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유산 - 책, 많고 많은 책, 책!
보통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을 자식에게 추구하거나 혹은 주려고 하는 게 부모 마음이라고 한다. 아빠의 경우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살 수 없는 유년시절의 형편이 가장 아쉬웠는지 평소에도 자주 “책만은 양껏 읽게 해 주고 싶다”라고 공언하셨었다. 그리고 당신의 이 결심을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실천하셨다.
꼼꼼히 세어보지 않아 대략 몇 권 정도의 책을 남겨 주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리적인 양도 나름의 의미를 지니겠지만 책과 관련된 기억이야말로 아빠가 나에게 남겨주신 큰 유산이라 여긴다.
어릴 적에 아빠에게 가졌던 가장 큰 불만사항 중 하나는 식사 때는 책을 읽지 말라는 지시였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어떠한 계기로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었고 그래서 동생과 나는 사진이 사진이 저학년용 자연도감이나 만화로 읽는 세계사와 같은 책을 가까이했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되거나 혹은 봐도 봐도 신기한 자연의 신비한 한 장면에서 눈을 떼고 싶지 않을 때 책은 자연히 식탁 위에 오르곤 했다. 밥을 먹으면서 책장을 넘기는 게 그땐 왜 그리도 즐거웠는지. 하지만 아빠 눈에는 달갑지 않은 장면이었다. 밥상머리에서 책을 읽겠다고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도 불안하고 무엇보다 아빠가 늘 추구하던 ‘가족과의 식사 시간’에는 소소한 대화가 오가야 하는데 책에 정신이 팔려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원하는 그림을 만드는 건 수월하지 않았다. 결국 아빠는 식탁에서 책 읽기 금지령을 내리셨다. 초반에는 나도 남동생도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당신도 신문이나 책을 식탁으로 가지고 오셨고 활자에 정신 팔린 아빠 옆에서 우리도 책장을 뒤적이게 됐다. 어린 마음에 기억하는 한 가지는 “뭐야, 밥 먹을 땐 책 읽지 말라더니 아빤 책 읽고 있잖아. 그럼 나도 읽을래!”하는 반항심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책과 관련된 특정 행위를 금지하던 아빠가 전형적인 내로남불을 시연한 적은 또 있었다.
고등학생 때 나와 내 동생은 장르소설(무협지, 판타지 소설 등등)에 한침 빠져 있었다. 책 대여점에서 재미있다는 소설책을 잔뜩 빌려와 쌓아 놓고 읽은 날도 여럿이었다. 이 장면 또한 순수문학을 업으로 삼는 아빠 눈에는 달가워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오늘도 무협지를 빌린 거냐면서 빌린 책을 다 가지고 나오라고 소리치셨다. 어렴풋한 기억에는 6~7권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동생과 내 책상 위에 있던 무협지를 가지고 거실로 나왔다.
“이런 책 말고 더 좋은 책을 읽어. 내가 읽고 싶은 책 있으면 서점에 가서 아빠 이름 대고 가지고 오라고 했잖아. 왜 무협지 같은 걸 읽고 그래?”
그랬다. “내 자식에게 책과 관련된 돈은 아끼지 않겠다”는 아빠는 시골 동네 하나밖에 없던 서점 주인에게 부탁해 놓았다. 당신의 자식이 와서 책을 사고 싶다고 하면 돈은 내가 나중에 줄 테니 그냥 가져가게 해 달라고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역 문학인, 출판인들과의 인맥을 통해 책을 공수해 오시거나 시중가보다 조금 싼 가격에 구입했다. 그래서 집엔 늘 책이 넘쳤다. 다양한 책을 접했으면 하는 아빠의 뜻에 따라 인문학, 사회학, 물리학, 화학, 역사 등 광범위한 분야의 책이 거실 책장을 채웠다. 다시 말하면 읽을 게 없어서 무협지를 읽는다는 핑계는 절대 성립 불가한 환경이었다.
뼈와 살이 될만한 양서를 골라 읽으라고, 내가 책 많이 사 주고 또 가져다주지 않았느냐고 짧은 연설을 늘어놓은 아빠는 청천벽력 같은 마지막 한 마디로 우리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그러니까 빌려 온 무협지 여기에 두고 가. 웬만하면 무협지 같은 거 읽지 말고. 알았지?”
