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수룩한 (예비) 연구자의 좌충우돌 학문 여정 1
처음 누군가를 만나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은 이렇게 물어본다.
"대학원 진학은 어떻게 결정하신 거예요?"
여러 번 겪은 질문이지만 조우할 때마다 참 당황스럽다. 왜 대학원에 진학했는지 그 명확한 이유를 나조차도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먼 과거의 기억이어서인지 혹은 여러 이유가 뒤섞여서인지 결정적인 하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앞선 질문과 조우할 때마다 얼버무리고 만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하하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사실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대학원 진학을 꼼꼼히 계획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글을 써 내려가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시작이라 부를 만한 순간은 있었다.
때는 학부 4학년. 한 분의 교수님과 친했던 나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조금 더 자주 교수님의 연구실에 놀러 가곤 했었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중 교수님은 나에게 말했다.
"혹시 대학원 진학 생각해 본 적 있어? 내가 석사를 ○○대학원에서 했는데 거기 교수가 내 선배거든. 한 번 생각해 봐."
솔직히 고등학교 때도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고 대학도 지방 사립대 출신인 나에게 교수님의 이런 제안은 예상 밖이었다. 당시 나에게 대학원은 유명한 서울권 대학교 출신들이 억누르지 못한 학문 열정을 분출하기 위해 가는 곳이었다. 나와는 그 어떤 접점도 없는 세상으로 범인(凡人)인 내가 감히 상상지도 못한 곳이 대학원인데 나더러 그곳에 가 보라고요? 당시 내 머릿속에서는 한 마디가 계속 맴돌았다.
'교수님,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거 아니죠? 대학원이요? 제가요? 아니 왜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위의 문장을 곧장 내뱉고 싶었지만 꾹 참으며 대답했다.
"교수님, 전 대학원 진학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저의 어떤 면을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 저처럼 공부에 소질 없는 사람이 대학원엔 가도 되나요?"
교수님의 정확한 답변은 기억나지 않지만 "너 정도면 대학원에서도 잘할 거다" 정도의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공붓벌레들이나 간다는 대학원에 가도 괜찮은 사람이 나라는 평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 줄 만한 한 마디였다. 그래서 나는 신중한 고민 대신 들뜬 마음으로 부모님께 곧장 달려갔다.
"우리 교수님이 말이야, 아니 글쎄 나더러 대학원 진학을 생각해 보라고 하시는 거 있죠? 나라면 잘할 거래요!"
돌이켜 보면 학부생의 나를 교수님이 높게 평가한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정말 공부와 친하지 않아 고등학교 3년 내내 학교 공부와 관계없는 책만 들고 다니며 읽었었다. 시골 출신의 단점이라 하면 학내에 부모님의 지인이 잔뜩 포진해 있다는 것이었고 나의 만행은 늘 생생하게 부모님께 전달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수학 시간과 과학 관련 과목 시간에 교과서 대신 소설책 등을 탐독한 내가 공부에 재미를 붙인 건 대학에 입학한 후였다. 배우고 싶었던 일본어를 차근차근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고 수험 공부 대신 읽었던 책을 교재로 하는 교양 과목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암기를 전제로 하는 단답형 문제가 아닌, 서술형 시험 문제 또한 시험의 부담을 줄여 주었다. 대단한 대학에 입학한 건 아니었지만 즐겁게 공부를 하다 보니 좋은 기회도 찾아왔다.
학부 3학년 때였나? 교수님은 나에게 [일본어 일본문화 연수생 프로그램(현 일한공동 고등교육 유학생교류사업)]라는 게 있다며 한 번 도전해 보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일본(어)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교수 추천을 받은 1명의 학생이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자신이 선택한 일본 대학에서 1년 동안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배울 수 있는 [일본어 일본문화 연수생 프로그램]은 학비가 면제되는 것은 물론이고 매달 생활비도 나온다. 일본어, 일본문학, 일본문화 등을 공부하는 대학생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기회라 하겠다. 학교와 교수 추천을 받아야만 대사관이 실시하는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설명에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일본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나는 덜컥 교수님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때부터 맹렬하게 일본어를 공부했다.
내 인생에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한 때를 꼽으라면 [일본어 일본문화 연수생 프로그램] 시험을 앞둔 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본어능력시험 1급 단어장을 모조리 암기하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고등학생 시절 때도 이렇게 공부하지 않았었다. 공부와는 딱히 인연이 없는 인생이라 생각했었는데 일본 대학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불태웠다.
운 좋게도 시험에 합격한 나는 학부 대학을 1년 휴학하고 일본으로 향했다. 이리저리 고심한 끝에 고른 K대에서 1년 간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일본어를 공부하게 됐지만 슬프게도 내가 상상했던 꿈같은 시간은 아니었다.
대학마다 [일본어 일본문화 연수생]을 위한 커리큘럼이 달랐는데 K대에서는 1년 간의 배움을 소논문으로 마무리 짓도록 했다. 한국 대학에서 리포트를 쓰긴 했지만 K대에서 요구하는 소논문은 졸업 논문 수준의 것이었다. 소논문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담당 지도교수와 만나 무엇을 주제로 쓸 것인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조사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고해야 했는데 이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진지하게 논문 형식의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일본인 교수님이 차근차근 알려주긴 했지만 한국어도 아닌 일본어로 문헌을 뒤지고 글을 읽고 이해하고 쓰는 일은 솔직히 말하면 고역이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혼자 운 적도 많았다. 무엇보다 날 힘들게 한 것은 이러한 과정에 익숙해진 유럽 친구들의 여유였다. 일본어 실력은 한국인들에 비해 좋지 않았지만 자료를 찾고 읽고 소화하는 일에 있어서는 시종일관 노련함을 보였다. 모두가 두 걸음 씩 전진할 때 제자리걸음만 하는 내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닥치면 한다고 했던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하는 수밖에 없다. 해야 한다니까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내용은 자신 없지만) 형식은 갖춘 소논문을 쓰게 되었고 학회를 연상케 하는 발표회도 가졌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고 한국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나에게 소논문 지도 교수님이 말했다.
"수고했어요. ○○상이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할 때마다 정말 걱정했는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때 사람이 성장하는 법이거든요. 한계를 넘어선 것 축하해요."
힘들었지만 성장의 시간 1년을 갖고 난 후 다시 한국 대학에 돌아온 내가 과거의 나와 같을 수는 없다. 일본어 실력도 늘었을 것이고 꾸준한 지도 아래 (어설프지만) 소논문이라는 것을 써 보았으니 리포트 수준도 예전보다는 좀 나아졌을 것이다.
실력 향상이야 당연한 결과이리라. 하지만 문제는 내가 나를 인식하는 방향이 긍정이 아닌 부정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여러 방식으로 내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확인해야 했다. 할 줄 아는 외국어는 일본어밖에 없고, 스몰 토크를 잘해 분위기를 리드하지도 못하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며,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며, 뛰어난 순발력으로 위기를 극복하지도 못한 사람. 일본에서 보낸 1년은 나의 부족한 부분만 돋보이게 했고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그렇게 움츠러든 나에게 대학원을 진학을 생각해 보라는 교수님의 긍정적인 평가는 한 줄기 빛 그 자체였다. 다른 곳도 아닌 대학원이지 않은가. 공부 잘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만 간다는 그곳! 그곳이 나에게 어울린다는 데 싫어할 이유도 부정할 이유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대학원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나는 대학원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