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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Kyoo Lee Jul 07. 2024

또 다른 시작은 저수지에서

초등학고 1학년 때 서울에서 전주로 이사를 갔습니다. 은행원이셨던 아버지가 전주 지점으로 발령이 나셨던 거죠.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나 시골 간다고 (죄송합니다 ㅠ 8세 철없는 어린 마음이었습니다) 슬픈 모습으로 인사하고 떠나왔지만, 전주에서 지냈던 2년 내내 그토록 즐겁게 동네 친구들과 매일같이 모험의 세계를 누비게 될 줄을 몰랐습니다.


저수지에서의 물놀이도 그러한 모험 중 하나였습니다. 저수지에 어떻게 아이들이 들어가 놀 수 있었던지는 지금도 약간 궁금하긴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더운 날 동네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첨벙 대며 노는 짜릿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같이 저수지 물놀이를 하는데, 필름이 끊긴듯한 시간이 잠시 있었던 듯, 정신 차려보니 친구들이 제 주위에 모여서 너가 물에 빠졌었는데, 저 형이 너를 구해줬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순간이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역시 전주에서 살던 아파트 앞 길에서 아주 느리게 오던 차에 살짝 부딪혔는데, 제가 스스로 놀라 큰 액션으로 넘어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찰과상을 입었고요. 그때도 그렇게 잠시 필름이 끊긴듯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예상과 다르게, 엄마는 그날 물에 빠져 죽을 뻔도 했던 나를 크게 혼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또 예상 못했던 얘기를 했는데요,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기억에 당시 엄마는 이미 수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언제 어떤 계기로 수영을 배웠는지, 본인은 수영을 좋아하면서도 나한테는 왜 그날 전까지는 수영을 시키지 않았었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담에 엄마를 만나면 물어봐야겠습니다.



엄마가 실제로 저를 수영장에 보낸 것은 서울로 올라온 다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다시 서울에서 살았는데요,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방학마다 집 근처 우이동의 삼원 어린이 수영장에 다니면서 수영 강습을 받았습니다. 겨울 방학 때도 갔었는데, 추운 날 수영장 안에 들어가는 찰나의 망설임도 잊을 만큼 짜릿한 날들이었습니다. 매일 같이 수영장을 다녔던 방학의 날들의 일과는 늦잠 - 이른 점심 식사 -  두 시간 정도 수영장에 일찍 가서 자유수영 하기 - 수영 강습 - 수영장 같이 다녔던 친구들과 집에 와서 간식 먹으면서 부루마블 게임하기 등등으로, 철저하게 수영 중심이었습니다.

수영 강습반에 처음 등록하면 초급반이 됩니다. 보통 다음 방학에는 중급반, 그다음 방학에는 상급반으로 올라갑니다. 별다른 심사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초급반에서는 자유형만 배웁니다. 맨 처음에는 키판 옆부분을 잡고 발차기, 그다음에는 키판의 아랫부분을 잡고 손동작을 연습합니다. 이걸 반복하다보면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면 키판 없이 자유형을 하게됩니다.


키판입니다. 측면과 아랫면의 용도가 다릅니다.


중급반에서는 배영과 평영을 배웁니다. 이때도 키판을 사용합니다. 배영은 잘 뜨라고 키판을 가슴에 안고 누워서 발차기를 연습하고, 평영도 자유형 같이 키판의 옆면을 양손으로 잡고 발차기 연습을 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말이지 키판이 없었다면 수영을 어떻게 배웠을지 모르겠습니다.


상급반이 되면 접영을 배웁니다. 근데 아쉽게도 제가 접영은 무언가 제대로 배운 것 같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팔동작과 돌핀킥을 어떤 리듬으로 조화시켜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모은 두 팔을 뒤로 빨리 당기기 위해 물속에서 곡선을 그리며 ("여성의 몸매를 그리듯"이라고 분명히 배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남자 코치님 위험한 발언을 하셨네요;;) 팔을 내려야 한다는 정도?


접영을 확실히 잘 알지 못해도, 강습 과정 상 접영이 마무리되면, 수영이 좀 익숙해지고 자신감도 생깁니다. 거기에 맞춘 것인지, 그때부터는 코치님들도 지도보다는 간략하게 지시만 합니다. "자-배-평-접 2회!" 자유형으로 25미터를 갔다가 배영으로 돌아오고, 평영으로 갔다가 접영으로 돌아오는걸 두 번 반복하라는 거지요. 힘들게 들려도, 초딩 수영꿈나무의 체력과 에너지라면 능히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자유형 턴을 배웁니다. 25미터에 거의 도달했을 때 물속에서 몸을 구르며 방향을 바꾼 다음 벽을 발로 차서 바로 리턴을 하는 동작이지요. 물속에서 앞 구르기를 하듯 몸을 구르는 순간 물 먹지 않으려고 열심히 코로 공기를 내뿜었더랬습니다. 자유형 턴까지 지나면, 상급반에서는 별다른 것을 배우지 않습니다. 딱 한 번 무시무시하게 생긴 6미터 (깊이입니다) 풀에 들어가 발이 전혀 닿지 않는 그 무서운 공간에 떠 있는 훈련?을 한 적은 있습니다.




