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요일의남자 Oct 05. 2020

닳고 없더래요

시를 써 볼까요

친구는 11년을 연애하다 헤어졌어요

당연히 결혼까지 할 줄 알았는데...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언제쯤 사랑이 식은걸 느꼈냐고

헤어지는 날까지 사랑했었데요

헤어진 후에도 사랑이 남아 있었데요

궁금해서 한 번 더 물어봤어요

사랑이 남아 있는데 무슨 이유로 헤어진 걸까요

다 닳고 없더라 하네요

빠르면 천천히 느리면 조금 빠르게 과하지 않은 걸음으로 십 년을 잘 맞춰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더래요


더는 가고 싶어도 밑창 닳듯 다 닳아서 앞으로 갈 수가 없구나


십 년을 넘게 만나는 동안 여유롭게만 보이던 관계였는데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과 인정하기 싫은 불안한 마음 조급함에 꾸역꾸역 닮아 가려고만 하다 보니 상대의 모습으로 변했지만 자기 원래 모습은 이미 닳고 없더래요.


이제와 친구는 퍽 슬프진 않다 하네요



-

구두가 생겼어요

아직 새 구두라 뻣뻣하고 발이 조금 아프기도 하지만

너무 예쁘고 멋있어 자랑하고 싶어요

어디를 가던 이 구두만 신어요

흠나지 않게 조심히 걸어요


이제 좀 길들여져 편해지기 시작했네요

신나게 뛰어도 봅니다

조금 흠집이 낫지만 빛나게 광내고 다시 신어요


꽤 오랫동안 신고 다녀 여기저기 늘어나고 까졌네요 시커먼 구두약을 덕지덕지 발라 문질러 보지만 예전만큼 광나진 않아요

하지만 여전히 내발에 꼭 맞고 편안한 구두라 오늘도 신고 나가요


집에 돌아와 구두를 벗어 넣다

어느새 밑창이 다 닳아 있는 걸 깨달았어요

아끼던 신발이었는데

내일부터는 못 신게 되었네요

-


친구는 정말로 슬프지는 않다 하네요.













작가의 이전글 낯간지러운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