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소망 May 19. 2021

공정하다는 착각

 우리들 각자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맞은편 사람의 풍성한 머리숱을 보거나, 비겁한 동료의 승승장구하는 사회생활을 듣는 것만으로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사실적 현상 내지는 법칙이다. 우리는 타자라는 거울을 통해 그들과 다른 점을 발견한다. 때로는 그 발견이 우리를 우월감에 빠트려 안도감을 누리게 할 때도 있지만 대게는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되는 불행의 근원이 된다. 반백의 머리가 될 만큼 세상의 풍파를 굳이 겪지 않더라도 삶이 녹록하지 않다, 삶이 꽤나 불공평하다고 깨달을 수 있는 건 일찌감치 평등하지 않다는 경험을 쉽게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본질은 평등이다."라고 했다. 스스로를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우리들은 평등해야만 정의롭다고 판단한다. 그 판단은 타자와 구분되는 자아를 인식하는 이성의 활동에서 기인한다. 이성은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불평등을 인식하며 동시에 불평등을 조정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한다. 즉, 나는 왜 머리카락이 빠지는가, 왜 승진을 못하는가 하는 현실 인식의 내면에는 같은 준거집단이라는 이성적 판단에 따른 머리숱이 많았으면, 승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배어있다. 현실 인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욕구는 더 강렬하다. 반면에 불평등을 불평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는 야생의 세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불평등 그 자체가 질서이며 자명한 자연의 규칙이다. 수사자는 갈기가 풍성하지 못하다고 불만을 가지거나 우두머리가 되지 못했다고 현실을 원망하고 억울해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 상태-혼돈과 폭력이 난무하는 무질서를 질서로 받아들여야 하는 불평등의 세계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자 최고 포식자인 국가에게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위임했다. 비록 국가가 안전망 구축이라는 최소한의 목적으로 탄생한 조직일지라도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유기적인 집합체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최소한의 안전을 넘어 정의와 평등을 꿈꾸게 하고 실현하기 위해 우리를 연대하게 한다. 우리들의 연대는 특정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즉, 사회는 희망봉을 찾아 함께 항해하는 선원들처럼 공동선을 상정하여 서로 연대할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이다. 연대가 지속되기 위해선 공동선-정의, 평등, 자유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하며 사회에 소속된 구성원들이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공동선에 대한 합의는 국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담론을 통해서 도출되어야 하며, 구성원들의 안전은 단순히 외부적인 무력으로부터의 보호를 넘어서 사회 속에서 질서가 유지되어야 확보된다. 

  질서가 보장된 사회에서 적어도 나름의 규칙에 따라 우리 모두는 평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믿음 아래, 자기 계발서를 읽어가며 소위 자수성가했다는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읽고 따라 해 보지만 결국 남는 건 자기반성이 대부분이다. 실제 그들처럼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이 결정론처럼 인과관계가 매우 명확하다면 분명 노력과 결과가 등가를 이룰 텐데 안 그런 것은 우리의 삶에는 불가지 한 우연의 힘이 존재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팔자타령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설명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은 내 탓이 아니니 체념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우연의 작용이 아니라 질서가 보장된다고 믿었던 사회가 평등하지 않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비겁한 동료의 승승장구가 평등한 조건에서 이뤄진 결과가 아니라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서 우리는 불안감을 느낀다. 또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빠지는 머리카락이 사회의 놀림감이 된다면 그 사회 역시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위험한 사회에 속한 우리는 더 이상 그 사회의 유지를 위해 연대할 이유가 없다. 물론 우연의 힘까지 고려하며 과정과 결과까지 공정한 사회는 불가능하다. 플라톤이 꿈꾼 최선자 국가는 결국 공산국가로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이상 국가에서 안전한 사회를 도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이상 사회의 설정마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우리는 연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 공동선-정의, 평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것은 태양계 밖으로 탐험을 멈추지 않는 보이저호처럼 영원히 찾아가야 하는 과정이다. 단 한 번의 합의로 끝나는 충성맹세와는 다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머리카락이 빠지는 사람과 정직하지만 사회에서 승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연대의 과정에 함께할 것인가 고민해 보야한다. 그들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다는, 즉 안전하다는 느낌의 인정 욕구를 가질 것이고 그것은 존중되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은 나의 언어를 묵묵히 읽어 나가는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