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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goongjun Dec 06. 2023

18. 살아보니 이게 되네…?

새로운 경험 #3

배움과 실제는 차이가 있지만 닥치면 못할 게 없구나


난 영어를 참 좋아한다. 영어라는 언어를 배우고 읽고 활용하는 걸 참 좋아한다. 그래서 영어를 참 잘했다. 영어 듣기 평가는 어떤 시험이든 대부분 다 맞았고, 수능 영어는 한두 문제만 틀렸으니까. (좋아하고 잘했는데 왜 만점을 받아본 적은 없는…)


대학 입학 후에는 더 잘하고 싶어 공부할 방법을 찾다가 재미있게 봤던 영화의 원작이나 소설을 영어 원서로 읽기 시작했다. (대학 다닐 때부터 뉴질랜드를 가기 전까지 진짜 꾸준히 읽었다. 출퇴근 지하철 타는 시간은 최고의 독서 시간!) 전체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원서로 읽으니 단어를 전부 알지 못해도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고, 연계해 모르는 단어의 뜻도 유추하며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법을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해도 문장 구조 자체가 익숙해지니 틀리지 않는 영작도 가능하게 되더라. (틀리지 않았지 잘 쓰진 못했… 잘 쓰는 건 다른 차원이다…)

거기에 더해 주일마다 영어예배를 드리러 다니면서 듣기도 더 잘하는 것 같고 교회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니 점점 자신감이 찼더랬다.


그래서 난 영어권 나라에 가면 어디에서든 소통을 잘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뉴질랜드 사람과의 첫 대화부터 멘붕 ㅋㅋㅋㅋㅋㅋㅋ (공항에서 대화한 사람들은 범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하니 패스 ㅋㅋㅋㅋ)

이때는 먼저 뉴질랜드에 살고 계시던 아빠에게 엄마를 모셔다 드리면서 여행을 하기 위해 갔던 때였다.

아빠가 지내시던 하숙집의 주인아줌마와 인사했던 게 뉴질랜드 사람과의 첫 대화였는데,

날 보며 웃으면서,

“왓처 나임?”

이러는 거다. 뭘 물어보는지 이해를 못 해서 멍하니 있으니 옆에서 아빠가

“네 이름 물어보는 거야.”

하시는 게 아닌가. 뉴질랜드 사람들은 ‘a’ 발음을 ‘아이’로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임’은 ‘name’이었던 거다. 아무리 발음하는 게 다르다는 걸 몰랐다한들 자신 있어했던 스스로에 당황하고 쪽팔렸었다는! (그런데 나중에 영어권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이야기하니 뉴질랜드 본토 사람들의 영어 발음은 자기들도 알아듣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 ㅋㅋㅋㅋ)


뉴질랜드로 살러 가기 전 여행 겸해서 엄마를 아빠 계시는 곳에 모셔다 드리는 목적으로 다녀온 거였는데 앞으로 살아보려고 준비를 시작하던 차에 현지인과의 대화가 부담스러워진 순간이었다.

이후 이민을 위한 기본적인 준비를 하는 중에도 이 일은 계속 생각났었다. 영어 시험 점수를 만들고, 꾸준히 원서도 읽고, 공부하면서도 이때 느꼈던 당혹감이 남아 있어 ‘과연 영어로 잘 소통하며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됐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역시 그냥 여행일 때와 살아야 하는 건 다르더라. ㅋㅋㅋㅋ


퇴사 후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처음 하게 된 일은 부모님과 같이 다닐 한인교회에서 예배 준비와 주말 행사를 돕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가 살던 도시는 와이너리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도 하고 여행자금도 모으려고 오거나, 태평양 섬들에서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수없이 오고 가는 지역이었다. 한국 사람들도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많이 왔었고, 유럽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많이 왔었다. 우리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그런 친구들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저녁을 대접하면서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했었다. 처음 갔을 때는 그 행사의 진행을 담당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한국에서만 영어를 공부하고 워킹 홀리데이를 왔다고 했는데 영어를 정말 잘했다. 간간이 농담도 섞어 가며 여러 국가에서 온 사람들과 소통하며 진행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가 워킹 홀리데이 기간이 끝나가서 떠나야 한다고 했다. 주말 행사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는데 진행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에 목사님과 그 친구가 내게 그 진행을 부탁했다!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때는 고민이 됐다. 사실 내가 앞에 나가서 뭔가를 하는 걸 부끄러워하거나 빼는 성격은 아닌데 이건 아예 다른 언어,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일이지 않은가!!! 내 모국어로 하는 거야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영어로 한다는 부담감이 참 크게 다가오더라. 그래도 고민은 길지 않았다. ㅋㅋㅋㅋ 이런 경험 또 언제 해보겠나 하는 생각과 함께 뭔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름의 모험을 접하기로 결정!


매주 토요일의 행사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게임 > 다 같이 저녁 먹기 >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시간 주기 > 간단하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무리 인사 후 귀가’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 정도의 행사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활동하며 많이 해오던 거라 한국어로 할 때는 따로 대본 없이 잘했었지만 영어로 해야 하다 보니 혼자 열심히 시나리오 짜고 대본 준비하고 연습하며 지내게 되더라. ㅋㅋㅋㅋ

드디어 내가 맡은 첫날! 그날 진짜 아침부터 엄청 긴장했었다. 긴장했었다 보니 처음 인사할 때부터 머릿속이 하얘졌던 것 같다. 그래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해 준 사람들 덕에 버벅거리면서도 도움 받아가며 첫날을 마무리했었다. 첫날의 감상은 ‘헉헉, 드디어 끝났다… 다음 주는 어카지? 계속 이렇게 버벅거리면서 하면 어떡해???’였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은 닥치면 다 한다고 매주 준비하고 진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시간들을 즐기고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내가 되어 있더라. 점점 긴장이 덜해지고 마음이 편해지니 진행 실력과 더불어 영어도 엄청 늘었고 말이다.


물론 행사 진행만으로 영어가 확 늘게 된 건 아니다. 뉴질랜드에서 사는 기간 동안 여러 일을 겪으며 영어 실력 향상의 기회(?)들을 (본의 아니게 여러 번) 갖게 되었는데 이 행사 진행은 그런 일 중의 첫 번째 일이었다. 이 일을 해내게 되면서 영어로 소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이 줄어든 것이 영어 실력이 많이 늘게 된 이유였던 것 같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 영어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들을 계속 맞닥뜨리게 되니 늘게 되고 말이다. 이때의 경험들을 통해 내가 배운 건 ‘다가오지 않은 일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구나. 사람은 닥치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거였다. ㅋㅋㅋㅋ

이후로 내가 겪는 상황들에 대해 너무 심각해지지 않고 여유로운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다 보면 당황스러운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도 영어로 상황을 타개하던 때보다 모국어로 소통이 잘만 되는 상황에서 못할 게 뭐냐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해결할 수 있게 되더라.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머뭇거리게 되는 거 알지만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고, 앞으로의 인생에 재미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라 생각된다면 지르시라. 어떤 일이든 사람은 닥치면 뭐든 다 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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