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화 Jun 23. 2024

인간이란 단속의 존재가 아니며

우다영,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6월 11일 나는 유일하게 아직도 운영 중인 SNS 계정에 짤막한 포스팅을 하나 올렸다. 어떤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그 노래의 지배적인 심상이 이 책의 표제작과 한 지점에서 강하게 부딪친 충격이 컸던 탓이었다.


http://aladin.kr/p/qQ9Qt


문제의 노래와 이 작품이 공통적으로 타격한 지점은 대략 이런 것이다. 감히 누구도 발을 들이려 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 위험과 미혹이 혼재된 영역-존재를 처음으로 마주친-혹은 무엇인가를 깨달은 강렬한 충격과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이 강렬하게 매혹되는 일련의 서사. 하필이면 완전히 결이 다른 종류의 두 서사가 클라이맥스에서 충돌한 순간이 같았고, 한 귀로 흘려듣다가 문제의 대목을 읽던 나는 제대로 공감각적으로 두드려 맞았을 따름이고.


우다영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단편집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이었다. 이 작품집에도 실려 있는 <긴 예지>로 우다영의 이름을 각인한 셈인데 처음 읽었을 때는 쉽게 와닿지 않는 난해함이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집을 완독한 이후에 나는 우다영이 내내 매달려 있는 명제가 무엇인지 대강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변주해 나가고 끝내 자신만의 답을 내놓을지가 몹시 기대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조용히 털어놓은 비밀스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한테도 그런 동류의 호기심이 있었음을 비로소 자각하게 되는 순간은 얼마나 놀라운지.


나는 언제나 영혼의 본질을 정보라고 보았다. 그 사람이 인지하고 기억하는 정보가 곧 그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이며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재생될 수 있는 갖아 원초적인 정보의 형태가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영혼을 명제 혹은 일종의 법칙이라고 해석했다.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 단순하고 우아한 공식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 공식으로 우주 어디에서나 영혼을 재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75쪽


적어도 소설에서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에 앞서 가능성의 영역을 최대한 넓게, 멀리 탐색하는 것이 어쩌면 픽션의 윤리일 수도 있지 않을까를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을 인정하고 지켜봐 주는 너그러움이 소설의 덕목이지 않을까. 그러니 그런 게 존재했다면, 현재적 한계의 지평을 넓혀 나가려는 소설적 시도들을  응원해 주는 태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조심 놓아둔다.


"마치 별이 붕괴할 때처럼, 별의 무수한 잔해가 엄청난 밀도의 블랙홀이 되어 줄어들고 줄어들다가 마침내 시공간이 사라진 한 점으로 소멸해 버리는 것처럼 말이야. 우리가 가진 기억과 특별함과 아름다움이 다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우주가 되는 거야. 어쩌면 우리는 그 사라짐의 순간에 다가가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몰라.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수록, 사람들과 사랑을 할수록, 우리는 더 빨리 정지하겠지." -99쪽
삶이 아흔 번 이상 지속되었을 때,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동물과 식물은 물론, 산과 들, 바람과 구름, 자연이 만든 경관마저도 다른 시간과 장소에 존재했던 다른 존재와 닮아 있었다. 효주는 결국 이것이 패턴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과거는 알 수 없는 미지의 패턴으로 물결치며 미래로 나아가고 있었다. -197쪽
이번에는 눈을 감고 자신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효주가 살았던 모든 삶과 세계가 적층되어 있었다. 그 어떤 것도 훼손되지 않고 아름다운 질서를 이루며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공간도 아니고 시간도 아닌 형태로, 오직 효주가 머물던 '시선'을 연결한 궤적이었다. 세상에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가장 많은 세계를 관통하는 시선이었다. 쿵쿵. 효주는 다시 심장박동을 느꼈다. 이번에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심장 소리가 아니었다. 효주 안에서 거대한 똬리를 틀고 있는, 저 끝과 시작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시선의 태동이었다. -199쪽
그 순간부터 승용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승용에게 이입하는 것을 넘어 그 존재 자체가 되었습니. 마침내 저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겁니다. 세상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던 유령이 스스로의 위치를 깨닫고 스스로를 지시하는 하나의 점을 찾았습니다. 위치를 특정하는 기준이 생기자 유일하게 실재한다고 믿었던 시간은 더 이상 외따로 존재하지 않고, 공간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관념이 되어 유령을 감싸고 유령을 향해 휘어지는 세계가 되었습니다. -276쪽

어떤 소설들은 우리가 닿지 못한 미래로 가는 길을 희미하게 비추어주는 안내 표지판 같다고 종종 느낀다. 이 소설도 그랬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잊지 말기를 당부하고 있다고도.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서 : 엔하이픈 "BITE ME"

https://www.youtube.com/watch?v=wXFLzODIdUI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헤엄치는 거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