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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아 로 Oct 28. 2020

부치지 못한 태교 편지 15

2015. 6. 25. -엄마의 엄마, 엄마의 언니들.

2015년 6월 25일

-엄마의 엄마, 엄마의 언니들.


코복아. 어제 너의 외할아버지 생신이셔서 저녁에 외할아버지 댁에 갔어. 너의 외할머니가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아서 찰밥에 잡채에 미역국에 꼬막무침에 찐 새우에 호박전, 그리고 생선구이 아~ 정말 많이 먹었지.

엄마는 아직 입덧이 그리 심하지 않거든. 아직 제대로 시작을 안 한 건가? 아무튼 정말 많이 먹었어. 너의 큰 이모가 사 온 체리와 살구도 먹고, 너의 작은 이모부가 사 온 케이크도 먹었지. 또 큰 이모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생자몽 주스도 사줘서 그것도 먹었어. 배가 엄청 불렀어.

많이 먹고 떠들고 놀다가 집에 왔는데 나오는 길에 집에 오기 싫은 거 있지. 우리 코복이가 생기고부터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많이 보고 싶고, 엄마의 언니들이랑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고 싶어 졌어.

그래 맞아.

엄마는 엄마들이랑 이야기하고 싶고, 듣고 싶고, 같이 있고 싶었어.

 

사춘기가 오면서 엄마는 그 나이 소녀들이 그렇듯 늘 혼자 있고 싶어 했어.
엄마가 어릴 적 살던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7 식구가 살기엔 작은 곳이었어. 그래서 엄마는 늘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 했지. 그러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옆집으로 이사 가고, 언니들이 건넌방을 쓰게 되면서 엄마는 처음으로 혼자 부엌 옆에 작은 방을 쓰게 됐어. 사실 방이라기보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있는 복도 같은 공간이었지. 엄마는 그래도 그 방이 참 좋았단다. 처음으로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니까.

그 방에서 엄마는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과 그 가수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가사도 지어보고, 교환 일기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다이어리도 꾸미고, 소설도 읽고, 춤도 췄지. 그 방 벽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와 농구선수의 브로마이드가 붙었어.

혼자인 그 공간이 참 좋았지만 앞에서도 말했 듯, 그 방은 부엌으로 가는 통로였기 때문에 언제든 사람들이 노크 없이 들어와 드나들 수 있었어. 딱히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 하는 그 감성적인 행동들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어. 특히 혼자 쓴 일기와 가사집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꽁꽁 숨겨두었지.

그때부터였을 거야. 엄마는 혼자 살고 싶어 졌어. 가족들과 떨어져 서울에서 살고 싶었어. 그곳에 가면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어. 그래서 서울을 ‘드림시티’라고 정하고 늘 꿈꿨지.

 

꿈을 이루었냐고?

그럼 그랬지. 대학을 서울로 갔어. 대학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혼자 살면서 3년 동안 직장도 다녔고, 그 후엔 그림을 몇 년간 배웠으며, 작업실을 다니며 반지하 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며 살기도 했지.

그러고 보니 드림시티이긴 했구나. 내 꿈을 이루었으니. 그런데 말이야. 엄마는 혼자 산 10년간의 시간이 많이 힘들고 외로웠어. 자유를 얻는 대신 외로움을 느껴야 했지.

처음 서울에 갔을 땐 무서웠고, 그다음에는 외로웠고, 그다음에도 외로웠고, 그다음에도 외로웠어.

그즈음에 잠깐 부산에 내려가 있을 때가 있었어. 그때 너의 아빠가 엄마에게 고백을 해왔고, 엄마는 아빠의 자상함에 마음을 열었지. 외로움 덕분에 아빠라는 보석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어. 아빠를 만나고부터는 더 외로워졌어. 부산에 살고 있는 아빠가 보고 싶어서 서울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더 길게만 느껴졌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사랑에 있어서 떨어져 있는 거리는 중요하지 않아. 떨어져 있는 시간과 거리만큼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더 사랑하게 되거든. 눈에서 안 보이면 마음에서도 멀어지지 않아. 마음은 한없이 더 보게 되지. 물론 그건 너무 힘든 일이지만 말이야.)

 

결국 외로움을 못 이겨서 아빠를 따라 다시 부산 본가로 와서 살게 됐어. 그런데 말이야, 혼자 산 10년은 나를 너무 많이 바꿔버린 거야. 혼자 살던 내가 다시 가족들과 사는 것은 정말 불편했단다. 게다가 심지어 결혼까지 했으니 아빠네 가족, 엄마네 가족을 번갈아 가며 챙겨야 하는 지금이 얼마나 적응이 안되고 불편한지 넌 알지 못할 거야. 그래서 엄마는 지금도 가족은 멀리 있으면서 그리워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런데 말이야. 그런 엄마가 코복이가 생기고부터 자꾸만 가족이랑 같이 있고 싶어 져. 

이상하지. 엄마한텐 우리 코복이가 생겨서 이제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데 이상하게 엄마의 엄마, 엄마의 언니들이 보고 싶고 같이 이야기하고 싶고 그래. 편안한 내 가족이 그리워.

왜 그런 걸까? 엄마도 도통 모르겠구나.

우리 코복이가 엄마에게 외가댁 식구들이 보고 싶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엄마가 코복이처럼 아가가 되는 걸까? 엄마 껌딱지, 언니 따라쟁이, 아기 막내둥이 경아가 되는 걸까?

코복이가 알려줄래? 엄마가 요즘 왜 그런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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