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민 Jun 16. 2017

#89 행복하지 않을 권리

2017.6.9. 어느 장바구니에 쓰여 있던 '혼자 볼게요'

사진 한 장과 관련 기사에 무릎을 탁 쳤다. 뭔가 구경하고 싶은 데 괜히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죄지은 것도 없는 데 뭐 하나 만지고 그냥 가면 안될 것 같아 꼭 거기서 살 요량이 아니면 아예 들어가지도 않는 일이 다반사.

혹은 꼭 사고 싶어서 들어갔어도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묻는 말이 싫어서 불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성격이 소심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은근히 이런 점에서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비스의 기본 철칙인 '친절함'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다른 형태의 친절함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이미 일본에선 정착된 문화라고 하는 데, 한국도 어서 이런 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나는 어떠한 순간에도 내가 허락하지 않은 사람이 내가 생각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에 깜빡이도 안 켜고 들어오는 것이 싫다. 

이런 불친절함이면 나는 언제나 좋다. 

나는 행복에서도 비슷한 관점을 가진다. '행복하지 않을 권리'라는 낱말로 표현한다. 이상하다. 
다들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왜 행복하지 않고 싶어 하지?라는 의문이 생길 법하다. 

행복하지 않을 권리는 좀 더 풀어 설명하면 '행복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이다. 
가령, 주변에서 '왜 결혼을 안 하냐?'라고 묻는다. 사람이라면 결혼해야지부터 결혼해야 아이도 
낳고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상하다. 난 지금도 무척 행복한데 말이다. 

어쨌든 그런 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 일주일에 열댓 번 들으면 스트레스가 된다. 행복하라고 말하는 소리가 지금 당장의 내 기분을 망치는 것이다. 내 행복은 제발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 지금 당신의 행복이나 열심히 챙기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도 행복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한다.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지는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고 말이다. 

1,2명의 친구를 깊게 사귀는 아이에게 '친구 좀 많이 사귀어라'며 잔소리를 하면 아이는 '대인관계는 많고 넒을 수록 행복한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평생 자신의 인간관계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보면 안다. 무의미하게 넓기만 한 대인관계가 얼마나 외로움을 자아내는지 말이다. 당장 이 밤에 카톡을 주고받을 친구 한 명과 온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내 취향이나 찾는 물건 없이도 그냥 눈으로 물건들을 구경하고 가격을 비교해보고 싶다. 나한테 어울리는 게 뭔지도 궁금하지 않다. 그리고 자유롭게 다른 가게로 옮겨 다니고 싶다. 

불친절할 권리, 행복하지 않을 권리, 사랑과 관심의 탈을 쓰고 자신의 경험을 강요하는 모든 주입식 생각을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싶다. 

그리고 매일 교실에서도 아이들과 그렇게 지낼 것이다. 
네 삶에 대해 늘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불친절함'이 있는 교사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88 글빚장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