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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환 Feb 17. 2021

표지석 따라 걷기

표지석을 따라 걸으면 공간과 시간, 역사를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 중구·종로 일대는 새로 지은 고층빌딩과 도심 재생사업으로 새롭게 단장한 건물, 노포, 적산가옥, 재개발을 기다리는 낡은 건물이 뒤섞여 있습니다. 

종로, 을지로, 퇴계로를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무릎 높이 정도에 표지석이 있습니다. 표지석에는 과거에 그곳에서 ‘언제, 누가, 무엇을 했다’는 설명이 간략하게 적혀있습니다. 


표지석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관심을 가지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표지석에 관심을 가진 건 십 수년 전부터 입니다. 출사지에서 자꾸 제 눈에 표지석이 보였습니다. 자주 가는 출사지는 고궁, 정동길, 청계천, 서대문형무소, 대학로, 이화마을, 낙산 한양도성, 북촌, 서촌이었습니다. 


최근에는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익선동과 을지로 일대 골목과 세운상가도 자주 갑니다. 출사 수업을 한 장소는 대부분 서울의 강북 도심과 과거에 한양도성 주변으로, 이곳에는 유난히 표지석이 많습니다.


명동성당 건너편에 윤선도 집터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이 있었던 자리에 2020년에 유리로 된 건물이 들어섰다. 표지석이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


표지석을 유심히 보게 된 후에는 습관적으로 표지석과 주변의 모습을 촬영했고 표지석에 적힌 사건과 인물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 공간의 역사에 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는 ‘이걸 다 언제 외우나’라고 생각했는데, 역사 속 인물이 살았던 장소와 사건이 일어난 곳을 직접 다녀오면 외우지 않아도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조금 과장하면, 우리 조상의 경험이 표지석으로 연결되어 저에게 이식된 듯했습니다. 이런 걸 입체적인 역사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이론가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현재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과거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표지석으로 공간을 바라보면 역사를 더 깊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장소에 직접 찾아

다닌 경험 덕분에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공간이 전하는 인문학이자 인류학, 역사학입니다. 이런 이유로 공간의 현재와 과거를 바라보는 방법으로 표지석을 따라서 걸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출처 : 정도환 지음,《표지석 따라 걷기》, 2021, 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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