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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수 Mar 14. 2021

나의 두 번째 룸메이트

룸메이트 이야기 #0

오늘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의회를 뒤집어 놓았다. 태극기 부대 같은 그들을 보고 난 두 번째 룸메를 떠올렸다. 그 친구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꽤나 좋아했었다. 최순실 사건 몇일 전에 만났을 때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 친구가 트럼프 지지자 들처럼 의회를 점거하고 깽판을 칠 그런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글 한번 남긴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남긴다.


룸메이트와 오래 함께하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장학재단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나중에는 사회적 기업 만들기가 되었는데 처음의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흐릿하다.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 하나는 처음에는 고려대같은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주된 목표였다는 것이다. 난 원래도 기회의 평등에 관심이 많긴 했으나 참여했던 가장 큰 이유는 룸메이트가 하자고 해서였다. 남을 돕는 일은 그 자체로 꽤 재밌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학년 2학기였다. 나는 2인실에 배정되었다. 1인실과 3인실도 있지만 보통은 2인실이니 별다른 일은 아니었다. 새로운 룸메는 울산에서 왔다고 했다. 대학에 오기 전에는 대구와 대전도 잘 구별 못해서 울산이 어디인지도 잘 몰랐다. 그는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킬만한 단어들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버지도 지역이나 출신으로 누구를 비난한 적이 없었다. 둘은 나중에 보니 약간은 닮은 면들이 있었다. 부모님이 편견이 적었기에 어린 나는 좋게 말하면 편견이 없고 나쁘게 말하면 갈등에 무방비한 상태였다. 내가 좀 더 단단해지기 전에 나와 다르지만 좋은 경상도 친구를 만나서 행운이었다.


룸메는 조기 졸업자라 내게 선배면서 동갑내기였다. 처음 마주쳐 머쓱할 때 파이팅 넘치게 말을 걸어주었다. 우리는 하루가 지나기 전에 말을 놓기로 했다. 그는 매사에 에너지가 넘쳤다. 열정있는 영업맨 아저씨같은 에너지였다. 항상 정장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성실함과 어울렸다. 나는 매일 11시에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을 들어가곤 했다. 반대로 그 친구는 매일 6시에 일어나서 도서관에 가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싸울 만도 하지만 의외로 큰 다툼 없이 룸메 생활을 했었다. 서로의 수면시간을 크게 침범해서 오히려 덜 싸웠던 것도 같다. 쌍방과실이랄까.


가끔 둘 중 한 사람이 숙취에 시달리는 날이면 같이 죽을 먹으러 가고는 했다. 나도 그도 그 때에는 술을 자주 먹었고, 심지어 동아리도 같이 했기에 일주일에 한 번은 죽을 먹으러 갈일이 생겼다. 그러다가 둘 다 죽을 꽤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 술을 안마신 날에도 밥을 먹을 때면 죽을 먹으러 가곤 했다. 간혹 새로운 식당에 갔을 때

“이모^ 이거 얼^마예요~?”

하는 억양을 들을 때면 나와 다른 곳에서 왔구나 하고 새롭게 떠올리곤 했다.


괜히 한번 카톡을 보내본다. 그래 올해 안엔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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