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고른 이유 그리고 읽은 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키워드는 공교롭게도 같았다. '페미니즘.'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본 적도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도 큰 관심 없는 나에게 이 책은 되려 의구심이 생겼다. 이 책의 저자가 한 행동들이 페미니즘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에세이의 내용을 요약하면 K장녀로 태어나 열심히 생활하던 저자가 사회초년생 시절 겪은 방황과 무력함을 이겨내는 이야기다. 그 과정 속 J를 만나 저자의 나다움을 발견하고 성장해가는 로맨틱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저자의 성장을 독려한 J는 정신적으로 현대판 왕자님에 버금가는 반듯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 로맨틱 에세이로 읽혔다.
다만, 난 '나다움'을 찾아가는 그 과정이 왜 '페미니즘'이라는 워딩으로 귀결되었는지 의문이다. 미혼 여성으로서 기혼 여성으로서 겪는 모든 문제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자의던 타의던 빠져나온 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회피한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즐길 수 없다면 피하는 건 슬기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도피의 과정들은 저자의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지 여성의 인권이나 이익을 위한 행위인 페미니즘의 과정은 아니었기에 이 F 단어가 적절히 쓰인 것은 아닌 것 같다. 동일한 서사가 남성의 입장으로 전개된다 해도 충분히 전해질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받았던 감동은 되려 다른 포인트다. 바로 '극 사실주의에 기반한 솔직함'. 언젠가 에세이를 쓰고 싶고 내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꿈을 가진 나로서 차아란 작가의 에세이는 깨달음이나 교훈보다는 '진정성'과 '용기'였다.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나다움'을 찾아간다는 저자의 모토에 기반해 선택된 이야기들이다. 에피소드만 두고 본다면 사실 나 자신 또는 한 다리만 건넌 타인들이 겪고 있음 직한 찌질한 우리들의 일상이다. 희망고문만 당하는 정직 전환, 업무 역량을 기혼 여부로 점철시키는 결혼 후 인터뷰 자리...
이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 힘든 지지부진한 에피소드에 진정성을 거론하는 건 그녀가 이 이야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선택했다는 데 있다.
나 다움이 별 건가. 내가 문제시하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을 먹은 주인공이 불편하지만 실존한 것처럼 스스로의 길을 찾아간다.
그 방법이 회피던 순응이던 상관없다. 깨어있고 나아간다는 것.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고유의 이야기, 떳떳지 못한 순간까지 공유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한 걸음 떼기까지 발걸음이 무거운 나에게 필요한 격려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