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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효진 Jul 11. 2022

교육소설 ep16.

환상과 절규, 그리고 복수의 도돌이표


*본 소설은 허구이며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학교, 학원 이름, 인물 등은 실제 사건과 관계없습니다.










준서 어머니,


이번 주 일요일 성대경시인데


저희 몇 시쯤 만나서 갈까요?












 학교에 댜녀온 채윤이에게 간식을 내어준 현주는 준서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채윤아, 내일 성대경시 보러


준서랑 같이 갈 거야.









준서? 아, 준서랑 같이 가기 싫은데.










 갓 구운 크로플 귀퉁이를 베어 문 채윤이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준서가 왜 싫은데?







준서 얼굴이 얼룩덜룩해서


더러워 보인단 말야.












 마스크 자국 그대로 탄 준서의 얼굴이 떠올라 현주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건 더러운 게 아니라


준서가 밖에서 축구를 많이 해서 그런 거야.


이제부터 준서랑 친하게 지내야 하니까


준서 앞에서 절대 그런 소리 하지 마,


알았어?












 지난번 같은 반 임원 엄마들끼리 모였던 브런치에서 준서 엄마와 성대경시를 함께 보러 가기로 약속했었다.


병설 유치원 보내고 애 학원도 안 보내는 아웃사이더인 준서를 내심 무시해왔다.




 하지만 3학년 올라가더니 갑자기 부반장에, 수학꿈 학원 원장반까지 치고 올라온 다크호스.


준서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게다가 하진맘을 통해 준서네가 상당한 부자라는 것을 안 이상 현주는 준서네와 가까워지기로 결심했다.






거기 차 세워놓고 또 한참


걸어 들어가야 한다던데


애들 아침 먹이고


넉넉히 10시쯤 출발할까요?










 준서 엄마의 답이 왔다.






네, 그때 보아요.


제가 동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준서 엄마가 눈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현주는 입꼬리를 잔뜩 당겨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준서 어머니,


여기에요!








 하얀 포르쉐의 비상등을 깜빡이며 현주가 반갑게 준서와 준서 엄마를 불렀다.


 쇼핑백을 든 준서와 준서 엄마가 현주의 차를 향해 걸러 왔다. 뒤에 함께 따라오는 남자는 준서 아빠 같았다. 나이는 조금 있어 보였지만 슬리퍼를 신은 편한 차림에도 말끔한 인상과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개천용에 머리숱까지 적어서 어디 데리고 다니기도 낯부끄러운 채윤 아빠와는 판이한 모습에 내심 부러움이 밀려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준서 아빠에요.


아내랑 준서, 태워주셔서 감사해요.


네가 채윤이구나,  안녕?


준서야, 경시대회는 처음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래도 그 시간 동안은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 거, 알지?







응, 아빠. 고마워.










차에 올라탄 준서가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불편한 표정을 짓는 채윤에게 현주는 백미러로 눈썹과 미간에 힘을 주며 ‘잘해’라는 입 모양을 해 보였다.






흥.










 채윤이 창밖을 보며 입을  내밀고 새초롬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채윤어머니, 애들 시험 보는데


당 떨어질까 봐


제가 초코렛이랑 좀 챙겨 왔어요.


하나 드실래요?










 준서 엄마가 들고 있던 쇼핑백 안 봉지에는 간식거리가 가득했다. 준서 엄마는 부스럭거리며 꺼낸 귤을 까서 뒷자리의 아이들에게 건넸다. 운전하면서 흘끗 보니 경시를 보러 가는 건지 피크닉을 떠나는 건지 잔뜩도 싸 왔다.






준서 어머니, 그동안 같은 동네 살았는데도 서로 교류가 별로 없었죠.







네, 준서가 유치원도 병설 다니고


학원도 안 다니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을 거예요.












 초코렛을 까서 입에 넣은 준서 엄마가 우물거리며 답했다.






영유도 안보내시고,


학원 안보내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에요?






현주는 특별히 공격하는 의미는 아니라는 듯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어깨를 끌어 올렸다.






애들 그 나이에 좁은 학원 건물에


앉혀 놓고 파닉스하고 문법가르치고


그러는 게 안 좋아 보였어요.


그래봐야 베이비토크 수준의 영어인데


그걸 하느라고 다른 창의력이나


경험할 기회를 빼앗잖아요.


