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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나 Oct 27. 2022

현지(필드)를 방문하지 않은 자는
졸업할 수 없나니!

어수룩한 (예비) 연구자의 좌충우돌 학문 여정 3


시간을 잘 운용하여 읽고 쓰는 행위를 꾸준히 실천해 기한 내에 논문을 쓰는 것.


대학원생이 가져야 할 덕목과는 평생 먼 거리를 유지해 온 내가 단 기간에 계획적인 인간으로 거듭날 리 만무했다. 타고난 기질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쌓아온 탄탄한 게으름은 3년 동안 날 괴롭혔다. 모든 것은 발제 혹은 발표 1주일 전에 시작되었고 발표 전날은 밤새워 작업하기 일쑤였다. 이런 생활 패턴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삶의 목표인 양 새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아름다운 도시 서울을,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라고 외치며 대학원과 관련된 모든 것을 우선시하기에 앞서 신기루와도 같은 '짧은 즐거움'에 몰두한 어리석음이란! 따지고 보면 석사생이라는 기회와 시간,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공부 등 모든 것이 생애 단 한 번뿐인 것인데 금세 사라지고 말 사탕 같은 것들이 다시없을 중요 임무인 마냥 그것들을 찾고 또 추구하다니!


고등학생 때도 그랬듯이 전공서보다는 소설이나 또는 전공과 관심 없는 책을 읽었고 영화, 전시회, 연극, 뮤지컬 등도 주머니 사정이 허락되는 한 열심히 찾아다녔다. 서울의 이점 중 하나는 도보로 접근 가능한 영화관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것이었다. 풍족하지 않은 경제 사정을 감안하였을 때 최선의 선택은 조조 상영이었는데 아침잠이 많은 내가 좀 더 싼 가격으로 영화를 보겠다고 졸린 눈을 비비며 수 차례에 걸쳐 아침 거리를 걷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읽지 않지만 책은 구입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실천하는 나였지만 그 당시 읽었던 대부분의 책은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것들이었다. 괴상하리만치 뒤틀린 청개구리 근성으로 빠르고 올곧은 길 대신 다른 것을 부지런히 선택했다. 그러니까 다른 방향으로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말이다.






당시 나의 전공은 '일본사회문화'였는데 명칭에서 보이다시피 언어, 정치, 경제, 역사를 제외한 일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논문 주제로 삼을 수 있었다. 선배들의 논문을 보면 민속학, 교육학, 인구학, 사회복지학, 하위문화 연구, 정책학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일본 사회문화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허락된 이곳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문화정책과 관련된 무엇이었다. 


처음부터 문화정책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원 입학 원서를 낼 때 작성한 연구 계획서에서 언급한 것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라는 일본 작가의 작품 '침묵'과 관련한 것이었다. 왜 이러한 주제를 선택했느냐 물어본다면 '뭘 연구해야 할지 몰라서'라는 대답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알고 싶고 파고들고 싶은 무언가가 있어서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것이 아니었기에 연구 주제를 고르는 데 있어 입학 전에도 입학 후에도 나는 고심해야 했다. (그러니까 연구 주제가 확고하고 또 시간 활용에 능하다면 대학원에 입학해도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러 측면에서 피눈물 흘린다)


석사 2년 차가 되었는데도 논문 주제가 확실하지 않다는 건 상당히 위험한 신호다. 이는 남들처럼 석사과정을 2년 안에 끝마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딱 그랬다. 


학문의 금자탑을 쌓기보다는 다른 것에 열중한 석사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때의 바보 같은 선택이 죄다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부지런히 쫓아다닌 전시회나 공연장에서 한결같이 나를 간지럽히는 것이 있었다. 

'서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좋은 기회를 누리지 않는 걸까?'

시골 출신으로 그렇다 할만한 문화시설 하나 없었던 곳에서 자란 나에게 으리으리한 미술관, 재치가 번뜩이는 전시회, 쉴 새 없이 무대에 오르는 연극과 뮤지컬은 책이나 잡지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방 소도시의 미술관과 공연장에 한 번도 안 가 본 것은 아니지만 서울의 그것은 차원이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꿈과 같은 것들을 생활권에 두고 사는 서울 사람들. 그런데 의외로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 나를 더 큰 충격으로 이끈 것은 소위 지식이라 분류되는 대학원생, 대학 교수들마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문화 활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자식으로 유용히 활용될만한 무언가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순수한 감상이나 애정도를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그들의 관심도는 세상이 생각하듯 그리 높지 않았다. (모든 대학원, 대학 교수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직접 느낀 분위기는 그랬다. 다행히 나와 가장 친한 대학원 동기 언니들은 그중에서도 문학과 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었는데 얕은 지식의 소유자인 나를 잘 이끌어준 언니들이 있어 나의 대학원 생활이 반짝반짝 빛났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것을 지척에 두고도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딱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지지고 볶던 어느 날이었다.  일본문화정책 수업을 위해 책을 뒤적거리던 중에 강렬하게 꽂힌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아트 프로젝트(アートプロジェクト)라는 두 단어였다.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형태로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짧은 설명이 함께 적혀 있었다. 불현듯 여러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이와 비슷한 것이 없나? 내가 일본관 관련 있는 책을 봐서 그런가? 우리나라에도 분명 있을 텐데 이제까지 방문한 수많은 전시회에서 이와 비슷한 무언가를 접하지 못한 이유는 뭐지? 