수영을 좋아하고, 수영 충만하게 보낸 초딩 고학년 시절이 너무 행복했음에도, 중고등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방학 때 수영장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의 특별활동도 처음에는 당연히 수영부를 하다가, 점점 편하고 친구들이 많이 하는 부서들인 등산부(밖으로 여기저기 놀러다니는 시간), 독서부(만화책 보는 시간)로 점차 바뀌어갔습니다. 그 시절에는 만화책, 게임, 친구들과 노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어서 그랬을까요. 고등학교 2학년 정도부터는 공부 이외의 삶이 없었습니다. 친구들도 이제 더 이상 수영을 배우거나 수영장을 정기적으로 다니지 않았고요.


이제야 생각해 보면, 수영을 계속하면서도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했던 모든 일들을 여전히 다 할 수 있었을텐데, 그걸 그때는 몰랐어서 아쉽기만 합니다. 요즘 수영장에서 만나는, 넘치는 체력과 저돌적인 태도로 무장한 미국의 중고딩 수영 꿈나무들을 보면 그래서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수영을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에 동대문에 있는 수영장에서 만나 열심히 수영하면서 한 주를 마무리하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강사 선생님들이 자세도 많이 잡아주시고 좋은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배움은 오리발 수영입니다. 이때 처음으로 오리발을 끼고 수영을 하는 것을 배웠는데, 자유형 발차기를 발을 큰 폭으로 엇갈리게 하고 발을 차는 속도를 천천히 하는 방식으로 변형하게 됩니다. 발을 느리게 차는데도 물속에서는 훨씬 빠르게 나갑니다. 마치 배가 된 듯한 즐거운 착각 속에 순식간에 25미터에 도달하는 경험은 지금도 생생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오리발 - 나를 배로 만들어주는 엄청난 아이템입니다




또 아쉽게도 1학년 교양수영 이후의 대학 생활 동안에도,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서인지, 시간은 많았는데 수영을 챙겨하지 못했는데요, 오히려 군대에서 수영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카투사로 동두천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요, 카투사는 인사와 급여는 한국군에, 작전과 일과시간 동안의 근무, 부대 내 생활은 미군에 속하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한국군에서 하는 "전투체육"을 저희도 하게 되어서 매주 수요일 오후를 운동만 하면서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군 측 지휘관님께서 관대하게도, 각자 하고싶은 운동을 하라고 허락해 주셔서, 중대 카투사들과 삼삼오오 다니면서 수영도 하고 라켓볼도 하며 즐거운 체육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없는 Camp. Casey 안에 있었던 실내 및 실외 수영장 모두 지금도 다시 가고 싶을 만큼 참 좋았습니다.   


많은 학교들이 그렇겠지만, 제가 공부했던 University of Washington에는 IMA라 불리는 학교 체육관이 있는데, 시설이 정말 좋습니다. 박사 과정 중에 Course work 이 끝나고, 혼자 연구하고 논문을 써야 했던 학기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비교적 자유로워서, 매일같이 아침에 주차비가 정말 저렴했던 IMA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수영을 하고는 로스쿨 건물까지 걸아가는 루틴을 반복했습니다. 이 때도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수영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이거뿐이네요. 이곳에서 제가 사방에 물을 튀기며 수영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물방개"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집이 근처였음에도, 이 IMA 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학생들 이외에는 학교의 직원이나 은퇴하신 분들만 멤버십을 구매할 수 있어서, 정말 돈을 내고도 이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 정말 꼭 많이 이용하시라 막 추천하고 싶습니다. 변호사로 일하는 동안, 마침 학교에서 파트타임 Immigration Law Clinic Instructor를 수시로 모집했었는데요, 혜택 중에 IMA 시설 멤버십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말 지원할지 심각하게 고민도 했더랬습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해서 배우게 된 수영이 제 삶 곳곳에 채워져 있음을 봅니다. 특히, 수영으로 가득했던 초등학교 방학 시간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게는 방학을 가장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었던 선택이었고, 대학교 1학년 때의 교양수영 수업이 교양으로 들었던 수업 중 최고였습니다. 오늘도, 다시 수영하기로 결정하고 동네수영장을 다니는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삶 전체에서 수영을 했던 시간들이 듬성듬성하고 빈 곳이 많아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 수영을 하고 있기에, 지난 삶에서 반짝반짝했던 그 기쁜 시절들과 어떤 연결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그 마음으로, 오늘도, 귀찮음과 싸우며, 딱 오늘만 그 시간을 밀린 일에 쓸까하는 급한 마음을 이겨내며, 열심히 동네수영장을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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