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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환 Dec 03. 2021

표지석이 유난히 많은 수송공원

표지석을 따라 역사의 현장을 걷고 싶다면 제일 가봐야 하는 곳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종로구 수송동과 견지동 사이에 조계사가 있습니다.

인사동길 방향이 견지동이고 광화문 방향이 수송동입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은 한성부 중부 수진방(壽進方)에 속한 마을로 수진동, 수동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개국 공신이 된 정도전은 서울의 마을 이름을 지었는데 이 일대를 "오래 장수할 곳"이라는 뜻에서 "수진방"이라고 정했다.  
1924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수동(수진동)과 송현동(松峴洞)을 합하여 이름을 수송동으로 바꿨었습니다.

송현동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나중에 중앙청 건물로 사용)에서 안국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정국로에서 보이는 조개사 뒤편으로 나가면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너비로 길이 나 있습니다. 그 길 건너에  연합뉴스 사옥이 있습니다. 

조개사와 연합뉴스 사옥 사이에 작은 공원이 있는 데 그곳이 수송공원입니다. 

수송공원은 연합뉴스 사옥을 비롯하여 큰 건물 여럿이 에워싸고 있어서, 이 근처를 자주 지나다녔어도 큰 길로만 다녔다면, 이곳에 공원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표지석을 따라 역사의 현장을 걷고 싶다면 제일 먼저 수송공원을 가봐야 합니다. 지도에는 ‘수송공원’ 또는 ‘보성사 터’로 표시됩니다. 

수송공원은 보성사 터이면서 중동학교 터,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 , 신흥대학 터, 숙명여학교 터입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명종의 장남 순회 세자가 책봉을 받고 13세에 세상을 떠난 뒤에 세자빈의 속궁 ‘용동궁’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대한매일신보 창간사옥 표지석 - 수송공원


보성사 터 표지석 - 수송공원


신흥대학 터 표지석 - 수송공원

근대 화가 고희동(간송 전형필의 휘문고보 스승)과 안중식이 이 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는 표지석도 있습니다.

요즘은 운동장 없는 학교도 많다지만, 웬만한 학교 운동장보다 작은 규모의 공원에 이토록 표지석이 많은 이유는 시간 대를 달리해서 여러 건물이 들어섰고 그 건물에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굵직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후대에 이 곳에서 일어난 사건과 장소를 기억하기 위해서 흉상과 안내판, 석상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수송공원의 조형물과 표지석은 한 사람이 기획해서 만든 게 아닙니다. 

그곳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과 단체에서 저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서로 다른 시간에 각각 기념물과 표지석을 설치해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수송공원을 종합해서 설명하는 안내판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좋은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이전에 설치한 기념물과 표지석에다가 장소에 관한 설명이 하나 더해질 뿐이라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출처 

정도환 지음,《표지석 따라 걷기 : 책을 만들던 곳, 책을 팔던 곳, 가르치던 곳》, 2021, 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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