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bway - Young for Eternity, 2006
<성급히 판단 말고 급하게 내치지 말자 1>과 이어집니다.
‘후회’라는 주문으로 봉인되어 구석 어딘가에 처박혔던 The Subway의 [Young for Eternity]가 다시 그 자태를 드러낸 건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집 어딘가에 내던져진 이삿짐 박스를 연 순간이었다.
일상에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운 물건을 넣어둔 상자였다.
시디를 발견한 내 얼굴을 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뭐야? 그 놀란 표정은? 네가 싼 이삿짐 아냐? 아니, 네가 산 앨범 아냐? 뭘 그리 놀라고 그래?"
생각지도 못한 CD 한 장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러다가 보라색 재킷과 함께 후회로 진득했던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밀려왔다.
‘그래도 나의 어리석음을 보듬어 주고 싶은 은근한 마음은 있었는지 버리고 오진 않았구나. 근데 어떤 노래를 부르는 그룹이었지?’
후회의 감정 외엔 떠오르는 게 없어서 다시 들어보기로 했다.
엇?
이건?
아니?
내가 왜?
왜 이 시디 산 걸 후회한 거야?
정말 오랜만에 만난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게 없는 노래가 가득한 시디’였다.
음반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다 보면 가끔은 억지로 끼워 넣은 느낌의 노래와 조우하곤 하는데 The Subway의 [Young for Eternity]에서는 그런 위화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오밀조밀한 이야기 하나를 들은 느낌이랄까. 전반적으로 담백하고 깔끔한 곡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이렇듯 치우침 없는 균형 감각(나만의 생각이다)을 보여준 음반을 이토록 오랜 시간 외면했다니!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첫인상이 별로라고 전체를 외면하는, 나란 사람은 그런 타입이었다는 거야?‘
왠지 모를 자괴감도 밀려왔다. 감정적 거리를 좁힐 수 없었던 지난 2년의 시간을 되돌리겠다는 듯이 듣고 또 들었다.
계속해서 하나의 음반 혹은 노래를 듣다 보면 일상 속에 산재한 나의 시간, 감정, 환경 그 무수한 요철의 어느 움푹 파인 곳에 노래가 딱 들어맞을 때가 있다.
마음에 쏙 들었던 The subway의 음반이었지만, 이들이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퍼즐 조각처럼 마음의 빈 공간에 쏙 들어온 건 그로부터 몇 달 후였다. 이 경험 이후 그들의 작품은 그냥 그렇게 스치는 음악이 아닌, 완벽한 나만의 [감정의 퍼즐 조각]이 되어 ‘인생’이라는 퍼즐판의 완성도를 높였다. 다행히 나는 그 순간을 아주 선명히 기억한다. 아니, 다시 말해야겠다. 아주 선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글을 쓰려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더니 환희의 감정만 선명했지 나머지는 흐릿하다 못해 공백뿐이니 말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질 않는다. 시간대도 오전 중 정도로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날씨는 쾌청했고 고속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중이었다. 물론 목적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버스 안에서 The Subway의 [Young for Eternity]를 들었던 것만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버스의 흔들림, 창 밖으로 펼쳐진 파란 하늘,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버스 내부의 공기.
나른함으로 이끄는 요소들 안에서 잠의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는 정신상태였다.
바로 그때! 내 마음의, 감정의 (혹은 영혼의) 표면을 핥듯이 지나가기만 했던 멜로디가 푹 꽂혔다.
굉장한 속도로 파고들었다. 단순한 관통이 아니었다. 관통은 빠져나가면 흔적만을 남길뿐이다.
쑥 치고 들어와서 확 빠지는 그런 감각이 아니었다.
관통과 동시에 파고들었고 흡착했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그리고 꿈틀대며 내 속의 반 곳 어딘가에 자신만의 둥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공간이 넓어질수록 벅차오름도 커져갔다.
대략 이쯤 되면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 이런 노래를 만드는 이들과 같은 시간대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감사.. 마지막엔 이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파란 하늘 아래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 노래를 듣는, 모든 것들이 완벽히 조화를 이루는 이 순간과 그 우연이란! 이런 순간과 우연의 발견이 삶의 기쁨이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어떤 것들이 어느 한 때에 한 자리에 모였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그 무엇! 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안성맞춤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쏙 안기는 그 느낌이 가능했던 건 만남 이외의 다양한 필요 요소가 갖춰졌을 뿐만 아니라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서 가능해진 무엇! 이것이야 말로 “타이밍”이 만들어내는 기적 아닐까?
이 모든 조화는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2년 후 버스에 몸을 실을 예정도 그날의 하늘색과 온도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그때를 기다리는 것. 필요한 것들이 제 자리를 찾기까지 조금 떨어져 가만히 있는 것. Subway와의 만남도 알맞은 때가 필요했던 것일 뿐.
가끔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기다림” 뿐일 때가 있다
어떤 대상과 처음 마주했을 때 감정이나 상황에 휘둘려 성급히 판단하고 때론 선긋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런 순간의 결정이 이야기의 끝을 장식하기도 때론 하지만 작은 기다림이 앞선 실수와 착각을 무마해주기도 한다.
The Subway와의 기적적인 만남과, 외면, 이후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그건 바로 ‘성급히 판단 말고 급하게 내치지 말자’가 아닐까. (요즘은 CD가 아닌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접하니, 최근 상황에 맞춰 문장을 조금 바꿔보면 ‘성급히 판단해 급하게 지우지 말고 [나중에 플레이리스트]에 고이 모셔두자’ 정도가 되겠다.) 묵혀뒀다가 문득문득 찾아들어보면 분명 내 감정의 톱니바퀴 어딘가에 딱 맞는 형태로 미완성된 감정선 일부분을 채워 주겠지. 그러니까 다시 한번 ‘성급히 판단 말고 급하게 내치지 말자!’를 외쳐본다.
(문제는 이게 책이나 음악, 영화 등 창작물에는 적용 가능하지만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내 속 어딘가에 막힌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라는 편견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