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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아 로 Feb 14. 2023

반달 동안 태국 남부 여행 일기_1월 12일 00시

방콕의 새벽과 아침


반달 동안 태국 남부 여행 일기_ 1월 12일 00시

방콕의 새벽



아시아티크에서 새벽까지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질 줄 모르는 여행자들의 거리에서 우리는 편안하게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여행자들을 위한 조명은 화려하고 유혹적이었다. 그 조명 아래 몇 쌍의 연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고 여유로워 보였으며 사랑에 빠져 있는 듯 보였다.





나도 예전의 태국에 왔을 때 그런 눈빛으로 왓 아룬을 바라보았다. 달리 수염을 가진 한 스페인 할아버지가, 사랑에 빠진 눈을 한 작은 동양인 여자에게 다가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연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우리에게 행복해 보인다고 사랑스러운 연인이라고 말해주었다.





여행지에서 그런 말을 들으면 행복은 배가 된다.

나는 그때 행복했고, 그 찰나의 순간이 오래 가겠다 싶었다.

역시~ 흐흐.





지금은 내가 그때의 스페인 할아버지가 된 듯했다. 내가 낭만적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여기에 여행왔다고 이 여행지가 주는 행복의 주인공이 내가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단지 그들의 행복과 사랑이 여행지의 화려한 조명처럼 빛나 보여 설렜다.





이번 여행에서는 화려한 조명의 주인공들을 바라보고, 그리고, 기록하기로 했다. 

그런 것들이 나를 설레게 한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1월 12일 오전 11시

방콕의 아침





느지막이 일어났다.


여행지에서 ‘일요일을 사는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고,

그런 여유를 가진 베테랑 여행자처럼 보여지고 싶어서

‘일요일 같은 여행’을 몇 번이고 계획했지만


단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다.



여행을 가면 하고 싶은 게 많았고 늘 시간이 부족했다. 카페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싶다 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일정을 계획하고 굳이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자책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한국에서의 일요일 아침처럼 늦잠을 잤고, 호텔에서 차려주는 아침을 오래 먹었다. 

일본인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고, 비둘기를 쫓아 다니는 아이를 향해 소리치는 엄마를 보며 웃기도 했다.





짜오프라야강의 느릿한 일렁임이 오늘의 나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전에 방콕에 왔을 때 볼 것들을 다 보았고, 딱히 보고 더 싶은 것도 없었다. 

느릿느릿 시간을 보냈다.






더운 나라의 여유가 느껴졌다. 더위가 좋았다.


태국 사람들은 더위에 비해 아주 부지런한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바쁘지도 않다.


그들의 적정선이 참 괜찮아 보인다.





그렇다고 태국이 예전처럼 마냥 다 좋은 건 아니다. 아직 섭섭함이 다 풀린 건 아니니까. 후후.


태국은 나에게 관심도 없겠지만 그래도 여유 있는 일요일 같은 날에 맑은 하늘이 너무 좋다.





부은 눈과 늦은 아침 식사. 

미지근한 수박 조각. 

묽은 커피. 잠긴 목. 

까치집을 얹은 옆 테이블의 남자. 

흐를 듯 말 듯 한 짜오프라야 강물. 

눈치 보는 비둘기들. 

적당히 거리를 둔 구름. 

넘치는 시간. 

다 웃지 않는 미소.


모든 것이 완벽한 ‘여행지에서의 일요일 코스프레’.

결국, 진짜 일정이 없고 하고 싶은 것이 없고 할 이유도 없을 때 가능하구나.


일요일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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