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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나 Oct 28. 2022

필드워크를 통해 배운 것

어수룩한 (예비) 연구자의 좌충우돌 학문 여정 4

학문적인 이유에서가 아닌, 세 줌 정도의 호기심과 다섯 줌 정도의 충동으로 정한 석사 논문 주제를 가지고 제대로 된 필드워크를 실시한다는 일은 나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먼저 모처럼의 필드워크를 위해서는 연구 사례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기에 그것의 역사를 다시 한번 정리하고 또 숙지했다. 연구 대상에서 실시하는 사업의 성격과 그 역할도 반복해서 확인했고 이렇게 작성한 자료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몇 개 추려 질문을 만들어 나갔다. 


질문 항목을 깨끗이 정리한 후에 남은 일은 인터뷰 대상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아니, 지금도 어렵다. 인터뷰를 부탁하는 입장이다 보니 최대한 정중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외국어로 예의 바른 이메일을 쓰는 일은 외줄 타기 같달까. 잘못된 단어 선택 하나로 인터뷰가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면 문장 하나에 온갖 고심을 담게 된다. 나름의 인터뷰 의뢰 메일의 형식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인터뷰 대상에 따라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담아야 하기에 늘 처음인 듯 어렵다.


메일을 보냈다고 끝이 아니다. 상대방에게서 호의적인 답변이 오기 전까지 긴장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인터뷰에 응해주겠다는 답변을 받고 나서야 겨우 편하게 숨을 쉬게 되는데 그렇다고 가는 날만 기다릴 수는 없다. 인터뷰에 협조해 준 분들께 드릴 작은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게 또 간단치가 않다. 인터뷰라는 번거로운 작업에 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담긴 한국적인 선물을 찾는 것. 처음에는 적당한 가격의 기념품을 사면 되지 않을까 하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사서 준비하고 보니 무언가가 심히 부족했다. 나를 위해 귀한 시간을 쪼개어 내준 분에게 뻔한 기념품은 너무 성의 없어 보였달까.  개인을 인터뷰하는지 단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는지에 따라 선물의 종류의 수량이 달라지니 이것 또한 무시 못할 부담 중 하나다. 






제 연구와는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머리털 나고 처음 해 보는 필드워크! 방문하고 싶은 기관의 담당자와 약속을 잡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특정 장소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세심히 관찰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연구 사례와 관계있는 다른 현장을 방문하여 대상에 대한 이해의 지경을 넓히는 이 작업은 초보자에게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시험이자 난관이었다.

그래도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덜덜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어찌어찌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다행히 외국인 아티스트와 협업을 자주 하는 큐레이터에게 나의 엉성한 언행은 불쾌감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유려한 배려 덕분에 첫 인터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별 탈 없이, 그것도 외국어로 인터뷰를 끝마쳤다는 안도와 함께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예상치 못한 깨달음이었다. 막상 현장을 찾아 눈으로 확인하고 피부로 느끼고 또 육성으로 여러 경험을 듣게 되자 흐릿하던 윤곽이 또렷해졌다. 논문에서 어떤 부분을 더 강조해야 하는지, 어느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는지, 어떠한 내용의 추가 조사가 필요한지 등등의 아이디어가 샘물처럼 솟아났다. 쏜살같이 내리 꽂히는 아이디어를 놓치고 싶지 않아 큐레이터에게 연구 사례(미술관 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인 아티스트의 연락처를 물었고 그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는 행운도 거머쥐게 됐다.  이 모든 것이 현지에 방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인터넷으로 다양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발품을 팔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아직도 많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조금이라도 쉽게 해결해보고자 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현장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뼈저리게 느꼈다. 무엇보다 글과 사진, 영상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요소를 등한시한 나의 오만함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산산이 부서졌다. 큐레이터의 나긋나긋하지만 진중한 목소리에서 울려 퍼지는 단호함과 자신감.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건물의 외벽을 스크린 삼아 영상 작품을 전시하는 이들의 의도, 숫자로 전환된 정보에는 담을 수 없는 작가와 관람객의 열정 등등. 심지어 빔 프로젝터의 빛줄기에서 흩어지는 먼지마저 무지하고 몽매한 나를 깨우는 매개로 작용했다. 그렇게 짧은 기간의 경험은 나를 또 다른 세계(필드워크)로 인도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점이 많은 석사 논문이었지만 직접 현장을 방문해서 알게 된 점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분석했다는 부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3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됐다. 남들처럼 2년만이 졸업하는 위업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3년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했던 나의 일본어 실력은 바닥이었고, 발표 전날은 긴장감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다는 것, 무엇보다 분석적이지도, 집요하지도, 주도면밀하지도 않은 나에게 연구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걸 확실히 확인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깨달음의 파도 속에서 물을 삼키고 기침을 연발하는 경험을 했다면 대학원에 대한 모든 감정을 접고 사회에 나가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한없이 바보 같은 나는 별 뜻 없이 던진 주변인의 한 마디에 다시 한번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게 된다. '바보는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옛말이 딱 맞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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