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전면허 실패기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처음 해보는 것, 처음 배우는 것,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먹어보는 것, 인생에서 처음 얻게 되는 새로운 이름 같은 것… 이를테면 운전, 운동, 학교, 취업, 창업, 결혼, 부모... 무수히 많은 경험의 시작에는 모두 처음이 있다. 이 ‘처음’이라는 수식어는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어린아이에게 더 많을 것 같지만 사실 성인이 된 후에도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어서 어쩌면 나이와 처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어린이에게는 맥도날드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처음이라면 노인에게는 맥도날드에 들어서자마자 있는 키오스크가 처음이다. 그래서 ‘골린이’ ‘주린이’처럼 이제 갓 시작한 초보의 미숙함을 일컫는 단어를 어린아이를 뜻하는 -린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부르는 것은 어딘가 너무 일방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미숙한 이유는 어린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모든 일들에 우리는 ‘첫 발을 떼다’라는 뜻의 초보라 이름 붙여 스스로 동기와 희망을 부여한다. 초보 딱지는 적어도 긴박하게 돌아가는 도로 한복판에서조차 어느 정도의 넓은 마음을 허용하니까. 사실 처음 해보는 초보가 갖는 미덕은 내가 초보이기 때문에 불편을 겪어야 하는 주변인들로부터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처음 시작하는 것은 지루한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맛보게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이로 인해 성장한다는 기쁨이 주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강렬해 한동안 그 생각밖에 나지 않는 열정을 불러오기도 하는데 하지만 이 또한 처음이 안겨주는 두 가지 반대되는 속성 즉 두려움과 용기의 줄다리기에서 용기가 두려움을 이겨야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용기가 두려움을 이긴 경우라 하더라도 그 끝이 꼭 성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초보가 먼저 마주하는 것은 대부분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기 때문이다. 처음 해보는 것 앞에 설 때 도전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의 문턱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인데 나도 이 문턱을 넘지 못해서 괜히 시간과 돈만 날리고 감정과 체력을 소모하고 후회하느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 적이 많다. 처음이 두려운 이유는 그만큼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실패가 갖는 성질이야말로 우리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성공을 해야 다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실패를 해야 앞으로 나아간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내가 처음으로 운전을 배우기로 한 작년 여름, 나는 무수한 실패에 부딪히며 그 실패를 뚫고 운전이라는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갔다.
아직은 한낮의 햇볕 아래 있으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는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계절에 나는 인천행 1호선 열차를 자주 탔다. 운전전문학원이 1호선 온수역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운전전문학원에 등록한 것이 여름의 끝자락이었는데 이미 길가의 은행나무는 서서히 노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빠르면 한 달이면 딴다는 주위의 말을 믿고 나도 거뜬히 딸 수 있을 줄 알았던 면허는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짝사랑하는 대상처럼 나에게서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다. 늦더라도 찬 바람이 불기 전에는 과연 딸 수 있을지 초조한 마음을 안고 온수행 열차에 올라탄 지도 벌써 두 달째가 되어가던 그날은 장내 기능시험 4수를 하는 날이었다.
그렇다. 나는 재수도 아니고 3수도 아니고 N수를 했다. 그것도 운전면허시험의 3단계 중에서 도로주행 보다는 비교적 쉽다고 알려진 기능시험에서만 4수를 했다. 처음엔 나도 남들처럼 쉽게 딸 수 있을 줄 알았다. 지정된 장내 기능 교육 4시간을 마치고 추가 수업 없이 바로 시험에 응시했는데 처음으로 옆자리에 강사님 없이 혼자 운전대를 잡고 주행코스를 돌고 있자니 머리가 새하얘졌다. 처음 급경사 코스와 좌회전 코스까지는 어떻게 했는데 문제는 T 직각주차였다. 분명히 머리로 달달 외운 대로 어깨선 맞추고 핸들 끝까지 돌리고 후진 기어 넣고 다 했는데 후사경으로 보니 이대로 후진을 했다가는 뒷바퀴가 경계석에 닿을 것 같은 거다. 순간적으로 여기서 감점받으면 안되니까 차를 더 앞으로 빼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한 루트를 반대로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 기능시험을 치는 내가 그것을 잘 해낼 리 만무하다. 결국 더 해보지도 못하고 감독관을 불러 T주차 코스에서 기권해버리고 말았다. 그때 나에겐 완벽하게 하지 못할 바에 아예 처음부터 다시 하자는 생각으로 알량한 자존심을 지킬 요량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첫 시험에서 실격 처리를 받고 보니 이건 할수있다는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걸 직감했다. 바로 추가 교육을 등록했다.
