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룩한 (예비) 연구자의 좌충우돌 학문 여정 2
과거를 곱씹으며 후회하는 일처럼 부질없는 것이 없다.
하지만 대학원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졸업, 수료 관계없이) 한 번쯤은 깊은 후회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린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희미하게 떠오르는) 대학 교수님의 응원과 부모님의 기대에 취한 나는 교수님이 추천하신 대학원과 다른 한 곳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인터넷 검색이라고 했던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대학원 입시에 발을 들이게 됐던 나는 관련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학부 입시와 달리 대학원 입시는 대학마다 방식이 달랐다. 전공 기초 시험을 봐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면접만으로 끝나는 곳도 있었다. 또 대학원 특성상 자대생이 아니면 입학하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지방 사립대 출신으로서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다니고 싶었던 나에게는 한결같이 반갑지 않은 정보들 뿐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입학 원서도 제출했을뿐더러 끝없이 커져가는 주변(특히 부모님)의 기대에 응하기 위해서라도 불리한 입장 따위 고민하지 않고 시도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선택한 대학원 두 곳 모두 면접만 실시하는 곳이었다.
F대는 인터넷에서 접한 '자대생을 우선시하는 곳'으로 분류되는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면접 장소부터가 그랬다. 면접 장소를 따로 마련하지 않고 교수님 연구실을 활용했다. 그렇다 보니 지원자들은 좁은 복도에서 서서 기다려야 했다. 엄밀히 말하면 서서 기다리는 이들은 타 대학의 학생들이었다. 자대생들은 조교가 전화나 문자로 연락을 주면 부리나케 뛰어 왔으니 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F대 출신 학생들의 복장이었다. 대학원 면접이라는, 어찌 보면 인생의 향방이 결정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순간을 위해 멀끔하게 정장을 갖추고 온 타 대학의 학생들과 비교될 정도로 자대생의 복장은 자유로웠다. 운동복 바지를 입고 온 지원자도 있었다. 몇몇 자대생은 합격을 자신한다는 듯 "그럼 교수님만 믿겠습니다."라고 웃음 섞인 한 마디를 뒤로 하고 연구실에서 나오기도 했다.
면접은 3인이 동시에 연구실로 들어가는 형식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진행 방식도 타 대학교 학생들에게는 불리한 형세였다. 나의 경우, 나를 뺀 두 명이 자대생 출신이었고 그들이 교수와 나눈 대화는 대학원 면접이라기보다는 학부 졸업을 앞둔 설렘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분위기가 그러하다 보니 '왜 대학원에 입학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연구하고 싶은지, 어떠한 연구자가 되고 싶은지'와 같은 뻔한 면접 질문은 낄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내가 발언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럴 기회도 없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면접을 마치고 건물 로비 의자에 앉아 있었던 다른 지원자들 또한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동물이다. 이쯤 되면 지방 사립대 출신이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야망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얼마나 덧없는 선택인지 깨달았을 법도 한데 당시의 나는 학부 지도교수님의 안목을 믿겠노라며 희망을 꿋꿋이 부여잡았다.
보잘것없는 실력을 일본에서 제대로 확인한 나였다. 그러나 근거 없는 자신감과 긍정으로 한껏 무장한 나는 교수님의 모교이기도 한 Q대의 면접 장소로 향했다. 다행히도 Q대의 면접은 시종일관 진중하고 또 시험다웠다. 지원자들은 물론이요, 안내하는 조교도, 교수님도 다들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듯 굳은 표정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웃음이 터질 때도 있지만 그때는 앞선 황당한 경험도 있고 하여 그 진지함이 나의 결심과 도전의 무게를 이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Q대 면접은 세 명의 교수님이 한 명의 지원자를 맞이하는 방식이었다. 딱딱한 표정의 교수님 세 분이 돌아가면서 질문을 하나씩 하셨는데 주로 원서와 함께 제출한 연구 계획서에 관한 것이었다. 전형적인 대학원 면접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지원자 앞에 놓인 한 장의 종이였다. 가운데 앉아 계신 교수님(훗날 내 지도교수가 되신 분)이 종이에 쓰인 글을 소리 내서 읽어보라고 하셨다. 원서로 된, 그러니까 일본어로 된 전공서적의 일부를 복사한 것으로 긴장감에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가뜩이나 긴장으로 인해 머릿속 회로가 엉망이 되곤 할 때 모르는 단어 하나가 등장하자마자 음독의 리듬감은 산산이 부서졌다. 동시에 내 멘탈도 가루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신은 내가 풍화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Q대 대학원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마지막 지문 읽기에서 실수를 연발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고 좀 의아했다. 순간 '학부 교수님께서 잘 이야기해 주셨나 보다'라고 추측했지만 절대 아니었다. 학부 교수님은 선후배 관계이긴 하지만 소원한 선배에게 제자의 입학을 부탁할 만큼 적극적인 분이 아니셨다. 대학원 지도 교수님 또한 학부 교수님 이야기를 듣고 "오! 그 친구 잘 있지?"라며 담담한 어조로 대답하신 정도였으니... 운이 따라준 것뿐이었다.
