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아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OOOO라고 합니다. 결혼 후 이 말이 아내가 아는 유일한 한국말이었다.
그런 아내가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펑펑 울면서 전화가 왔다.
나 : "여보 무슨 일이야?",
아내 : "무슨 일 생긴 것 같아.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나고 어떤 아저씨가 계속 큰소리로 소리치는데?"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있어!, 나 어떻게 해야 해?" 연방 무서워! 를 소리치며 울먹이는
그녀가 겨우 진정하고 어렵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내를 울린 두려움의 정체는 집 앞으로 지나가는 야채장사 아저씨의 확성기 소리와 사이렌 소리였다.
왜냐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켜 갑자기 경보를 울리고 대피하라는 소리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울며 전화를 한 것이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아내가 얼마나 무섭게
울며 말하던지 전화를 끊고, 회사에 반차를 내고 귀가해서 한참을 달래 주었다.
만약, 내가 아내처럼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 갔는데 그곳이 남, 북으로 대치된 정전상태의
국가였다면 나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말이 통하지 않는 두려움의 순간들에 부딪히며 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앞만 보고 달려온 꿈의 좌절, 집단적 소외, 이 상황을 내가 도저히 헤쳐 나가지 못하겠다는 무기력함과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어쩌면 내 발길 닿는 모든 곳이 두려움의 순간과 닿아 있다.
이제 우리는 약 75년 전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던 독일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발생한 사건을 통해
두려움에 맞서 희망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이제 “3월 30일에는 전쟁이 끝날 거야.”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4년 아침에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느 작곡가가 함께 갇혀 있던 수감자들에게 말했다.
“누가 그래?” “꿈에서 예언을 들었네.”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그 작곡가는 기나긴 전쟁이 이제 끝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뉴스에서 들리는 상황은 작곡가의 굳은 믿음과 달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3월 말이 가까워왔고 작곡가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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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이 되자 작곡가는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30일에는 의식을 잃었고, 31일 사망했다. 사인은 발진티푸스. 그의 죽음은 사실상 전쟁이 끝나 수용소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희망의 상실’로 삶의 끈을 놓았기 때문이 있다.
이 사건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정신과 의사가 '죽음의 수용소' 저자로 유명한 빅터 프랭클이다. 같은 유대인이었던 그 역시 아내와 함께 1942년부터 수용소에서 수용되어 있는 신세였지만, 옆에서 죽어간 작곡가의 죽음을 무심히 넘기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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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는 노동조건이나 식량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었다.
많은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다가 참담한 현실에 직면해 두려움 앞에 용기를 잃고 덮쳐오는 절망감을 느끼면서 신체의 저항력과 면역력을 잃고 갑자기 무너져버렸던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정신과 학자답게 수용소로 끌려온 사람들의 심리 변화를 수감 직후 ➡ 수용소 적응 ➡ 해방 후 이 세 단계로 나누어 묘사하고 있다. 먼저 수감 직후에는 두려움으로 인한 충격이 지속된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죽음에 초연해지게 되고 정신적 모멸감으로 인한 분노를 느낀다. 수용소에서 적응이 가능할까 생각할 수 있지만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나날 속에서 과거 음악, 예술, 문화의 조각들을 통해 행복했던 순간을 음미하고 그 속에서 작은 웃음들을 통해 살아있음을 자각한다.
해방 이후 수용소에서 기적같이 살아 돌아온 사람들도 살아가며 트라우마와 도덕적 결함을 통한 자기 환멸감을 지닌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그는 살아남은 사람과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를 학자로서 분석했다.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은 두려움 앞에서 절망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명확했던 사람들이다. 그가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야기한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삶의 의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극심한 신체적 고통, 추위 배고픔, 공포에 떨 때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 같던 그 순간 그는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부인을 만나 포옹하고, 따듯하고 편안한 자신의 강의실에서 포로수용소에 대한 심리학 강의를 하는 상상이었다. 그는 삶의 의미로 미래를 보았고 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수용소 어딘가에 생존하고 있을 사랑하는 아내를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이 잔혹한 사실을 정신과 학자로서 반드시 기록해서 남기겠다는 이유'가 그를 두려움에서 절망에서 희망의 끈을 붙잡아 주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 니체
빅터 프랭클은 전쟁이 끝난 뒤 '살아야 하는 이유'로 그리고 '미래에 대한 믿음'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겨낸 사람들을 통해 '로고테라피'라는 의미 요법을 개발한다.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심리치료법이다. 로고테라피를 표현하자면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이 로고 세러피를 통해 치유받은 한 할아버지의 사연을 소개하겠다.
너무도 사랑하던 아내와 사별하고 우울증을 앓던 노신사가 그의 병원에 왔다. 이런 상황에서 되도록 말을 자제하고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만약 선생님께서 먼저 돌아가시고 부인께서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노신사는 한참을 앉아 눈가에 묻은 눈물을 닦고서 말한다. "오 세상에 아내에게는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요?, "그것 보세요. 선생님 부인께서는 그런 고통을 면하신 겁니다. 부인에게
그런 고통을 면하게 해 주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노신사는 조용히 일어나서 프랭클에게 악수를 청한 후 눈물 속에서 미소를 머금고 진료실을 나갔다. 그는 말한다 "나는 노신사의 시련의 의미를 자각시킴으로써 바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미래를 보아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 빅터 프랭클
아내를 두려움에 울게 했던 야채 트럭 아저씨의 확성기 사건 이후, 한국어에 크게 조급하지 않았던 아내는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겠노라? 의미를 부여했고, 열심히 어학당 공부를 했다. 나날이 한국어 실력이 늘던 어느 휴일. 둘이서 잠깐 말다툼으로 서먹했던 순간이 찾아왔다. 갑자기 아내가 외쳤다. "우리 바람이나 피우러 가자!". "엥? 뭐라고? " 더 큰 목소리로 "우. 리. 바. 람. 이. 나. 피. 러. 가. 자. 고." 그렇다. 우리 바람 좀 쐬러 가자! 는 말이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말싸움도 제대로 못한다. 지금 아내의 한국어 실력은 우리 부모님의 특훈으로 부산사람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서부경남의 사투리를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아우슈비츠’ ‘상식적이지도 말도 통하지 않는 두려움과 절망감’ 어쩌면 우리도 인생에서 한 번은 겪었을지 모른다. 혹은 겪고 있을 것이다. 또 언젠가 겪게 될지 모른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소중한 사람, 그들과의 사랑 그리고 웃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 '이 시련과 두려움, 그리고 괴로움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아우슈비츠'에서 해방이 되고 자유인이 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시련은 그것의 의미 (희생의 의미 같은)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고 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