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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Oct 24. 2024

두려워하던 대상을 마주 볼 수 있을 때

미츠보시 타마, 밤의 이름을 불러줘

어디에서 이 책의 정보를 얻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게 없다. 제목이 열일했다고 해야 하나. 밤의 이름을 불러줘, 밤에게도 이름이 있나. 근데 왜 불러? 부르면 뭐가 좋아? 매번 제목부터 이런 걸 곰곰 생각하고 있는 나도 참 병이지 싶긴 하지만 역시 제목은 작가가 전하고 싶은 핵심 주제를 담은 작품의 알파이자 오메가니까.


http://aladin.kr/p/N4rRM


주인공인 미라는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면 밤을 불러들이는 병을 앓고 있는 여자아이다. 미라가 무엇보다 무서워하는 것은 낯선 사람, 낯선 환경이다. 자신이 두려움을 자각하는 순간 사방에서 밤이 몰려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까닭에. 미라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의사와 함께 사는 미라는 집 밖으로는 단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다. 밤을 불러들이는 자신을 사람들이 경원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제목에서처럼 미라가 먼저 나서서 밤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이 바로 이 이야기가 매듭지어지는 순간일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부모를 떠나 의사이자 마법사인 스승 옆에서 자기 자신을 이겨내기 위한 스스로의 투쟁을 계속하는 주인공의 성장담쯤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동화적인 소품과 장치가 그득해서 아기자기한 느낌이 폴폴 난다. 설정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유치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이 작품은 무거운 주제를 한 편의 상상화 같은 느낌으로 표현한 것으로 자신이 있을 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치고 "...????" 할 정도의 극단적인 표현이 한두 군데 나오긴 하는데, 그것 빼곤 아이들이 봐도 괜찮을 정도.


-나는 밤의 빛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 조용한 밤에 혼자 나 자신이랑 대화하곤 했어. 그럼 내 안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거든.
-레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는 안 해. 무서운 건 무서운 거지. 나쁜 건 아냐. 가끔은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도. 하지만 고른다는 행위는 자기 자신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환자도 본인도 의사도 주변 사람들도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걸 계속 생각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상처받는 것을 미라 군은 싫어한다」 그것도 네 조각이야. 무서운 것, 좋은 것, 지금처럼 뭐가 싫고 왜 싫은지 주의 깊게 찾아봐. 간과했던 조각을 깨달을지도 몰라.
-"제 친구인 여자아이 이름인데 그, 뭐라고 하지, 그 아이가 병을 앓아서 오늘 오기가 힘들었나 봐요. 아, 그런데 걔가 선생님이 쓰신 얘기를 엄청 좋아해요. 작품 무대가 집안과 마당 같은 작은 세상인 게 많아서 밖에 나가지 못해도 모험은 할 수 있다며 큰 위로가 된댔어요. 선생님을 만나면 얘기하고 싶은 게 틀림없이 많았을 거예요. 선생님 책을 끌어안고 몇 번이고 용기를 쥐어짰어요. 전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고, 그런데 왜 오늘 여기 온 건 저 혼자일까요"  


미라의 친구이자 집배원인 소년 카프리가(물론 미라는 대인공포증 역시 있기 때문에 카프리는 동물 인형의 모습으로 미라와 우정을 쌓았다) 미라가 좋아하는 작가의 사인회에 가서 대신 사인을 받으며 더듬더듬 이 말을 하는 장면은 정말 울컥한다... 아마 이 작품을 통틀어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이 아닐까 싶고.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자신을 조금씩 나누어 미라에게 친절과 배려로 표현하는 모습들이 정말 좋았다. 독특한 인물들도 빼놓을 수 없지만, 작은 어둠(그림자)들- '카게'군들의 존재 역시. 미라가 가장 무서워하는 밤을 상징하지만, 역으로 미라가 가장 의지하는 스승님과 양대 축을 이루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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