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쉴 수 있었던 시간들.
2015년 10월
쉴 수 있었던 시간들
코복이를 잃고 여건이 되어 한 달은 정말 꼼짝 안 하고 쉬고, 두 달은 규모가 작은 일 몇 개 정도 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몸을 느리게 움직여도 되는 3달 간의 시간이 있어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많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즈음에 같이 대학을 졸업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내가 임신한 줄도 모르는 서울 사는 내 친구.
대학 다닐 때는 딱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였는데 내가 부산으로 귀향하고부터 서로 바빠 연락을 자주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뭘 하고 사는지 잘 모르고 앞으로 뭘 하고 살든 잘 모를 것 같은, 그렇지만 친한 친구가 연락이 와 한 시간 넘게 통화했습니다.
가족에게도 쉽게 언급하지 못하던 ‘유산’이라는 단어, ‘코복이’라는 이름이 이상하리 만큼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슬프게도 그때 내 친구도 유산을 했습니다. 내 친구는 15주 중기에 접어들 때 유산을 해서 그 아픔이 더 크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수술까지 했어야 해서 몸으로 겪는 고통도 더 컸을 것입니다.
나는 병원에 다녀온 이후 처음으로 나의 유산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피가 어떻게 흘렀는지. 피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어떤 자세로 누워 병원에 갔는지.
복도에서 어떻게 울었는지.
흘러나온 아기집을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된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이야기까지.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우리 둘은 꽤 오랜 시간 다시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푹 쉬는 3달 동안도 나는 슬픈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그렸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는 그림들입니다.
내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거의 만삭이 되었을 때 그 친구도 두 번째 아기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기 생긴 지 15주가 훌쩍 지났다는 것도.
그때 나는 아기가 역아여서 고민이 많았고, 그 친구는 살이 많이 쪄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리 둘의 아이들은 2달 차이로 건강하게 태어나 지금은 둘 다 세 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