그렇게 만난 두 번째 장내 기능 교육 강사님은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운전이 아니라 인생을 알려주신 것 같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가방에서 주섬주섬 그동안 외운 공식 노트를 꺼내는 나를 보더니 이런 건 필요 없다고 했다. 운전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감각을 익혀야 한다며 종이를 뺏어서 뒷좌석에 그야말로 홱 던져버리는 게 아닌가. 여태껏 메모한 공식에 의지해 운전을 연습해온 나로서는 불안하고 초조해서 이미 한번 떨어진 터라 주말 내내 유튜브 보면서 정리한 내용인데 이것마저 없으면 어떡하나 잔뜩 긴장하고 있으니 그냥 하면 된다고 했다. 아니 강사님 말처럼 그렇게 쉬우면 제가 추가 교육 등록을 했겠냐고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강사님의 요구사항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질문은 일절 받지 않았고 운전 연습할 때는 질문하기보다 먼저 운전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운전 스타일을 하나씩 고쳐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들었던 말들이 잊혀지지 않는 것을 보니 효과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우선 ‘운전할 때 힘을 주면 힘을 준 만큼 잘 안된다. 운전은 힘을 뺀 만큼 잘할 수 있다. 운전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감을 익혀야 한다. 핸들을 돌리는 만큼 움직이고 악셀을 밟는 만큼 가고 서는 게 운전의 기본이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할 것 전혀 없다. 그러면서 긴장한 빛이 역력히 드러나는 손에서부터 힘을 빼라고 하시며 항상 손과 브레이크는 부드럽게 유지하라고도 했다. 그런데 잔소리 폭격기 같은 강사님과의 교육을 마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내가 의지한 정답 노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내가 탄 차와 만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지금까지 마음 한 켠에 있었던 또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서서히 내가 조종하는 대로 센서티브하게 움직이는 이 거대한 네 발 달린 자동차를 움직인다는 작은 희열에 압도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철학적인 운전 연수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이후로 우회전시 경계석 올라타기 시전과 모든 기능을 감점 없이 전부 수행했지만 시간 초과로 두 번의 실패를 더 맛보았다. 네 번째 시험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다 못해 그동안 수없이 돌았던 이 자그마한 기능시험장이 눈감고도 갈 수 있을 만큼 쉽게 느껴졌다. 한두 번 떨어질 때는 시험 직전까지 마음이 콩닥콩닥 긴장됐지만 이제 시험 감독관들과 인사도 나누고 옆자리에 응시생과 대화도 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고 4수에야 비로소 100점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번의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 면허를 딴다는 것은 마치 인생과 같다고 느꼈다. 쉴 새 없이 업앤다운이 이어지는 인생 말이다. 사실 첫 기능시험 실격은 직각 주차 후진을 더 완벽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실수나 실패를 용납할 수 없는 마음 때문이었다. 인생에서도 실수할까 봐 실패할까 봐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해온 겁쟁이 같은 내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네 번의 기능시험을 치르고 난 후, 어차피 처음은 완벽할 수 없는데 그까짓 실수 좀 한다고 실패 좀 한다고 인생 끝나지 않는다고 네 번째에야 합격한 내가 걸어 나오며 득의양양하게 말하고 있었다.
결국 나의 운전면허취득기는 8월 말에 시작해 중간에 추석 연휴와 예약 대기 등을 포함해 꼬박 2개월이 걸려서 최종 합격 도장을 받고 엔딩했다. 그것도 도로주행을 한 번에 합격해서 망정이지 만약 엄격한 감독관을 만났더라면 과연 그해 안에 딸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장내 기능시험을 4번에 붙고 도로주행을 한 번에 붙었지만 기능시험의 실패들이 도로에서의 운전의 기본기를 다져준 것 같다. 어쨌든 정확해야 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는 두려움의 산을 한번 넘고 보니 도로가 훨씬 쉬웠던 것만은 사실이니까.
운전을 처음 배우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냥 사라지지 않고 그 실패를 해봐야 사라진다. 실패의 유익은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두 번 실패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 어떤 산을 넘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 내가 내 안의 두려움이라는 산을 하나 넘었구나. 더 앞으로 가볼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 운전을 배우다 보면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크고 찬란한 두려움들이 엄습한다. 초보인 미숙한 내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악셀을 밟으면 어쩌지 차선 변경 깜빡이를 켰는데 뒤차가 너무 가까워서 도저히 끼어들기를 못 하다가 이러다가 교차로 좌회전을 못 하면 어쩌지 사고라도 나면 그러면 어떡하지… 실제로 장내기능시험에서 한 번, 도로주행 하면서 퇴근 시간대 1종 보통 연습생의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돌아올 때 등에서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하지만 이 두려움 때문에 차가 달리는 도로라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무대로 나가는 것을 포기할 것인가? 모든 경험에 대가가 따른다면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보는 것이 인생이 가진 묘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