교육학적으로도 신체적으로


활발하게 뛰어놀고 놀잇감 가지고


설계하고 실패하고


그런 걸 해야지 주입식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아니거든요.












 준서 엄마는 이번에는 초코렛을 뒷자리의 아이들에게 건넸다. 이미 채윤이에게 하루 먹일 당이 한참 전에 초과했다. 저렇게 먹이는데도 축구 대표팀이라 준서가 체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지겹도록 들어본 논리.


 영어유치원에 애 보낸다고 하면 수없이 들어본 말들.


그냥 다 돈 없어서 부러워서 하는 소리라고 치부했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준서 엄마가 하니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아, 그러시구나.


그럼 영어는 따로 어떻게 하셨던 거예요?







영어는 결국 언어잖아요.


많이 노출해주면 되는 거라


그냥 집에서 좋아하는 영어 컨텐츠들


많이 접하게 해줬어요.












 역시 뻔한 말이었다.


하루 1시간 유튜브만 보여줬더니 애가 원어민처럼 말을 한다는 사람도 보았다. 같은 영유 보내고 있던 엄마들은 그 애는 원래 언어 감각이 타고난 애고 걔를 영유 보냈으면 더 잘했을 것이라며 입을 모았었다. 아무리 영어 컨텐츠를 많이 접해도 체계적으로 문장구조까지 파악해가며 배운 아이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일반적인 다른 아이들은 하루 한 시간 가지고는 백날 보여줘도 절대 그런 아웃풋이 나올 수 없다며 그 아이가 영어로 말을 하고 있는 영상을 돌려보며 품평했다.




 영유를 보낸다는 것에 대한 비난에 반격하기도 지치지만, 무엇보다 그런 열등감 덩어리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같은 영유를 보내고 엄마들을 만나면 함께 다른 학원 정보도 나누고 스케줄도 짤 수 있어서 그런 교육관이 맞는 편안한 사람들로만 만나왔었다. 그런데 지금 정작 현주가 절대 만나고 싶지 않았던 그런 엄마 부류인 준서 엄마를 옆자리에 모시고 가고 있다.






이거 일본 카라멜인데 진짜 너무 맛있어요. 얘넨 이런 건 참 잘 만들어.


하나 드셔보실래요?







아하하, 네.












 아직도 간식을 먹을 배가 있는지 계속 간식을 꺼내는 준서 엄마가 게걸스럽게 느껴졌지만, 대답은 반대로 하고 있었다.




 카라멜을 그냥 건데줄 줄 알았는데 껍질을 까서 입에 쑥 밀어 넣는 바람에 현주는 움찔하고 말았다.






운전 중이라 까먹기 불편할 것 같아서요.


저 손 닦고 나왔어요.







아하하, 그럼 유튜브 한 시간씩


보여주시고 원서 읽고


그런 엄마표 영어 같은 거 하신 거에요?






 엄마표영어는 돈없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지새끼 영어는 잘하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 치부해왔다. 아마 돈만 있었으면 영어유치원 안보냈을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엄마들과 비웃어 왔는데 준서 엄마같은 사람이 설마 엄마표영어를 해온 건인지 현주는 궁금했다.






아, 유튜브 한 시간이 뭐 어떻게,


원서 천 권 읽기가 뭐 어떻고,


저도 어떻게 돌아가나 궁금해서


책 같은 거읽어봤는데


교육학 전공한 제가 봐도


진짜 너무 피곤하더라고요.


엄마들이 어떻게 그걸 해요.






 준서 엄마는 질색이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손사래를 쳐보였다.






그거 다 - 불안한 엄마들한테


규칙만 잔뜩 만들어서


순간 그거 따라 하면 될 거 같은 생각에


환상을 심어주는 거지,


결국엔 그거대로 하기 힘들어서


자괴감만 더 들거든요.


내가 게을러서, 인내심이 부족해서


우리 애 영어 아웃풋이 안나오는 것처럼.


소위 전문가랍시고 나서는 사람들이


그 절규 빨아먹고 사는 거에요.


매번 다른 전문가는 다를까


희망고문 당하면서.






 더 묻지도 않았는데 준서 엄마는 필요 이상으로 흥분해 말을 이어 나갔다.






