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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써니 Feb 14. 2024

잘 먹고, 많이 움직이고, 잘 자려는 이유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쁜 옷을 입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건강을 생각해서라도…”라고 으레 말하는 알맹이 없는 말에는 관심 없다. 비만으로 인한 건강 이상신호를 내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해도 솔직히 내 다이어트의 목적은 예뻐지는 데 있다.


서른 살이었던 2016년 10월까지만 해도 나는 제법 예뻤다. 깡마른 몸매는 아니었지만, 166cm에 55kg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면 어떤 브랜드에서든 옷을 사 입을 수 있었고 옷 입는 게 자유롭고 즐거웠다.

그런 내가 6개월 만에 30kg이 찌면서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의 내가 되었다. 인생 최고 몸무게는 98.5kg에서 끝날 줄 알았지만 103kg까지 찍으면서 80~90kg대와는 또 다른 얼굴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정말 예전의 모습을 찾으려고 아무리 애써도 보이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마지막으로 셀카를 찍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고 사진첩에는 자료용 스크린샷만 가득하다.



2019년, 독립출판의 형태로 출간했던 <희망의 방, H203>을 통해 밝혔듯이 서른 살 가을에 잠수이별을 당했고 관계지향형 인간인 나의 세상이 절망으로 무너져 내렸다. 사람 하나 때문에 두 달 가까이 먹지도 자지도 않았던 내 면역체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신경과 세포들이 극도로 긴장하고 불안해했다.

살려면 그 슬픔으로부터 나를 치유해야 했다. 그렇게 우울증 치료를 시작했고 항우울제 복용이 시작되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변화 하나가 바로 ‘식욕’이 돌아왔다는 것이었는데 한동안 멈춰있던 배꼽시계가 꼬르륵 -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항우울제는 딱 거기까지였다. 배고픔을 느끼게 하고 밥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고,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었으나 식사를 준비하고 다 먹은 그릇을 정리할 힘까지는 주지 못했다. 그래서 전처럼 식사를 만들어 먹지 못했다. 배달음식이 다 그렇듯 결국 끼니마다 고칼로리 대환장 파티의 시대가 도래했다.



극단적으로 먹지 않던 사람이 극단적으로 칼로리를 섭취한 탓이었을까?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살이 빠른 속도로 붙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아침에 28인치의 바지가 들어가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1~2kg이 왔다 갔다 할 때는 너무 살쪘다고 호들갑을 떨며 안절부절못하던 내가 한순간에 불어버린 30kg 앞에서는 웃음도 울음도 나지 않았다.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당장 외출하려면 어쨌든 80kg이 넘는 몸에 맞는 옷이 필요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옷에 몸을 구겨 넣으려고 몸부림치기보다 ‘됐고!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을 입자!’라고 생각하게 된 게.



생각 외로 엄청나게 살이 찐 자신을 스스로 비난하고 다그치는 일은 없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이럴 수도 있는 걸까?) 보통 때의 나였다면 자나 깨나 꿈에서도 맹비난을 멈추지 않았을 텐데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생각이 낯설게 느껴졌다.


다만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데 있어 많은 제약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너무 커져버린 내 몸에도 맞는 질 좋은 옷이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렇지만 플러스사이즈 쇼핑몰이라고 해도 120 사이즈까지 나오는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한국 여성 대부분이 하체통통족인데 반해 하체보다 상체가 더 통통한 내가 여유 있게 입을 수 있는 상의는 많지 않았다. 거기다 사이즈는 맞더라도 디자인이나 색상까지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는 건 정말이지 답이 없었다.

‘뭐야, 플러스사이즈는 취향도 없는 거야? 그냥 맞는 옷이 있다는 사실에 어이쿠, 감사합니다. 넙죽넙죽 이래야 하는 거야?’라며 슬슬 아쉬움이 커졌다.



그래서 잘 먹고 움직이고 잘 자고 싶다. 툭하면 인스턴트와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먹지 않다가 급하게 식사를 하는 나쁜 습관, 대부분 같은 자세로 시간을 보내고 밤마다 늦게 자느라 무언가를 또 먹게 되는 이 살찌는 루틴을 끊어내고 싶다.

오로지 예쁜 옷을 입기 위해서. 내 취향껏 옷을 입기 위해서.



전에는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 그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진심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면 사람들이 가치를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아무리 마음으로 외쳐도 보는 사람에겐 그것이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운동 삼아 잠시 방송 댄스를 배웠을 때 알게 되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춤을 추고 있지만, 카메라에 담긴 몸짓은 둔한 몸에 가려져 동작도 쉬워 보이고 여유롭게 춤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숨이 넘어갈 듯 정신없이 춤을 췄는데 세상 느긋해 보이다니!!!



이제는 타인이, 세상이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알아주길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런 나를 보여줄 것이다. 내가 남기고 싶은 인상으로 보이는 그날까지, 그 과정에 대한 기록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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