서 막 대단히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하는 척, 하려는 중.

written by 집순이


여행자로서 인터넷에 사진 올리고 글을 적는 게 가끔 찝찝할 때가 있다. SNS가 결국 무언가를 자랑하는 장이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여행 사진이나 여행기를 올리는 게 누군가에겐 부러움도 벗어나 질투도 벗어나 분노를 유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에겐 돈지랄처럼 느껴지거나 저급한 행동(특히 멋진 배경 앞에서 셀카 찍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아예 신경 쓰지 않거나 배려하는 일, 둘 다 내겐 어렵다.

칸쿤을 여행하면서 인스타에 썼던 글 중에 "칸쿤은 베트남, 발리, 보라카이처럼 몇 번이고 다시 갈 여행지는 아니다."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쓰고 나서 내내 찜찜했다. 내 지인들도 마찬가지고 이 세상에 발리를 한 번도 못 가본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뭘 칸쿤이 어쩌고 저쩌고 거들먹대면서 유난을 떨고 앉았나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내 글과 사진이 어떻게 읽히고 해석되고 있는지 궁금하면서 한편으로는 진실을 알고 싶지 않다.


역시 모든 리뷰는 "나는 좋았다/나는 별로였다" 정도가 깔끔하다. 칸쿤 좋은지 안 좋은진 직접 가셔서 판단하시라.


우리의 여행은 나와 창연만 온전히 평가할 수 있지만 내가 웹상에 남긴 여행기는 다른 사람들이 평가 내린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내 기록물에 대한 평가가 나 자신을 향한 평가라는 생각도 든다. 세계 여행을 자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랑할 수야 있지. 그런데 나라는 사람이 늘 내 인생을 자랑하는 사람,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고 평가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돼버리는 건 다른 얘기다. 아니, 같은 얘기인가? 자랑하는 사람인가 나는? SNS는 왜 하지? 브런치는? 꼬박꼬박 글 앞에 여행 D+날짜 적어가면서.(부끄럽다 이것도)


SNS와 인생 자랑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다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언젠가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서 SNS에 다른 사진 없이 아이 사진들만 올리는 부모들이라는 주제가 화두에 오른 적이 있다.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부모들 입장에선 굉장히 마음 아프고 보기 힘든 사진이라고.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목사님은 부모가 자식 자랑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 인생에 자식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면 그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라고.(이것도 정확한 워딩이 아님. "그건 슬픈 일이지."라고 하셨나?)

내 여행기가 가끔씩 나를 괴롭힐 때 목사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SNS에 하나의 주제밖에 올릴 수 없는, 자랑할 게 그것밖에 없는, 자랑에 스스로 함몰되어 있는, 자랑거리를 전시하는 그런 상태를 경계해야지!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하나의 주제밖에 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있지 않는가 라는 마음이 들면서 약간 머뭇머뭇거린다. 육아밖에 할 수 없어서 육아 사진밖에 올릴 게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

인생이란 게 너무 복잡해서 한 시각만으론 결단코 정의 내릴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게 있다. 결국 나는 머뭇머뭇 대며 SNS에 여행기를 올린다. 인생은 모순이고 사랑은 비둘기여라.(feat. 이소라 <바람이 분다> 중, '사랑은 비극이어라')


세상 행복해 보이지. 그런데 다음 날 우리는 좌절하고, 울었다. 뭘까, 여행 사진.




[번외 편]

(진짜로) 뭘까, 여행.


1)

적은 경비만으로 세계 여행을 할 수야 있지만 '여행으로 날려도 되는 적은 돈'이란 없다.

나와 창연의 여행 경비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건 어쩌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합리화일지도. 사실 어마 무시한 돈이지. 1년 동안 500만 원, 78만 원으로 여행 다니는 사람들 실제로 있다. "그러니 당신도 갈 수 있다! 당신에게 78만 원이 있다면!" 말해선 안 된다. 1년 동안 소비하는 게 딱 그 정도일 리 없으니까. 여행을 가지 않고 그 기간 동안 벌 수 있는 월급 전체를 포기해야 되는데. 총 여행 경비와 여행하는 데 들인 시간, 커리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된다. 여행은 돈 없는 사람도 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돈 없는 모든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그런 문제는 아니지.


2)

여행의 목적이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몇 걸음 떨어지기, 몇 템포 쉬어 가기라면 그걸 이루기 위해 꼭 세계 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그걸 이룰 수 있는 각자의 쉴 곳, 쉼터가 허용되는 사회였음 좋겠다. 세계 여행을 추천은 하지만 인생에서 한 번은 무조건 해야 하는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휴학이나 퇴직, 국내 여행, 지옥 같은 사람 정리하는 것 등등 각자의 커다란 쉼터를 만들어 내는 게 또 다른 이름의 세계 여행일 수 있다 생각한다.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멋지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1년 휴학하기로 했다는 학생에게 "휴학하고 뭐 하려고?" 묻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서로의 여행을 응원했으면.



* (그놈의)여행 기록
집순이 인스타 @k.mang
지랄방구 인스타 @changyeon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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