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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써니 Apr 03. 2023

01_병원에 가지 못하는 병

가족들을 보지 않은 지 어느덧 햇수로 9년. 그런데도 원가족의 많은 잔재가 내 안에 존재한다. 특히 몸이 아플 때마다 그것을 자주 느낀다.     


아빠는 내가 아플 때마다 병원에 데려가거나 약을 먼저 먹이기보다 핀잔을 주기 바빴다. “너는 멀쩡한 애가 왜 난리냐!”라며 엉뚱한 곳에 돈을 쓰게 만든다고 짜증을 냈다. 타고나길 편도가 부어있어 가뜩이나 알약을 삼키기 힘들었던 나는 가루로 빻아놓은 쓰디쓴 약을 삼키는 것보다 눈치를 살피는 게 더 쓰렸다.     


이런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병원에 다녔던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로 몇 안 되게 선명하다. 감기에 걸렸을 때 찾아갔던 오래된 병원, 덧니를 뽑으러 갔던 시골의 작은 보건소, 교통사고로 인해 검사를 진행했던 초등학교 근처의 병원.

교복을 입고 다닐 즈음은 병원에 딱 한 번 갔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태어나 처음 갔던 정형외과. 그 뒤로 20대 중반에 갑상선기능항진증을 발견하기 전까지 병원에 간 기억이 없다.     

이렇듯 내가 자랄수록 방치는 더욱 심해졌고, 인격은 퇴행하듯 엄살이 늘었다. 제발, 아픈 나를 좀 봐줬으면 했다. “많이 아파?”라는 한마디 말이라도 해줬으면 했다.               




시간이 흐르고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부모가 나를 그렇게 키운 것이 많이 서럽지는 않다. 다만, 부모가 나를 대했던 방식 그대로 내가 나를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저리 나도록 부정하고 싶을 뿐이다. 이따금 이성이 이것을 자각할 때마다 마음이 시려 견딜 수가 없다.     


아무튼 이제 나를 돌보는 것은 오로지 내 몫인데, 병원에 가기가 참 쉽지 않다. 몸살감기 정도는 일주일이란 시간을 버려가며 약도 먹지 않고 미련하게 누워 지내는 사람이 나다. 배탈이 나거나 몸에 상처가 나도 웬만하면 참는다. 그리고는 ‘아프니까’라는 핑계로 배달 음식을 우걱우걱 먹어댄 후, 또 ‘아프니까’ 뒷정리도 하지 않은 채 누워버린다.

이런 식으로 방은커녕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지도 어느덧 9년.     


몸이 아프면 내가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사는 등 돈을 쓰는 것도 ‘불필요한 지출’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몸이 아플 때마다 마음도 같이 탈이 나곤 했다.          



갑상선기능항진증, 역류성식도염, 과민성대장증후군, 안면홍조, 저혈압, 고지혈증, 일자목, B형 간염 항체 없음 등의 질환이 있는 나는 정기적으로 피검사와 초음파검사를 받아야 함에도 마지막으로 병원에 간 게 언제인지 기억나질 않는다.     


부끄럽지만, 이 자리를 빌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코로나에 걸렸을 때조차 일주일 동안 칩거하며 버틸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해 봤다. 자기 몸을 얼마나 돌보지 않는지… 자신도 미련하다 생각하면서 고치질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의 경우, 나 혼자 아프고 말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결국 자신을 어르고 달래 겨우겨우 병원에 다녀왔다.          



몸은 이런데 정신 건강은 오죽할까?     


중학생이 되던 무렵부터 나는 ‘나’에 대한 물음을 강하게 품기 시작했다. 그것을 달리 해소할 방법이 없어서 심리테스트를 자주 했고, 자연스럽게 우울증 자가 진단 테스트도 해보게 되었다. 결과는 매번 최고점.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료를 받아보라는 설명을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내 속이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은 물론, 남동생, 친척을 비롯해 선생님, 친구 등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일기장에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이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정신과 치료와 약에 대한 편견이 가득했던 상태에서 결국, 내 발로 혼자 정신의학과를 찾아가 우울증을 진단받고 지난 6년간 꼬박꼬박 진료를 위해 병원에 다녔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병원 가는데 마찰이 큰 내가 어떻게 정신의학과는 예약한 진료일마다 찾아갈 수 있었을까?

그만큼 간절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지병처럼 달고 사는 몸의 고통보다 오랜 시간 누적된 무기력감과 우울의 무게가 삶을 지속하는데 더 큰 걸림돌이 되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생활이 두 달 가까이 지속되던 2016년 가을, 마음 깊숙한 곳의 외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 죽을 용기가 없다고. 나는 너무나도 뜨겁게 살고 싶다고.          


자기 몸과 마음을 잘 돌보는 사람, 아프면 제때 병원에 가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대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나도 그런 태도로 나 자신을 대할 수 있을까? 가끔 이런 망상을 하고는 한다.

정말이지 나는 왜 이렇게까지 병원에 가는 게 어려운 걸까? 우울에서 벗어나는 언젠가의 그날이 오면 가능해질까?     


가끔 나는 ‘그날’을 간절히 바라곤 한다. 어떤 날이었으면 하는지 구체적인 그림도 없는 채로 오지 않는 그날을 막연하게 기다린다.

그날이 오면 나는 온전히 나의 방식으로 나를 돌볼 수 있을까?


오늘도 오지 않는 그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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