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성훈 Oct 10. 2024

캐릭터는 실력보다 힘이 세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테크니션이 아니라 캐릭터입니다

흑백요리사 결승전은 요리에만 몰두한 자와 감정을 흔드는 자의 대결이었다.

권성준(나폴리 맛피아)의 요리 설명은 논리적이었다. 이름-생명-심장으로 연결되는 재료 설명, 자신과 출생년도가 같은 와인, 하트 모양의 파스타. 그러나 여기에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이 빠져있다.

이균(에드워드 리)의 요리 설명을 들으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넘칠듯이 푸짐한 떡볶이와 푸근한 인상의 분식집 주인. 이균은 배루르게 먹고 남은 떡볶이에서 느낀 배려, 사랑을 공감시켰다.

그 결과 권성준 셰프를 생각하면 파스타와 리소토가 떠오르지만, 에드워드 리를 생각하면 이민자가 떠오른다. 이것이 제품을 잘 만드는 사람과 캐릭터를 가진 사람의 차이다.

한국에는 인구 수에 비해 테크니션이 많다. 변태적으로 뛰어난 퀄리티를 안정적으로 뽑아내는 귀신 같은 존재들이 곳곳에 있다.

그러나 더 유명하고 큰 매출을 내는 쪽은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캐릭터가 강한 사람이다.

안성재 셰프는 미슐랭 3스타를 받을 자질을 갖췄다. 그는 샌프란에서도, 서울에서도 전례없이 높은 가격을 책정하여 닫혀있던 업계의 상방을 여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빈틈없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그의 자질은 확장에 유리한 방향이 아니다.

매력이란 자신의 단점을 무시하고 장점을 끝까지 밀어붙였을 때 빛나는 무언가이다.

그 매력을 가진 사람이 에드워드 리, 최현석 셰프, 요리하는 돌아이다.

에드워드 리는 자신의 이민자 정체성과 문학적 재능을 결합해 요리로 풀어낸다.
최현석 셰프는 과감한 실험정신으로 익숙한 특별함을 추구한다.
요리하는 돌아이는 험상궃은 인상으로 인해 받은 오해를 요리로 반전시킨다.

셋 다 자기자신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를 요리로 드러낸다. 이때 자신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내향적인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고 자신보다 큰 세계와의 갈등을 반복함으로써 나아간다.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에드워드 리), 업계 내의 포지션(최현석), 고객에게 보이는 이미지(요리하는 돌아이).

그래서 세 사람의 요리는 고유하다. 다른 누군가 이들과 똑같은 메뉴를 똑같은 맛으로 내어놓아도 세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조금도 뺏기지 않는다.

단점이 그들을 제약하지도 않는다. 에드워드 리는 팀플레이와 리더십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최현석 셰프는 파인다이닝 셰프들 사이에서 요리 완성도가 높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요리하는 돌아이는 불안을 공격성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캐릭터가 잡히고 나면 단점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며, 오히려 인간미와 매력을 더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캐릭터는 신뢰를 보장하기도 한다. ‘이 사람은 이런 캐릭터’라는 인식이 박히면 사람들은 캐릭터에게 이미지에 걸맞은 행동을 기대한다. 캐릭터가 잡히면 행동이 예측 가능해지고, 예측 가능하다는 건 믿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브랜드는 곧 신뢰’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이어붙이면 ‘캐릭터는 곧 브랜드'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브랜드는 무형자산으로서 확장성, 시너지를 발생시킨다.

실력을 갈아만든 테크니션도 사회에 필요하지만 시대정신에 더 부합하는 사람, 글로벌 마켓에서 더 크게 성공할 사람은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다.

권성준 셰프는 10년간 식당과 집만 오고 갔다고 말했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도 한국인은 이런 말에 속절없이 감동한다. 자신을 깎아내는 무한한 노력과 성실함. 그의 노력은 값졌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 그에게는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 글로벌 미디어 경험과 캐릭터 강한 셰프들과의 네트워크. 이를 바탕으로 그가 더 멀리 그리고 높이 날아오르길 바란다.

다행히도, 권성준 셰프는 이미 에드워드 리와 친구가 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최현석 팀에서만 자진 이탈자가 나오지 않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