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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Jul 02. 2018

D+4. 한국 생활 시작

첫 주부터 이래 너.

written by 집순이


D+4.

한국에 오기 싫었겠다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생각보다 오기 싫진 않았다. 일 년은 그렇게 짧은 시간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빨리 돌아오고 싶지도 않았다. 일 년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기분 좋게 돌아가기 적당한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377일이 나는 무지하게 궁금한 것이다.


돌아온 한국은 내게 몇 가지의 답을 던졌다. 한국에서의 생활이라는 게 무엇이었지, 한국에선 잠을 설치는 밤이 잦았는데 밖에선 어떻게 그렇게 푹 잘 자고 다녔지 같은 묻지도 않은 질문들에 따라오는 답.

한국에서의 생활이라는 건 이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과(이건 아직 시작 전이니까 덜 와 닿고) 인간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걸로 러프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것 같다. 다들 "이제 어떻게 할 거야?(=뭐 먹고 살 거야?)" 묻는데 의외로 나는 한국에 오고 나서 돈벌이보다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더 많았다. 외국에서도 인간관계 하긴 했지, 깊지 않은 관계.

지금부터 하는 관계 맺기가 진짜다. 가족들과 지인들 몇 명을 만났는데 나도 모르게 내가 말실수할까 봐 계속 조심하고 저 사람은 지금 컨디션이 어떤가 살피고, 집에 돌아와서도 창연한테 "내가 아까 말했던 거 있잖아, 그거 그 사람이 듣고 기분 안 좋아했던 것 같은데?" 말하고 있더라. 창연은 늘 그렇듯 "그걸 누가 기분 나쁘게 듣냐? 네가 오버하는 거야."그러면서 내가 또 유재석처럼 남들 다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관계라는 게 원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이런 거야 뭐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낫띵은 아닌 거잖아.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줬다더라, 상처를 받았다더라 라는 얘기들을 지인들에게 들으면서 이게 진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내가 어려워하던 거였지, 그동안은 할 일 별로 없었던 것. 상처 주고 상처받고 그런 상황들.

쿨하고 대범한 인간관계를 원하는데 쉽지 않다. 좋아하는 사이라 더 그렇다.


아빠는 며칠 전에 나에게 삐졌었다. 내가 한국에 도착한 그 당일에 아빠에게 전화 안 해서. 내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전화한 건 엄마였다. 엄마는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빠에게 "소망이 인천 도착했대."라고 전했고. 그런데 그때 아빠도 다른 사람이랑 통화하고 있던 상황에 들으신 거라 귓등으로 듣고 넘기신 거다.

그날 밤, 아빠가 주무시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엄마한테 내 얘기를 듣고는 "걔가 도착했다고? 언제? 어떻게 하루 종일 전화를 안 할 수가 있어?" 그러고는 엄마한테 등을 훽 돌려버리셨다고 한다.

다음 날 엄마에게 카톡이 두 개 날아왔다. <아빠한테 전화 한 통화!>, <도착했다고 전화했어야 하는데>

이게 뭐야, 하면서 전화해보니까 아빠 숨소리에 이미 서운함이 가득했다.

"너도 이제 나이 들어서 알 만한 거 다 아는 나이인데, 부모가 일 년이나 걱정을 했으면 돌아오자마자 전화를 해야지, 어? 어떻게 너도 그렇고 임서방도 그렇고 아무도 전화를 안 하냐."

나는 백 번 천 번 이해하고 내가 잘못한 거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아빠가 왜 그러지 싶었다. 내게 표현을 요구하고 애정을 요구하는 아빠는 너무 낯설다. 약간 겁이 났다. 이제까진 내가 부모님에게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엄마한테만 얘기하고 아빠는 엄마 통해서 듣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아빠가 이제 나와 아빠의 일 대 일 살가운 관계를 원한다.

아빠는 예전보다 날 사랑하는 티를 더 많이 낸다. 결혼하고 더, 여행하고 더.

그게 사실 아직도 조금 낯선데 아빠랑 전화하면서 느꼈던 그 감정의 정체가 내가 친구 사이에서도 기피하던 거라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꾸덕꾸덕하고 약간 겁까지 나는 감정. 아 나한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구나, 나보고 애정 표현하라고 얘기하는 거구나. 으악. 싫은 건 아닌데 그렇게 해달라는 말을 듣는 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간지러운 느낌이야.

그럼에도 이런 상황들이 영 특이한 상황은 아닌 거잖아,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일 년 동안 나한테 섭섭해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사랑해주는 가까운 사람이 창연 혼자였는데 이젠 사람들이 확 늘어난 것뿐이지.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건 이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는 그들 때문에 매우 행복했다가도 때때로 마음 어렵고 기피하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올 거라는 걸 뜻하는 거였다. 안 하다가 하려니까 아주 조금 빡빡하다. 첫 주의 어려움이 이런 것들이라니. 의외다. 여행병이 다 무어냐. 치고 들어오는 감정들이 많아서 그럴 틈도 없더라. 이제 곧 오겠지만.


집순이는 역시 집에 있을 때 가장 안정적이다.




* 여행 이후의 삶, 그리고 아직 남은 여행 사진들
집순이 인스타 @k.mang
지랄방구 인스타 @changyeon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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