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게임은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어요. 카드 게임은 시작부터 랜덤입니다. 내가 어떤 패를 받을지가 무작위로 정해지죠? 그 뒤에 상대가 어떤 패를 가졌는지, 저 과감한 베팅이 허풍인지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1. 게임에서 이기려면 대처 능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의 패가 좋은지 나쁜지는 오픈된 패를 보고 (확률 계산을 통해)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상대의 지난 경기 영상을 데이터 삼아 허풍을 꿰뚫어보기도 하죠.
2. 영화는 1회 감상이 기본인 반면, 게임은 여러 판이 기본입니다. 판을 거듭할 때마다 데이터가 쌓여요. 상대방 컨디션은 어떤가, 내가 얼마나 크게 베팅하면 상대가 포기하는가, 허풍칠 때 눈썹을 꿈틀거리는 버릇이 있네 등의 데이터를 종합해 최선의 의사결정에 가까워집니다.
3. 이렇게 판이 거듭되고, 여러 사람과 대전 경험이 쌓이면 유형 파악이 빨라집니다. 고수라면 초반 한 두번의 플레이만으로 상대방의 플레이 스타일을 간파할 수 있겠죠. 비슷한 패턴을 겪어봤으니까요.
4. 정리하자면,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패턴 학습입니다.
5.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인간은 자주 패턴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입니다. 아무리 데이터를 쌓아도 기존에 없던 방식의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죠. 바둑기사 이세돌 님 처럼요.
6. 이때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멘탈이 무너지면 이기기 어렵습니다. 예상치 못한 자극에 대응하는 법을 익힐 수밖에 없겠죠. 더 차분해지거나, 혹은 초인적인 열정을 발휘하거나. 상황 파악, 대처 능력이 올라갑니다. 예측이 어려운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기술이요.
7. 그렇게 게임은 계속됩니다. 패턴 학습과 대처 능력을 발달시키면서요
8. 선택 - 반응 - 대응의 사이클은 빠르게 돌아갑니다. 그게 게임의 DNA이자 엔진이니까요.
9. 최근 웹소설에 ‘회귀물’이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독자층이 게임에 익숙해서가 아니라, 현대인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라서요.
10. 투자자 나심 탈레브는 ‘대체 역사’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역사란 그저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일 뿐이라면서요. 그가 쓴 책 제목부터 <행운에 속지마라(Fooled by Randomness)>입니다.
11.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하나의 선택과 하나의 결과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는 것, 이게 현대인의 무의식 아닐까요.
12. 콘텐츠가 현실적일수록 사람은 더 몰입합니다. 교육 서비스도, 앱도, 조직의 미션도, 어떤 이벤트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합니다.
13. 게임은 현실적입니다. 결과의 불확실성이 현실적이니까요. 게임에서 문제 해결 방식을 배우면 어떨까요? 모호한 질문이지만 저는 여기에 힌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 힌트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 #겜피레터 를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