말 그대로 언어인데


엄마가 뭐 애랑


한국어로 하루 1시간 대화하기


이런 규칙 없잖아요.


그냥 애가 좋아하는 거


영어 콘텐츠로 찾아보고


같이 읽고 그런거예요.


지금도 영어 그렇게 잘하지 않아요.








'세상 잘났네.'




 하마터면 현주는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미 영유 나오고 선행 달리고 있는 엄마 앞에서 그렇게 면전에 말을 하는 것이 무례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어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수학은 어떻게 잘하게 된 것인지 더 묻고 싶었지만, 어느새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주차를 하고 아이들과 손을 잡고 고사장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엄마들이 잔뜩 모여있는 걸 보니 여기서부터는 아이들만 들어가는 곳 같았다.






채윤아, 준서야.


시험 잘 보고 이따가 같이 나와.










교육관이 어떻든, 영유를 보냈든, 안보냈든 고사장 앞에서는 모두 같은 마음이다. 총총 걸어들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현주와 준서 엄마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준서 어머니, 저희는 카페라도 가 있을까요?












네, 그래요.








준서 엄마와 조금 걷다 보니 커피빈이 눈에 보였다.






저기 들어 갈까요?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려는데 창가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민재 엄마, 지영이었다.


역시나 또 무슨 교육서를 읽고 있다.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얼굴이다.


게다가 준서와 민재가 가까워지는 건 더욱 막고 싶다.






저희 그냥 딴 데로 가는게 어때요?


제가 여기 근처에 수플레 팬케이크


맛있게 하는 집이 있었는데 잊고 있었어요. 거기 아인슈패너도 잘하거든요.







어머, 그래요? 그럼 거기로 가요.












 먹을 걸 좋아하는 준서 엄마답게 팬케이크와 아인슈패너라는 말에 눈이 반짝이며 돌아섰다.




현주를 알아본 것인지 민재 엄마가 보던 책을 내려놓고 인사를 하려는 듯 손을 들며 몸을 일으켰다.




현주는 얼른 몸을 돌렸다.






준서 영어는 그렇고


그럼 수학은 수학꿈 학원만 다녀요?







그동안은 과외했었는데


선생님이 사정이 있어서 그만두셔서


겸사겸사 학원으로 간 거예요.


이 동네는 왜 이렇게 다들 선행에


목숨 거는지 다니고 싶은 학원이 없더라고요. 수학꿈은 원장님이 준서를 좋게 봐주셔서 잘 챙겨주시겠다길래


들어가긴 했는데 거기도 결국 선행이라


이러다 오히려 현행 구멍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기회다 싶어 현주는 본론을 꺼냈다.






옆 동네에 J수학학원이라고 아세요?


거기 소수 정원에


내신 꼼꼼히 잘 챙겨주기로


입소문 난 학원인데


이번에 3학년 반 만들거든요.


원장님이 4명만 묶어서


세심하게 봐주시기로 했는데


혹시 거기 같이 보내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준서면 레테도 없이


바로 받아주실 거 같아요.







오, 그래요?


안 그래도 저희 큰 애가 5학년인데


수학이 빠릿하진 않은데


애들이 다 소규모 수학 학원들 병행해서


저도 요즘 알아보고 있긴 하거든요.


한국 입시는 아무래도


수학이 중요하긴 하니까.


어찌나 다들 다니는 학원도 감추는지


큰 애가 같은 수학학원 친구한데


다른 수학학원은 어디 다니냐고


물어보니까 ‘비밀’이라고 했대요.


소개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애들 데리고 한 번 가볼게요.







 네, 제가 원장님께 연락해놓을게요.


준서랑 같이 팀 되면 너무 좋겠네요.


준서나 준서 누나는


한국 입시 준비하시는 거에요?


요즘 워낙 해외도 많이


고려하는 분위기라 혹시나 해서요.






 영유, 선행 반대론자에 갑자기 수학꿈 원장반으로 치고 올라온 준서 엄마였기에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교육 로드맵이라도 있는 걸까 알고 싶었다.






제 동생이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기도 하고


남편네도 미국에 많이 나가 있어서


다들 미국으로 대학 보내라고들 많이 해요. 저는 근데 한국인이니까


어릴 땐 한국에서 키워야 할 것 같아서


여기 있는데 나중은


아직 여러 가능성을 놓고 고민 중이에요.