당시 이 한 마디는 사망선고와도 같은 무게감으로 우리를 내리찍었다. 소리 없는 외침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미치겠는데 여기서 그만 두라고요?’
‘이미 돈 다 낸 건데 이번에는 그냥 읽으면 안 될까요?’
‘대여기간 아직 많이 남았는데 왜 하필 오늘이신가요…’
그때 내가 만약 중학생이었다면 “이런 책을 읽는 게 뭐 그리 문제라고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라고 반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그 대단하다는 수험생(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대학 입시가 시작되는 건 시골 학교도 비슷하다) 신분으로서 ‘사당오락(四當五落)을 가슴에 새기며 매일을 살아가도 시원찮을 판에 수업 시간에도 무협지를 탐독하던 나의 과오를 떠올리자니 아빠의 금지령에 그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새벽 화장실에 가고 싶어 거실로 나왔는데 어두워야 할 거실 한 구석에서 희미한 불빛이 세어 나오고 있었다. 저 구석에 스탠드 같은 게 있었나 하고 가까이 다가가니 무협지 더미 옆에서 쭈그려 앉은 자세로 책장을 넘기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졸린 목소리로 묻자 아빠는 놀란 손동작으로 책을 덮으셨다.
“지금 무협지 읽으세요?”
“어.. 그러니까.. 나도 무협지 좋아하고… 이미 빌린 건데 그래도 읽고 반납해야지….”
“아 뭐야. 왜 아빠는 읽어도 되는데 우리는 읽으면 안 돼요? 그러면 이번만 그냥 같이 읽으면 안 돼요? 네?”
절호의 기회였다. 이 상황에 거절은 불가능하다는 게 뻔히 보였다.
“그래.. 그럼 그럴까?”
다시 마주한 아빠의 ‘내로남불’이었다. 활자로 된 것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읽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며 자녀들에게 ‘무협지 금지령’을 내린 그 마음은 오죽했을까.
아빠는 그렇게 희미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당신의 엄중한 금지령을 부숴버렸다. 하지만 한밤의 외도는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아빠도 민망하셨는지 당황스러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작은 목소리로 “YES”를 표시했다.
사실 아빠도 무협지의 왕팬이셨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런 일이 일어나 고맙고 또 고맙기만 하다. 순수문학에 이어 무협지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실 순수 문학에 대해서는 늘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가곤 했다. 읽어보고 싶은 신간 이야기는 너무나도 당연한 화제였고 가끔은 매년 발표되는 문학상 수상 작품의 소감을 나누기도 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무협지라는 공통분모까지 더해 책을 기점으로 하는 대화의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다시 말하면 기억을 만들 범위도 더 넓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거실 벽면에 빠짐없이 서 있는 책장에 꽂혀있는 책이 몇 권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책을 구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아야 하고 책을 읽는 데 시간을 아까지 않아야 하고 뭐든 열심히 읽어야 하고 늘 책과 함께 해야 한다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 (사실 권수로 따지자면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의 고양이 빌딩猫ビル 같은 어마어마한 장서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더불어 거실 책장 속 책 몇 권에는 추억이 방울방울 달려있다. 몇 권은 아빠의 청년 시절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또 몇 권은 책 읽기에 부족함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아빠의 마음이 대변하고 있다. 표지가 너덜너덜하니까, 색이 바래서, 개정판이 한 권 더 있으니까, 세로 쓰기 책은 읽기에 힘드니까 등등과 같은 변명으로 정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거실을 채우는 책 하나하나가 다 나름의 이야기와 뜻을 지닌 만큼 고민의 시간이 약간 더 필요하다.
그래서 책장을 바라보며 매일 생각한다. 이 많은 추억 조각을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
어떤 식으로든 정리는 해야 할 것 같다.
거실을 비롯해 각 방에, 아빠 작업실에, 작업실 옆 창고에, 모니터 옆에, 책상 아래에 많은 책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전에…
책을 통해 아빠가 늘 강조했던 ‘책을 가까이하는 삶’을 되돌려야 한다.
감정의 파도 위 조각배에 몸을 싣고 슬픔의 망망대해를 정처없이 헤매던 시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아빠가 나에게 바라는 건 당신이 그토록 강조했던 삶의 형태를 잊지 말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