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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토타입L Jan 02. 2019

Carry on, carry on

年記2018

수공업을 해보자고 책상에 원래 있던 것들을 한켠으로 비좁게 밀어붙이고 겨우 뭔가 시작할 공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새해를 맞이해야 할 시간이다.

오늘은,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떠났거나 떠나는 중인 사람(들)에 관해 (그리고 그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성장하는 어른이라면 모름지기 정직해야 하므로. 고요하고 정직하게 그해 받은 것들과 그것들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1.


바깥에는 바람이 불고 있고, 저물며 떠난 태양은 정해진 시간에 다시 뜨겁게 돌아온다. 자연의 꾸준한 약속이행은 큰 위로다. 대기나 천체에게 의지가 있을리 없지만, 어쩌면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의 세계는 다르다. 약속할 수 있는게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약속한 듯이 사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노력으로 열매를 약속할 수 없고, 밤새 내린 그물이 아침까지 비어있기도 하고, 간절함과 사랑이 아이를 약속해주지 않고, 매일 찾아오던 사람들 중 일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2.


가을이 되고 단풍으로 화려할 한국의 산들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고 있을 때, 소식을 받았다.
그의 죽음에 대해 나의 일상이 무너지는 것으로써라도 애도를 표하고 싶었다. 애도의 대상, 떠나면서 그가 잃어버린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출근을 하고, 회의를 하고, 이메일을 썼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비가 씻어낸 도시에서 나는 청량한 냄새도 느꼈다. 나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후에 단 한번 울었는데, 그를 위해서라기 보단 이세상과 저세상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언뜻 본것 같아서였다.


그처럼 여러 가지 마음이 일어났다가 다 없어져버리곤 했지만, 결국 이 일을 어떤 식으로 내가 안고, 또 흘려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감정도, 양심도, 인습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들의 조합은 더더욱.
그래서 이제라도 가장 정직한 나의 인사는 나는 당신을 기억하며, 기억 너머에 있는 것들은 당신에게서 비롯한 내 몸 속에 들어있다, 그것을 받아들여 보겠단 것이다.
그는 절대로 들을 수 없지만.
아아 왜 중요한 말은 전달되지 못하고 마는가.


3.


누군가 떠나서 돌아오지 않더라도 날들은 계속된다. 바람도 계속 불고.
단지 나에게만 돌아오지 않은 것일 뿐이라면 잘 살라고, 언젠가 돌아와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전하고 싶다.


시궁창에서 꽃이 피기도 하는 것처럼, 묻어둔 많은 물음 중 어느 것은 답을 맺는 날이 오지 않겠나 하는게 내 희망이다. 그 날은 책상 한켠에 뒤섞인 사물들이 스스로 합체로봇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짜잔!). 그러니 진행을 위해 꼭 정리할 필요는 없다. 그대로 두고 대신 가까운 남은 사람의 손을 꼬옥 잡아보도록 하자.


2018.12.31 밤


#anywaythewindbl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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