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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채 Mar 07. 2020

낮의 목욕탕과 술

서평이 독서의 끝이다 <11>


지난달에 읽었던 책이지만 리뷰를 계속 미루다,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인 다니구치 지로의 사망 소식을 듣고 써내려가게 되었다. 저자인 쿠스미 마사유키는 고독한 미식가의 스토리 작가로도 국내에 특히 유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고독한 미식가의 제목은 익히 들어봤지만 아직 보지 못했고, 쿠스마 마사유키의 책도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어떤 느낌일지 약간의 '편견'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편견이 옳았다. 물론 좋은 뜻으로 말이다.


일본의 목욕탕 문화는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의 옛 목욕탕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사양세이며 이제는 거대한 '스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그들만의 목욕탕 문화를 어느정도 지켜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도쿄와 인근 지역의 다양한 목욕탕들을 방문해서 그곳을 리뷰하고, 그 목욕탕 근처에 있는 술집을 고르고 또 찾아 그곳에서 낮맥을 즐기는 것으로 종료된다. 목욕탕들의 개성도, 술집들의 매력도 각양각색이지만 이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고독한 목욕가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 어떤 고독함도 느낄 수 없다. 낮에 목욕을 즐기고 맥주 한잔으로 끝맺음 한다는 것은 끝내주는 일이니까. 저자는 모든 글자와 어휘를 동원해 이 행위의 만족스러움을 설파한다.

너스레도 잘 떨고, 자기 성찰도 하지만 너무 무겁지도 않다. 목욕탕에서 몸을 지지고 맥주 한잔으로 유유자적하는 이야기인데 인생사 고민으로 가득채워봐야 무엇 할 것인가? 쿠스미도 이것을 아는듯 글의 문체는 가볍다. 욕탕의 부글부글 끌어오르는 물처럼 뜨거운 예찬과 이에 대비되는 차디찬 맥주의 목넘김같은 시원함으로 각각의 기행을 마무리 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생각없는 책은 또 아니다. 각각의 목욕탕들의 작은 디테일을 짚어내는 그의 관찰력과, 그런것들을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거리를 끄집어내는 능력에서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마스터 앞에서 무릎꿇고 정색하는 그런 감탄이 아니다. 술자리에서 아는 형님들에게 이야기를 좀 듣다가 반색하며 깨닫게 되는 그런 즐거움 배움이다. 목욕탕을 좋아하지 않아도, 맥주를 좋아하지 않아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아마 둘 중의 하나라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까? 아니라고 해도 이 책을 읽고나면 당신도 어서 한낮에 목욕탕을, 그리고 대낮에 맥주 한잔을 찾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2017. 01 완독. 

낮의 목욕탕과 술

-쿠스미 마사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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