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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꿈

별별 사람들 8화

by 매콤한 사탕

동네 형 K는 술에 취하면 사람을 붙잡고 앉아 쉴 새 없이 자기 말을 하는 주사가 있었다.


"그런 걸 뭘 다 들어주고 있어?"


지나가던 동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작게 속삭였다.

좀 도와주던가 그냥 갈 거면서 왜 물어보는지?

안쓰러워하는 동기의 표정에 답이 있었다.


'응, 나 아니고, 너 당첨'


어느새 테이블에는 K와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내 술잔을 채워주며 뜬금없이 K가 말했다.


"우리 외삼촌이 말이야."


K의 외삼촌은 종로에서 약국을 크게 했다. 장사가 꽤 잘됐는데 어느 순간, 그 일대에 삼삼오오 약국들이 모여들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K의 외삼촌은 약국을 확장이전하고 종업원들을 많이 고용했다.


"억수로 운이 좋았던 거지. 울 외삼촌은 하는 일없이 앉은자리에서 돈을 쓸어 담으면 그만이었어."

"어우, 그럼 지금 진짜 잘 사시겠네요?"


내 추임새에 K는 이마에 깊게 주름이 파이도록 눈을 찌푸렸다.


"죽었다."

"네?"

"빚만 잔뜩 지고 자살했어."

"왜요?"

"가족들 몰래 주식을 했대. 나 어릴 때인데 약국이며, 집안 땅이며, 다 담보 잡고 온 집안을 말아먹어서 가족들이 거리에 나앉았대. 주식이 그렇게 무서운 거야, 알겠냐?"


K는 비어있는 술잔에 입맛을 다시더니 자기 잔에 직접 술을 따랐다.


"저기, 혹시 주식하세요?"

"신기 있냐?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어? 야, 너도 주식하는구나?"

"아휴,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 주식해요. 조심하세요. 우리같이 주식 모르는 사람이 신중하게 투자해야지 안 그럼 큰일 나요."

"야 개미들이나 그렇지 나는 세력이야."

"네?"

"걱정하지 마라. 나 우리 외삼촌처럼은 절대 안 돼."


그날 밤, 많이 취했던 걸까?

나는 호언장담하는 K에게서 흔들리는 한쌍의 검은 더듬이를 본 것만 같았다.


아마도, K는 직감했을 것이다.

2022년, K가 투자했던 주식은 상장폐지될 위기에 빠졌다.


요즘 들어 K의 빈 술잔이 자꾸 떠오른다.

주사는 좀 있어도 순하고 착해빠진 K는 잘 살고 있을까?


시대를 걱정하며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그림자에서

검은 더듬이들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다.

개인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아주 작지만 나를 포함한 개미들의 꿈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부디,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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