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담화 #월요일세시 #굿모닝굿응가
2016년 10월 3일 월요일 3시
"뭐하고 사냐?"
같이 일했었던 형을 만났다.
"백수 되니까 좋냐?"
"형 요즘이 진짜 사람처럼 살아요.
죽을때까지 일할건데 지금이라도 잘 놀려고요"
"뭐가 그리 좋디?"
"다 좋죠
안좋은 게 뭔지 물어 보는게 빠를 걸요"
형은 뭔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말을 이어갔다.
"뭐 이것저것 많은데,
제일 먼저 느끼는게
시간이 생각보다 진짜 잘가요
내방이 곧 시간과 공간의 방이라니까요
늦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라요
심지어 아무 것도 안해도 저녁이라니까요"
"그러다 너 밤에 못잔다"
"불면은 아무 문제도 안되요 형
엄밀히 말하자면 불면의 개념이 없는거죠
자고 싶을 때 자니까.
4시에 자도 불면증이 아니니까.
불면증이라는 게
일어날 걸 염두에 둬야 생기는 건데
출근길 막힐까 일찍 일어날 일도 없고
운동 한답시고 일어날 일도 없으니까요
불면증이 없다기 보다 성립이 안되죠 아에"
내 개똥같은 백수 긍정론을
이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늦게 일어나면 또 늦게 자지 않냐?"
"잠이 안 와도 그런대로 놀면 끝.
그게 백수에요 형"
"뭐 거의 프로백수 다 됐다"
좋은건지 안좋은건지
인정받은 듯한 기분은 언제든 좋다.
"근데 안좋은 점도 있어요
모닝응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죠"
"미친 크크"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에요
모닝응가의 부재라는게.
뭐 자고 일어나는 패턴의 문제겠죠
그런데 이게 단순히 생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가 있어요"
형은 또 뭔 개똥같은 소리하네
라는 표정이었다.
물론 나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모닝응가를 안하다 보면
꼭 밖에 나갔을 때 변의가 온단 말이죠
이게 사회학적으로 얼마나 치명적이냐면,
저번에도 영어수업 들으러 갔다가
급변의가 온 적 있는데.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온다고는 했는데
그거 알죠
누가봐도 응가다! 라고 생각되는 그 잠시의 시간.
서로 머쓱해서
괜한 빈말 늘여 놓는다거나
뭐 애꿎은 날씨 얘기하고
뜸 들이면서 말하고 막 ㅋㅋ.
그게 얼마나 치명적인데요.
인간관계에서"
"그러지 그러냐?
제 잘못이 아닙니다
제 엉덩이 잘못입니다"
"ㅋㅋㅋ여튼 이런 깨달음을 얻었죠.
모닝응가가 매너를 만든다"
내 개똥같은 얘기에
뭔가 생각이 났는지
화장실도 안 간 형이 약간 뜸을 들였다.
"나도 이제 그만 할려고. 이달까지만 일하고.
쉬면서 모닝응가의 중요성이나 알련다 그냥"
"..."
"..."
"배변훈련부터 하시죠 형"
04.
오늘 백수 동지 한명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