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스토리텔링의 원칙 중,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변치 않은 것이 있습니다. 클라이막스에서는 주인공이 선택과 노력이 빛을 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운이 개입하거나, 제3자가 대신 해결해주면 그 이야기는 마이너로 빠지죠. 혹은 완전 실패한 이야기가 되거나요.
2. 하지만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험, 어디 한두 번이던가요. 코로나 19가 닥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예기치 못한 재앙은 머리 좋고 능력 좋은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불어닥칩니다. 반대로, 한 로또 당첨자는 이런 멘트를 남겼습니다. “노력하는 자는 얻어걸린 자를 이길 수 없다”
3. 나의 노력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확신의 영역이 아니라 확률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복잡계에 살고 있으니까요. 성공을 점치기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은 데다가, 변수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쇄반응을 일일이 계산할 수 없으니까요.
4. 해결책이 있을까요? 최근 스트리밍 방송을 보면 ‘3트’, ‘5트’같은 말이 종종 보입니다. ‘3번 트라이했다(시도했다)’는 뜻이죠. 비슷한 환경에서 조금씩 다른 시도를 한 다음 결과를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누군가는 빨리 실패해서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합니다.인생은 실전인데 말이죠.
5. 거기다 저성장 시대라는 경제 상황은 성공 확률을 무자비하게 깎아내립니다. 다같이 성장하던 시절엔 어느 업계에서 일하든 열심히만 하면 계속 성장하겠지만, 이젠 그렇지 않으니까요. 우리에겐 확률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6.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스토리는 운으로 결정되는 걸 싫어합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음’으로 남겨놓을 수도 없죠. 그렇다고 현실에서 멀어진 이야기를 쓸 수는 없습니다.
7. 그래서 <어벤저스:엔드 게임>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1,400만 개의 미래를 보고 돌아옵니다. <다크나이트>에서 검사 하비 덴트는 동전을 던져 운명을 결정합니다. 초반엔 자신의 능력을 믿기에 양면이 모두 앞면인 동전을 사용하지만, 사고를 당해 동전의 한쪽 면이 불에 타버린 이후 모든 걸 동전 던지기로 결정합니다.
8. 하지만 이런 방법들로 확률을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 개의 사건과 여러 개의 결말을 보여주면 어떨까요? 이야기가 길어지겠죠? 영화로 풀어내기 힘들 겁니다. 하나의 사건과 결말을 보여주는 게 깔끔하죠. <메멘토>부터 <앤트맨>, <컨택트>, <테넷>같은 영화들이 이런 구조를 깨보려고 했지만 새로운 표준을 만들진 못했습니다. 매체의 한계죠.
9. 여기 확률과 운과 대체 역사를 적극 포용하는 매체가 있습니다. 게임이요. 인생은 실전이지만, 스토리텔링은 운을 싫어하지만 게임은 불확실성이…
10. 분량이 길어서 내일 다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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