운 좋게 대학원에 입학한 나에게 첫 한 달은 꿈과 같은 시간이었다. 지방 사립대 학생에서 서울의 유명한 대학원 학생으로 신분 상승(?)을 이룬 데다가 학부와 비교해 대학원 수업은 꽤나 여유로웠기 때문이었다. 나이도 성장 배경도 천차만별이었지만, 비슷한 이유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대학원 동기들은 최고의 대화 상대였다. 좋은 사람들, 즐거운 대화, 맛있는 음식, 시간적 여유가 넘치는 일상. 모든 것이 완벽했다. 꿈과 같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끝이 있는 법이다.
선배들과 함께 하는 수업에서 신입생이었던 우리에게 수업 분위기와 흐름을 익히라며 교수님은 발제 순서를 뒤로 해 주셨다. 바꿔 말하면 첫 두어 달은 별 다른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했던 것이다. 하지만 발제 순서가 다가오자 불안감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Q대는 모든 수업이 전공언어로 진행된다. 이는 일본어로 발표해야 하고 발제 자료도 일본어로 작성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 순서가 가까워질수록 선배들이 준비한 자료가 얼마나 고된 노동에 의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문장 하나에 어린 땀방울이 생생히 전달되는 것은 물론이요, 자료의 두툼함에서 보이는 성실함도 나의 뒤통수를 쳤다. 발제 자료 마지막 장에 빼곡히 적힌 참고 자료 리스트를 볼 때마다 숨이 막혔지만 숨 고르기를 할 틈도 없었다.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좋아하는 이들과 향기로운 커피를 두고 담소를 나누던 시간은 끝났다. 도서관과 연구실로 출퇴근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비좁은 서가를 오가며 관련 서적을 뒤적였다. 일본과 한국에서 발표된 논문을 검색한답시고 하루 종일 모니터만 바라본 날도 있었다.
자료를 모으는 일은 그나마 할만했다. 문제는 모은 자료를 발제 주제에 맞춰 말끔하게 일본어로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나날이 시작됐다. 연구(학문) 능력의 한계에 더해 또 하나의 스킬이 결여되어 있는 인간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상을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는 능력!
대학원생에게 가장 절실한 요소를 꼽으라면 일상을 제단하고 계획을 실천하는 것이다. (비단 대학원생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학부 시절, 좀 더 멀게는 고등학교 생활과 비교하면 대학원생의 수업은 1주일에 고작 3~4번뿐이다. 전공마다 상황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이수해야 하는 학점만 놓고 본다면 수업 스케줄은 조금 여유로운 편이라 하겠다. 게다가 내가 소속되어 있는 일본학과는 (이 또한 다 다르겠지만) 다수의 인원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도 거의 없었고 학제 간 공동연구도 드물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다닌 대학원은 연구와 공부를 강제하는 요소라고는 수업 빼고는 전무한 곳이었고 따라서 개인이 착실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그런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꼼꼼한 계획을 바탕으로 하는 주도적인 삶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돌이켜 보면 평생이 '닥치면 한다'로 살아온 나날이었는데 대학원 문턱을 넘었다고 이 습관이 연기처럼 사라질 리가 없지 않은가.
사람은 의외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매일같이 일정 분량이 전공서적과 논문을 읽고 쓰는 대신 '대학원이 이렇게 한가한 곳이었나?' 하는 착각을 뒤집어쓰고 베짱이 같은 시간을 보냈다. 불이 발등에 떨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학문을 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품고 오는 곳이 대학원이라면 매일 읽고 쓰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전공 지식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떠 주는 것을 받아먹는 생활에서 직접 떠먹는 일을 훈련하는 일이다.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정립하여 꾸준히 input과 output을 반복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결실(논문)을 얻을 수 있기에 자신의 일상이 어떤지 분석하고 수정해 나가는 자세는 꼭 필요하다.
만약 이 부분에 있어 개선의 의지도 노력도 없는 사람이 대학원에 간다면 어떨까? 읽는 일과 쓰는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를 습관화하겠다는 마음도 없고 결국 모든 것을 닥쳐서야 하는 이가 과연 대학원이라는 곳에 합당할까. 내 경험상 이런 사람은 대학원에서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낼 수 없다. 아마 산더미처럼 쌓인 자료와 글쓰기 사이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며 매일같이 눈물을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그리고 비참하게도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는 대학원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여전히 읽고 쓰기의 행위를 일상의 중심에 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에 열정을 불태운 과거가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호기심은 남들 못지않게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답을 찾기 위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적이 거의 없다. 노력과 끈기에 그 어떤 접점도 없는 이가 대학원에 진학하다니!
하지만 운명이란 참 신기하다.
맞지 않는 옷이라 여겼던 '대학원'과의 인연은 '석사'에서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