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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나 Nov 22. 2022

박사과정 입학을 결심하다

어수룩한 (예비) 연구자의 좌충우돌 학문 여정 5

한 번의 실수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이쯤 되면 '정말 실수인 걸까?'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나는 실수를 한 것일까?

아니면 운명의 길을 따라 걸었던 것일까?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다시 선택한 대학원.

사람의 '욕심'이란 참으로 무섭다.

그렇다. 모든 것은 '욕심'에 의한 것이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욕심'이라는 단어 말고는 바보 같은 선택을 반복한 나를 설명할 길이 없는 걸 보니.. '욕심'이 확실히다.




논리적이지도 지성적이지도 않은 내가 어쩌다 대학원 석사과정에 발을 담그게 되었고, 남들은 2년이면 끝낼 석사과정을 3년에서야 끝냈다. 이쯤 되면 현명한 이는 깨닫는다.

'아, 연구는, 공부는 내 길이 아니구나.'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랬다. 석사 논문 심사일에 바짝바짝 타는 입술을 깨물며 이런 날을 맞게 한 과거의 나를 원망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번 심사만 끝나면 대학원과도 영영 이별이다. 다신 이쪽(학교가 위치한 방향)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겠어!'


하지만 이 다짐은 석사 논문 심사가 끝난 두어 달 이후 산산조각 나버렸다.

석사만 졸업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외치며 달려온 지난날을 떠올리며 바라던 결과를 손에 쥐었을 때의 성취감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세상이 다 내 편인 것만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이게 꿈이야, 생시야!'를 반복하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웃음을 흘리던 기분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그래서 앞으로 나는 어찌해야 하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졸업의 기쁨이라는 불꽃이 꺼져 싱숭생숭한 기분을 다스리지 못하던 어느 날, 대학원 선배 언니와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였다.


"그래서 넌 앞으로 뭐 할 거야? 취직? 혹시 박사과정 진학은 생각해 본 적 없어?"


'아니 무슨 질문이 그런가요! 나더러 또 대학원에 발을 들이라고요? 석사 만으로 충분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대학원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요. 아시잖아요, 제가 그다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 전 석사 학위로 충분합니다. 더 이상 욕심부리면 안 되지요. 박사요? 저 같은 사람에게 가당키나 하답니까?'


언니의 질문을 듣자마자 대략 위와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부인하는 나에게 언니의 한 마디는 일종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래도 한 번 생각해 봐. ★★ 언니나  ◆◆ 오빠 같은 사람이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원에 온 이유가 뭔데. 박사학위에 남은 미련을 떨쳐내지 못해서야! 본인들도 그렇게 말했잖아. 물론 취직해서 자리 잡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그때 다시 공부해도 늦진 않은데... 이왕 생각이 있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공부하는 게 쉽지 않겠어? 두 사람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도 있잖아. 박사학위를 조금이라도 생각한 사람은 결국 대학원에 돌아오게 된다고. 자신들처럼 너무 늦게 돌아오면 체력 딸려서 공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중에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느냐.' 하는 거야."


그랬다. 우리 대학원에는 쉰을 넘긴 두 명의 박사과정생이 있었다.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한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지내다가 박사학위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입학한 이들이었다. 두 명의 선배도 그렇고 교수님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지나가듯 이야기하시곤 했다. 박사학위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은 언젠가 다시 대학원에 몸을 담게 된다고! 그러니 이왕 할 거 하루라도 젊었을 때 끝내라고!




선배 언니가 이렇게까지 말한 이유는 석사생 시절, 박사학위까지 따면 참 좋겠다고 여러 번 언급(하지만 그다지 진지한 상황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한 나를 알고 있었서였다. 솔직히 박사학위에 대한 실낱같은 욕망이 내 안에 존재하긴 했다. 그 '욕망'이라는 게 '관심 분야를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서'라든가, '나의 연구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서'라든가 뭐 그런 이유는 절대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박사학위를 따면 참 좋겠다는 막연한 동경의 끝에 닿아있는 대답은 '멋있어 보여서, 있어 보여서'였다. 그렇다! 가뜩이나 무식하고 부족한 나이지만, 박사학위 정도 확보해 놓으면 좀 있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박사학위를 탐낸 가장 큰 이유였다. 여기에 이유 하나를 덧붙이자면 '그 잘난 박사학위, 나도 한 번 가져보자!' 하는 오기도 있었다. 이 마음은 동경이라기보다는 경멸에 가까운 감정인데 박사들과 안 좋게 꼬인 우리 가족의 가정사도 한몫했다.