석사 논문 주제를 <일본의 아트 프로젝트>라고 잡아야겠다 마음먹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나 할 수 있을 법한 결심이었다. 끊임없이 찾아다니던 원석을 발견한 것과 같은 기쁨에 도취되어 "저는 이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려고 합니다!"라고 턱 내놓았을 때의 분위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과 함께 지도 교수님은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너무 광범위하니 범위를 좀 좁히라는 조언을 주셨다. 짧게 해 주신 설명으로 내가 제시한 논문 주제가 적절하지 않다는 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찌 해야 할지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선배 한 명이 말했다. 


"네가 알고자 하는 큰 주제의 사례 하나를 골라서 그것을 시작점으로 차근차근 알아가 보는 건 어때? 다들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학계에서 한 번도 다루지 않은 무언가를 연구하고자 하는데 그게 얼마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인지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 그렇게 엄청난 수준의 연구를 석사 과정에서 하겠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거든.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했으면 하는데. 그러니까 우선은 눈에 띄는 사례 하나를 찾아보자. 알았지?"


(나만 그랬을지 모르겠는데) 처음 석사 과정에 입학하고 몇 개의 학회를 따라다니다 보면 큰 무대에서 발표하는 사람들과 나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게 느껴지고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다 보면 큰 착각에 빠지게 된다. 좋은(놀라운) 논문을 써서 학계에 한 획을 긋겠다는 것! 나도 모르게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걸 바로 눈치챈 선배는 사례 하나를 골라서 함께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사례 하나를 선정한 후 다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고 "이걸로 한 번 써 보자"라는 지도 교수님의 확인을 받은 후 제출 기한에 맞춰 그래도 구색은 갖춘 석사 논문을 작성했다. 제출에 앞서 지도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고자 교수님께 건네드린 후 연락을 기다리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교수님께서 지적해 주신 부분을 수정하면 올해 제출도 어렵지 않겠지. 2년 안에 졸업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한낱 기우였으며 나도 남들처럼 2년 안에 졸업하게 될 거야. 교수님께서 연락 주시면 바로 번개처럼 수정해서 제출해야지!'


하지만 제출 기한이 지난 후에도 교수님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꿈꾸었던 시나리오는 격렬한 시간의 흐름 속에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고 나에게 남은 건 1년 더 석사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여러 선배들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그저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그렇게 3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교수님의 메일이 도착했다. 


"네 논문을 읽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거든. 뭔가가 부족해서 말이지. 음... 일본에 한 번 다녀와라."

다짜고짜 일본에 가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하고 묻자 교수님은 다시 설명해 주셨다. 명색이 사례 연구인데 논문에서 현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가서 직접 현장을 보고 인터뷰를 진행해 그 내용을 바탕으로 논문을 수정한 후에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셨다. 몇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끝이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한국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구한 자료로는 부족하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충분히 납득은 했지만 생각보다 긴 여정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은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종 목표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곳을 향해 달리는 수밖에! 


하지만 그냥 별생각 없이 놀러 가는 것도 아닌 논문을 위한 필드워크라고 생각하니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긴장감이 나를 휘감았다. 단순한 여행이라면 비행기표와 호텔 예약만 하면 된다지만 필드워크는 여러 준비가 필요했다.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그들에게 어떻게 연락해야 하는지, 만나서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현지에서 얻은 정보(인터뷰 음성 등)는 어떠한 방법으로 기록해야 하는지 등등. 미리 계획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내가 이걸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 어쩌면, 정말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몰라! 어려운 길이 아닌 쉬운 길로 뭘 어찌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선배들에게 연락했더니 놀랍게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딴생각 말고 일본에 갈 준비나 하라는 것이었다. 한 선배는 교수님이 현장에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하신 이상 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 선배도 일본에 다녀오라는 교수님 제안을 어떻게든 한국에서 해결하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다 했는데 결국 다녀오고 나서 졸업했어.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직접 현장을 보고 온 사람이 쓴 논문은 확실히 다르더라. 그러니까 머리 굴리지 말고 빨리 날짜 잡아서 다녀와."라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나의 '딴생각'에 못을 꽂아버렸다.


그렇게 사례연구의 'ㅅ'도 모른 나는 그래도 졸업은 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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