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민 Jun 23. 2017

#99 선생님, 쟤 좀 혼내주세요!

2017.6.22. 응. 안돼, 돌아가.

초등교사들에 잽같이 잔잔한 골칫거리가 있는데, 바로 잦은 신고다.  

"선생님, 00이가 저를 발로 찼어요."
"그래? 속상했겠다. 그래서? 선생님이 어떻게 해야할까?"
"네?"


분명, 교사에게 알려야할 사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방법을 쓰면 안된다. 이것을 나는 '쉬운방법'이라고 부른다.


[쉬운방법]
"그래? 그럼 00이 데려와." 00이를 데려온다. 왜 그랬는지를 묻는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고 한다. 다음부터는 그러지마라. 그리고 서로에게 형식적인 사과를 요청한 뒤 끝.


그럼 어떻게 하냐?

[어려운 방법]
먼저, 질문 3가지를 한다.
"그래? 그럼 그 일을 당했을 때 기분은 어땠어?"
"너의 기분과 마음을 00이도 알고 있니?"
"선생님이 00이를 혼내줬으면 좋겠니?"

그리고 이야기 한다. "먼저 너의 기분과 바람을 이야기 하고와. 배운대로"


감/사/약 : 감정표현-사과받기-약속받기. 결국 그 학생은 00이에게 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 습관화되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당하면 쪼르르 담임교사에게 와서 울먹이며 이야기한다. 왜그럴까? '쉬운방법'을 사용하여 잘못한 아이가 교사에게 오는 순간, 그 아이는 죄인이다. 잘못은 친구에게 해놓고 사과는 교사에게 한다. 교사의 존재는 최고권력의 그 어디쯤 되기 때문이라고 믿는거다. 교사는 분명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배움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쉬운방법'을 통해 교사의 권력은 초법적으로 커지기 십상이다.

어떤 학생이 설문지에 이렇게 썼다. "ㅁㅁ는 수업시간에 너무 산만하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혼내지를 않으신다. 혼내주셨으면 좋겠다."


교사의 권력을 한 학생을 본보기로 '희생양' 삼아 학급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쓰였던 적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쉬운방법'을 써서는 안된다. 왜? 그러라고 준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의 문제는 당사자와 평화롭게 해결하고, 공동의 문제는 학급회의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자리를 마련하고, 기회를 주는 것에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왜 학생들은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 교사에게 혼나는 모습을 '사이다'처럼 바라보게 되었을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를 포기하고 모든 힘을 교사에게 준다. 교사또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마구 휘두른다. 학생들은 자신이 교사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긴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를 포기한다. 학급의 민주성을 해치는 악순환의 고리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선생님, 쟤 좀 혼내주세요!"라는 사인이 올 때마다,
"아니, 나는 그럴 권한이 없어. 아참, 우리 모두가 그래."
라고 되돌려 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을 때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해보고 실패하면 또해. 기회는 언제든 있어."
라고 되돌려 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케이스가 이렇게 평화롭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교사와 학생의 한계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럴때는 관리자, 전문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소왕국의 권력에 심취해 모든 것을 내 손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므로.)

매거진의 이전글 #98 머나먼 전래동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