돌아가신 아빠는 등단한 소설가였다. 유명한 소설가로 이름을 날리지는 못했지만 시골에서 글 쓰는 사람은 귀했고 그래서 문학과는 관계없는 여러 일을 도맡아 하셨다. 그중 하나가 향토사를 정리해 책으로 발간하는 일이었는데 내 기억에 이건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도의 작업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사료를 찾아서 모으고 그걸 정리한 후 너무 어렵지 않게 책을 쓰고 편집했으니! 아빠의 작업이 시발점이 되어 확장된 것들도 꽤 된다.


하지만 그 잘난 박사들에게는 별 대단할 것 없는 성과였나 보다. 여러 명의 대학교수들이 논문을 위해, 저서 작업을 위해 자료를 원한다고 연락해 오거나 찾아왔는데 한결같이 각주 하나 달지 않고 자기네들의 위업인 마냥 상당량의 문장을 도용한 것이다. 이런 경우를 몇 번 접한 아빠는 처음에는 화도 났지만 그래도 자신의 노력이 누군가의 연구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리 기분 나쁜 일도 아니라고 하셨다.(지금 생각해 보건대 이건 자식 앞이라서 했던 뻔한 말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소설가로 등단을 하긴 했지만 대학을 졸업하지는 못하셨다. 대학에 합격했지만 장남도 아닌데 대학은 뭐하러 가냐는 부모님(할머니, 할아버지)의 반응에 일찌감치 마음을 접고 입대를 하신 후 그래도 소설은 놓을 수 없어서 등단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혹 할머니, 할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면 박사학위 정도는 충분히 따셨을 분이었으니! 몇몇 대학교수들의 만행이 참으로 화나고 또 억울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있었던 일이라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원에 몸을 담고 보니 그게 얼마나 양심 없고 파렴치한 도둑질인지를 알게 되었고(이런 인간들이 대학 교수라고 교단에 서는 것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끔찍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여전하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저런 인간들도 박사학위 따서 대학교수라고 얼굴 들고 다니는데 말이야! 그깟 박사학위 나도 한 번 따 볼까?' 하는 말을 내뱉게 되었다. 언젠가 내가 꽤 괜찮은 연구자가 되었을 때 이런 짓을 일삼는 녀석들을 다 까발리고 말리라는 마음을 저변에 둔 '박사학위'이니...

그렇다. 박사학위를 향한 나의 '욕망'에 학문을 향한 순수한 열정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감히 고백한다).


뭔가 좀 있어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데다가 아빠에게 모욕감을 안겨 준 그들과 동일한 입장이 되어 혹 그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제대로 대응해 주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은근히 박사학위를 '욕망'하긴 했지만 석사과정을 마친 후에는 이런 마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도저히 이런 짓을 또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무엇보다 나는 박사를 딸만큼의 실력도 끈기도 지능도 없는 사람이었기에 '박사학위'를 향한 마음을 살포시 접으려 했다.





하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라는 언니의 마지막 말은 나를 크게 흔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다시 물었다.


'너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학위를 따 놓을 걸 그랬다는 후회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니? 정말 이대로 끝내도 괜찮은 거니? 그게 네가 진정 바라는 일이니?'


진지하게 1년 정도를 고민했던 것 같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석사 졸업 이후 직장과 관련된 자신의 선택을 보고 '아, 대학원으로 가야겠구나.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구나!'하고 바로 알았을 텐데...

난 그렇지 못했다. 1년 정도 지난 후에서야 안정된 직장을 요리조리 피하는 나를 보고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박사학위에 미련을 가지고 있구나!'


그렇게 1년의 시간을 쓴 뒤에 비로소 나의 마음을 확인했고, 본격적으로 일본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국내 박사과정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이왕 하는 거 일본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 국내 박사과정생들의 힘든 생활(교수님 접대하기 등등등, 셀 수 없이 많지만 여기서 다 말할 수 없기에... 물론 모든 박사과정생이 다 그렇지는 않다)을 보고 들은 것이 있었기에 나의 경제적 사정 등을 고려했을 때 나에게 허락된 건 일본 정부 장학생으로 일본 국립대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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