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이태리 여행 에세이
9화 - 두오모에 오르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의 날씨가 반짝반짝 빛나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피렌체 일정은 이틀뿐이었고 피렌체의 전경을 바라보기에 이보다 더 날씨가 좋을 수가 있을까 싶은 마음에 조식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숙소를 나왔다. 우리는 조토의 종탑 꼭대기에서 두오모를 바라볼 생각이었는데 미리 티켓도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티켓을 사려고 오피스도 들러야 했다. 두오모나 조토의 탑에서 피렌체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은 피렌체로 여행을 오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늦어져도 반나절은 줄을 서야 한다고 들어서 마음이 초초해졌다. 런던과 달리 이탈리아의 안내판은 잘 보이지 않고 막상 접근방식도 좋지 않아서 오피스 코앞에서 꽤나 헤매었었다.
힘들게 찾은 오피스에 줄을 섰는데 어떤 중국 여자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두오모 티켓을 자기에게 사달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암표(?)를 파는 중국사람인가 싶어서 손을 내저었는데, 알고 보니 부모님이랑 셋이 왔는데 엄마가 무릎이 아파서 도저히 꼭대기까지 오를 수 없게 되었으니 한 장만 좀 사달라는 거였다. 대신에 아침부터 자기랑 아빠가 줄을 섰으니 오전 내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빠가 공부를 많이 해서 가이드처럼 설명을 해줄 수도 있다고 제안 냈다. 우리는 설명을 듣는 것을 꽤 좋아하는 편이어서 흔쾌하게 오케이를 외쳤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전혀 영어를 못하셨고 우리는 줄을 서다 눈이 마두 치면 어색하게 웃기만을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그녀 덕분에 얼마 줄을 서지 않고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은 아니었다 해도 더운 날 줄을 섰다가 갑자기 시작되는 계단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사람이 많아서 좁은 탑 계단을 조금 올라가고 기다렸다가 또 조금 올라가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너무 힘들고 지쳤다. 괜히 올라왔다고 후회하려는 순간 계단이 끝났다.
그리고 누구나 그랬겠지만..
눈앞에 나타난 피렌체는 수많은 계단의 고통을 잊기에 충분하고 남을 만큼 아름다웠다.
우리는 사진을 찍기도 하고 한참을 바라보기도 하며 최대한 많은 시간을 그 위에서 보냈다.
조토의 종탑으로 올라온 사람들을 보며 손을 흔들기도 하고 공사 중이라 막아놓은 세례당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름답고 평화롭다 라는 뻔한 말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저 멀리까지 보이는 피렌체의 오렌지색 시가지가 너무 아름다워 그림 같았다. 체코나 크로아티아도 그렇지만 유럽은 어쩜 이리도 귀여운 오렌지 컬러로 지붕을 만들었을까..
우리는 한참을 쉬다가 계단을 내려왔다. 아침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시간이 지나있었다.
허기와 갈증이 몰려왔다. 우리는 평소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이 아니고 발길이 닿는 대로 들어가는 편이기 때문에 두오모 바로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고민도 없이 직행했다.
맥주부터 주문해서 벌컥벌컥 마시고는 나는 라비올리를 신랑은 파르펠레를 주문했다. 우리는 사진 한 장 정도는 남겨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먹어 치웠다. 한참을 먹고 있으니 중국인 모녀가 식당으로 들어와 크게 떠들다가 엄마로 보이는 쪽에서 갑자기 나에게 먹고 있는 음식의 이름이 뭐냐고 큰소리로 물었다. 너무 아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물어봐서 난 순간 아침에 봤던 모녀인가 싶었다.
게다가 물론 영어로 물었지만 내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인지 좀처럼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 이었다. 그저 눈치로 대략 음식 이름을 묻고 있구나.. 생각했을 뿐.
음식 이름을 알려주고 나는 맛있지만 맛있다고 자신 있게 추천해줄 수는 없다고 말해 두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비올리는 말 그대로 만두피 속에 치즈만 넣은 음식이어서 신랑은 한입 먹자마자 입에 맞지 않는다고 포크를 내려놓았는데 저 시끄러운 중국 어른이 혹여나 너 때문에 맛없는 것을 시켰다고 내게 다시 와서 항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녀는 메뉴판을 받아 들고 한참을 떠들었다. 싸우는 건지 즐거운 건지 혼동되는 모습이었다.
그녀들 덕분에 우리는 피로가 더해져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일단 뱃속에 채워놓기 바쁘게 일어섰다.
거리로 나와 베키오 궁전 쪽으로 바로 가지 않고 일부러 골목 사이사이를 돌아 돌아 걸었다.
나는 유럽의 골목들이 참 좋다. 예쁜 돌길과 창에 걸려있는 작은 꽃바구니들 그리고 골목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우리는 젤라토를 입에 물고 산타크로체까지 돌아 돌아 걸어 베키오 다리까지 향했다.
아침 등반과 뜨거운 날씨 여파로 점점 더 피로해졌다. 나는 평소 아이스크림처럼 단 음식을 먹지 않는 편인데 이날은 베키오 다리까지 가면서 거의 모든 젤라토 가게를 다 들렀다.
젤라토에 대해 언급하자면 이태리에는 대부분의 젤라토가 다 저렴하고 맛있지만, 피렌체에서는 두오모를 기준으로 베키오 궁전까지 오는 길에 GROM에서는 CREMA DI GROM이라는 메뉴를, PERCHE NO에서는 레몬 수박 그리고 VIVOLI는 쌀맛 젤라토가 유명하니 꼭 들러서 맛보기를 추천한다.
베키오 다리에 도착해서 다리를 바라보며 잠도 떨칠 겸 커피 한잔을 마셨지만 여전히 몸이 한없이 나른했다.
더 이상의 관광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우리는 뜨거운 태양이 지나갈 때까지만 잠깐 숙소에서 쉬었다가 미켈란 젤로 언덕에 천천히 올라가 일몰을 감상하기로 했다.
계획을 변경하기가 무섭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숙소로 도망치듯 걸었고, 숙소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한밤중처럼 깜깜 했다.
마치 런던의 마지막 날 밤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