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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goongjun Feb 14. 2023

17. 서른, 새 시작에 딱! 좋은 나이

새로운 경험 #2

새로운 길을 찾아 걷다


내 나이 서른.

첫 회사에서의 4년을 채우고 퇴사했다.

퇴사 후 첫날은 만우절. (입사 첫 날도 만우절이었다. ㅋㅋㅋ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4년을 채웠더라.)

부모님은 뉴질랜드에 계셔서 혼자 있는 집에서 부산하게 출근 준비할 필요 없이 느지막이 일어나 봄날의 햇살 받으며 멍하니 앉아있던 아침.

뭔가 묘했던 그날의 기분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기억난다.

일주일 정도 뉴질랜드로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 동안 여러 가지 기분이 교차했다.

4년을 매일 아침 바쁘게 움직여 출근하던 것에서 벗어나 하루종일 자유시간인 것도 묘했고, 며칠 뒤면 전혀 다른 나라로 날아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도 긴장되면서 묘했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떠나기 전까지의 모든 시간 동안 참 묘한 기분에 휩싸였던 기억이 난다.

불안감도 없지 않았지만 이왕 가기로 한 거 호기롭게 가야 하지 않겠나 ㅎㅎㅎ

출발 직전까지 미적거리다 필요한 짐들을 호다닥 싸고 드디어 뉴질랜드로 출발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뭉클하더라.


새롭게 머물게 된 그곳은 그동안의 모든 경험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곳이었다.

부모님이 지내시던 곳은 남섬에 있는 작은 도시(도시라기보단 읍의 느낌이랄까...)였는데 주변에 와이너리가 많은 도시로 굉장히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그리고 주변 경관이 좋아 오랜 시간 산책하기에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할만한 게 많지 않기도 했다. 매일 오후 4시 반이면 시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다. 장을 볼 수 있는 마트 정도나 저녁 8시-10시까지 열었었다. 해가 지고 나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자동으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보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도착하고 몇 개월 동안 내가 했던 일은 한인교회에 필요한 서류 작업, 행사 관련 작업, 예배 준비 작업이었다. 파워포인트, 인디자인을 활용해 좀 더 보기 좋게 차곡차곡 정리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 이마저도 그리 많은 일을 하는 건 아니어서 오후 3-4시쯤부터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매일 오랜 시간 산책을 했다. 매일 같은 장소를 걸어 다니는데도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구름이 너무 예뻐서, 공기가 맑아 햇빛이 더 투명하고 밝아 기분이 좋아서, 도시 소음이 없어 졸졸졸 흐르는 시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이름 모를 다양한 꽃들과 식물을 보는 재미가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었다.

번잡했던 한국을 벗어나 스트레스 없이 느긋하게 지낼 수 있는 곳에서 많이 걸어 다니니 건강도 좋아지더라. (한국에서 일하면서 얻었던 내 몸의 잉여들을 모두 삭제했었지... 지금은 다시 넘쳐나는 잉여들...ㅠㅠ)


도시를 벗어나 사는 건 생각해 본 적 없던 내게 그곳의 느긋함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국에 살 때는 뭔가에 쫓기듯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문득 떠오르곤 했는데 뉴질랜드에서 산책하던 매일의 시간은 그런 불안감이 하나도 없이 그저 평안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직장 다니며 살던 때와 비교해 돈도, 직장도, 아무것도 준비된 것 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던 시기였음에도 어쩌면 그리 편안했는지 때때로 돌아볼 때마다 신기하다. (아마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면서 아는 게 없어 두려움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ㅎㅎ) 


철없는 20대를 지나 기반을 다져야 하는 나이라고 말하는 서른에 온전한 느긋함과 편안함을 처음으로 느끼며 나는 뉴질랜드에서 살기 위한 새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일을 겪으며 결국 뉴질랜드에 정착하려던 꿈은 무산되었지만 이때의 기억은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을 남겨주었다. (원래도 좋아하는 거 하는데 나이가 뭔 상관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더 자유로워졌달까)


그리고 이때의 기억은 피곤한 순간마다 가만히 숨 고르기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주변 상황에 불안을 느낄 때 이때를 생각하면 차분해짐을 느낀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늦은 것 같아 불안해하며 움직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피곤함과 불안함 속에서 작은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순간을 놓쳤을 거라 생각한다. 글을 쓰며 돌아보는 그 시간이 지금 참 그립다. 조만간 다시 한번 그 길을 걸을 수 있기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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