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의 그해 여름>
우리는 어떨 때 울음을 터뜨릴까? 너무 당연한 것 같은 질문이지만, 나에게는 구체적인 답이 더 필요해 보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쉽게 웃음을 터뜨릴 수 있지만, 쉽게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에서는 울음을 터뜨린다는 건 곧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여러 관계들을 맺으면서 가면을 쓰게 되고, 몹시 서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가면 뒤에서 숨죽여 울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앞에서 시원하게 울음을 터뜨린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되는 것 같다. 항상 가면을 쓰고 이것저것 신경 쓰면서 살다가 어떤 사람 앞에서 어깨를 들썩거리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오롯이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깊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울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노랫말을 들으며 자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거리낌 없이 울음을 터뜨릴 수 있었던 때는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주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섯 살의 프리다는 좀처럼 울지 않는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면서 우여곡절을 겪는 중에도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프리다는 무표정으로 어떤 시간들을 견뎌내는 것 같다.
*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러한 프리다의 표정은, 처음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장면에서부터 볼 수 있다. 멈춰있는 프리다를 도발하기 위해 한 아이는 ‘어디 한 번 울어보시지?’라고 말한다. 그 한 마디에 프리다는 멈춰있기를 그만둔다. 무엇 때문일까? 우선 나는 소년의 대사를 들으며 프리다가 평소에 울음을 잘 터뜨리는 아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불꽃놀이의 빛을 받는 프리다의 표정은 미묘하다. 불꽃놀이가 함께 화려한 빛깔의 향연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놀이라면, 혼자 담담하게 불꽃놀이의 빛을 받아내는 프리다의 표정은 불꽃놀이로부터 괴리되어 그것을 관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리다의 무표정은 그가 새로 이사를 간 후에도 여러 번 나타났다. 정전이 나서 아나와 외숙모가 함께 있는 모습이 그림자 실루엣으로 보일 때, 프리다는 구석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외삼촌이 욕조에서 아나를 데려갈 때에도 그랬고, 외숙모, 외삼촌, 아나가 함께 춤을 출 때에도 프리다는 무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각 장면들이 함축하는 감정들에는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프리다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줄 편이 없다고 느끼는 것만 같았다.
외숙모와 외삼촌은 때때로 프리다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을 지라도, 허물없이 프리다를 대하고자 노력했다. 프리다의 마음에 계속 귀 기울이려 하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에, 외숙모는 떠났다 다시 들어온 프리다의 곁에 있어준 것일 테다. 마지막에 터뜨린 프리다의 울음이 근본적으로 외숙모, 외삼촌과 어긋나 버리는 순간들로부터 비롯되었을지라도, 동시에 프리다의 울음은 프리다를 생각하고 프리다에게 품을 내어주는 그들의 사랑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프리다의 마음이 열리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지를 생각해보면, 외숙모와 외삼촌의 노력도 있겠지만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나의 말 한마디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도 자길 사랑하지 않는다는 프리다의 말에, 아나는 덤덤하게 자기가 언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프리다가 짓궂게 굴 때가 있었음에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안나 앞에서 프리다는 허울 없는 사랑을 느끼지 않았을까?
또 집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자기를 계속해서 찾아 나선 외삼촌과 외숙모 앞에서, 그리고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마음을 사려 깊은 말들로 위로해준 외숙모 앞에서, 프리다는 닫았던 문을 열고 믿음을 쌓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프리다의 울음이, 비로소 자기가 온전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아서 터뜨린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또 프리다가 외숙모와 외삼촌, 안나를 오롯이 믿기 때문에 터뜨린 거라는 생각을 했다. 프리다에게는 자신의 응석을 받아줄 수 있는, 짓궂어도 자신의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자신을 허울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외로웠을 순간들을 견뎌냄으로써 쌓아 올린 응어리들을, 이제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풀고 싶지는 않았을까? 직접 울음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할 지라도, 어떤 울음은 많은 것들을 해소하고 또 이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