 교육학 박사라니 나름대로 교육 철학은 있어 보이지만 생각보다 구체적인 교육 로드맵이 없는 것 같은 준서 엄마의 모습에 의외였다.


 아니면 아직 안 친해서 어수룩한 척 안 알려주는 걸까. 다른 엄마였다면 교육관이 너무 다른 건지 의뭉스러운 건지 알 수 없어 다신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진맘을 통해 들은 게 있기에 채윤 엄마는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맞춰보기로 했다.














저 이번에 나온 골프 신발 이거죠?


240으로 하나 보여주시겠어요?










 지포레에서 새로 나온 골프 신발이 마음에 들어 백화점을 찾았다.




 직원이 신발을 가지러 간 사이 인스타그램을 켰다.


아린맘의 인스타스토리가 제일 위에 동그란 무지갯빛 띠를 두르고 떴다.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만남










 주말마다 가는 캠핑장에서 친구들과 모인 모양이다.


약간 흔들린 사진 속 와인병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보아왔던 익숙한 얼굴이 몇 보였다.




김민주, 임해리, 박지아..




 그런 아이들이 있다.


딱히 누구를 때리거나 돈을 빼았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위 잘나갔던 그들을 ‘일진’이라 불렀다.


부유한 집 아이들이었고 외모 또한 예쁘장한 아이들이었기에 모여 있으면 늘 눈길이 갔다.




 어쩌면 관심의 중심에 있던 그 무리에 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외모도 성적도 부모님 재산도 다 어중간했던 현주는 존재감이 없었고 그 무리에 낄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고객님, 여기 신어보시겠어요?







네, 네. 사이즈 잘 맞네요.


이걸로 주세요.












직원이 신발을 가져가 박스에 넣고 포장했다.




 그렇게 어울려 놀던 일진 무리 중에는 일부 한국에서 명문대를 간 경우도 있었지만 극히 소수였다. 대부분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기에 에체능 전공으로 돌리거나 유학을 보냈다.


 한국에 남아서 정시를 치른 본인이 승리자라고 생각했지만 인서울 여대를 나온 현주는 입시결과조차 주목을 끌기에는 어중간했다.


 예전에는 싸이월드, 지금은 인스타그램으로 보고 있는 그 동창들의 근황은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와서 핫한 레스토랑이나 꽃가게의 사장이 되었거나 비슷하게 잘사는 부자 남편들과 결혼해서 여유롭게 살고 있었다.






고객님, 결제는 어떤 거로 할까요?








 현주는 백화점 카드를 직원에게 내밀었다.




 J 학원팀이 무사히 짜였다.


 J 학원에서 현주에게 돈을 주진 않지만, 채윤이 학원비를 내지 않으니 매달 50만원을 버는 셈이다. 의사 남편을 만나 나름대로 여유롭게 생활하고 있지만 남편이 주는 생활비만으로는 현주의 허전함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개천용 남편이라 시부모에게서 무언가 나오기는 커녕 오히려 매년 챙겨 드려야 하는 형편이다. 그나마도 좋은 곳 모시고 가려고 하면 사치한다고 겉으로는 질색하면서도 내심 좋아하며 다 따라다니는 시어머니가 꼴보기 싫다. 의사 아들 만들어 놓은 것이 인생 최대 잘한 일인 걸 너무 잘 알고 있고, 너무 제대로 누린다. 할아버지의 재력으로 별일 아닌데도 3대 가족모임을 늘 신라호텔 파크뷰에서 하는 아린맘이 부럽다.






채윤이는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학원비 안아끼고 살게 해야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현주는 혼잣말을 읊조렸다.










엄마아, 으흑흑.






 그릇코너를 구경하고 있던 현주에게 다급하게 걸려온 채윤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너머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채윤아! 무슨 일이야??







엄마, 있잖아. 오늘 학교에서. 으아앙.







채윤아, 너 지금 집이야?


 엄마가 지금 바로 집으로 갈 테니까


집에서 보자.










 백화점을 더 둘러보려 했던 현주는 황급히 차를 끌고 집으로 갔다.


 


 집에 먼저 도착한 채윤이가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현관 입구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채윤아, 대체 무슨 일이야?







오늘 학교에서어 민재가아 ,꺽







민재가 뭐?


좀 진정하고 제대로 말해봐봐.










 현주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앉아있는 채윤이를 일으켜 소파에 앉혔다. 두 손으로 채윤의 양팔을 강하게 움켜 쥐었다.






아까 하진이가 민재보고


꼬추만지는 변태새끼라고 놀렸거든?


그래서 내가 웃었단 말이야.


근데 민재가 나보고 웃는다고


나한테 화내고 소리지르면서


 내 팔을 때렸어. 막 이렇게.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돼.


선생님은 아시고?


선생은 그 때 대체 뭐한거야, 진짜아!












 생각하느라 눈물을 잠시 그친 채윤이가 눈동자를 왼쪽 위로 굴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계속해서 올라오는 근육경련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아까 집에 오다가 그랬어.







민재가 널 어떻게 때렸는데?







팔로 이렇게 퍽.


하진이가 변태새끼가 만진 팔이라고


나보고 이제 더럽대.






 채윤이는 오른팔을 위둘러 왼팔을 때리는 시늉을 해보였다.






민재도 하진이도 다 안 되겠네, 나쁜 놈들.


우리 채윤이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엄마가 다 복수해줄게.












'감히 우리 채윤이 보고 더럽혀졌다고? 내 딸을 때려?!'




 현주는 바짝 약이 올라 채윤을 달래느라 감싸 안은 팔이 부르르 떨렸다.




 이렇게 채윤이가 통곡을 하는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종종 친구들과 문제가 생기면 자지러지곤 했다. 그럴 때면 언제나 현주가 나서서 해결했다.




 같은 유치원을 다니던 하은이와는 취향이 비슷했다.


채윤이가 입고 오는 원피스나 하고 오는 머리 끈이 있으면 다음 주면 똑같은 것을 사 오는 얄미운 하은이와 그 엄마.




 7살 늦여름, 하은이가 휴대용 선풍기를 채윤이 가까이에 가져다 대는 바람에 채윤이의 머리카락이 휘말린 적도 있었다. 하은이가 빼보겠다고 당겨댄 탓에 채윤이는 더 자지러지게 울었고 결국 너무 엉켜버린 머리카락은 가위로 잘라내야 했다.




 그 소동이 있고도 선풍기에 말려 들어간 채윤의 머리카락이 채 다 자라기도 전에 또 일이 벌어졌다. 허리까지 오는 다른 머리카락 길이에 비해 쌩뚱맞게 짧은 구간을 가리기 위해 커다란 리본핀을 하고 대치동 겨울방학 특강에 갔다. 채윤이 머리핀을 보고 에쁘다며 손을 뻗은 하은이의 손톱이 그 때마침 고개를 돌린 채윤이의 눈썹 아래를 스쳤다.




 채윤이는 아프다며 뒤집어지며 울었고 7살 아이의 얇은 손톱은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1센티미터 가량 빨갛게 상처를 냈다.


 지금도 눈썹 아래 희미하게 흉터가 남아있다.


그 날 현주가 참아왔던 하은이에 대한 인내심의 끈이 툭 끊어져버렸다.  함께 묶던 모든 팀에서 하은이는 제외했고 다른 엄마들은 현주 앞에서는 하은이네와 말도 섞지 못했다. 하은이네는 초등 입학 직전 대치동으로 이사갔다.


 


 잔울음이 남아 훌쩍이고 있는 채윤의 눈썹 아래 흉터가 보였다. 이제는 남들은 언뜻봐선 모를 정도로 옅어졌지만 현주는 지금도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분노가 치민다.




'내 마스터피스여야하는 채윤인데..내가 어떻게 키우고 있는데 감히.'




 채윤의 눈물을 닦으며 눈썹 아래 흉터로 함께 어루만졌다. 현주는 입술을 자꾸만 질끈 깨물었다.






채윤아, 오늘은 학원 빠지고 목욕하고 쉬자.


우리 딸 많이 놀랐지?






 지금까지 채윤이를 거슬리게 한 엄마들을 고립시킨 것이 한 두번이 아닌 현주다. 현주는 하진이와 민재에게 어떻게 갚아줘야 할지 구상으로 머릿속이 이내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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