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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Jan 02. 2019

S#10. “갑제6호증의1-유희열의라디오천국 녹취록”

왜 젊은 예술가에게 다정한 질문을 건네는 것이 중요한가.

15.

 재판을 준비하다 보면 변호사 비용뿐만 아니라 소소하게 돈이 계속 나간다. 앞서 쓴 글처럼 입증자료 준비는 ‘사고를 확장시키는 작업’이다. 그리고 ‘잊고 있던 나의 과거의 흔적’ 혹은 ‘이런 게 입증자료가 될 수 있을까’하는 것들을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


 처음 앨범 내고 함께 작업 한 친구와 ‘좋아서 난리가 난 일’이 있는데 바로 89.1 KBS cool FM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일요 야설 무대에 출연하게 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91.9 MBC FM4U <유희열의 FM 음악도시>의 애청자였다. DJ 유희열 님과 그의 음악을 무척 좋아했는데, 직접 만나서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완성한 앨범 이야기를 나눈다니 정말 신났다. 녹음 방송이었지만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해야 되니 무척 떨렸다. 방송은 즐거운 추억이 되었고, 그 해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이 선정한 올해의 노래 중 1984 EP 앨범에 수록된 ‘한동안 멍하니’라는 곡이 선정되어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한동안 멍하니’는 남자 친구와 크게 싸우고 만든 노래인데 시간이 흘러 그 남자 친구는 나의 남편이 되었다. 우리는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어 현실을 살고 있었다. 반복되는 현실에 지루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무탈하게 하루하루 큰일 없이 지나가는 것을 안도했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던 중 피고인 대기업과 ‘소송’이 발생했고, 나는 20대 시절 나의 흔적들을 뒤적거려 보았다.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당시에 발매된 앨범을 주변인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나는 갖고 있지 않았다. 결국 당시 출판사 마케터로 근무하며 만난 서점 직원이자 ‘유희열 님의 오랜 팬’으로 토이 홈페이지에서도 종종 활동하던 K님께 연락했다. 거래처 직원이지만 회사 그만둔 이후에도 종종 이야기 나누는 좋은 친구였기에 부담 없이 연락했고,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며 바쁜 와중에도 한걸음에 달려와 나의 앨범과 당시 1984가 출연한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일요 야설 무대 녹음 파일을 전해주었다. 그의 아카이빙에 놀랐고, 정말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예술가가 자신의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 기록을 잘 관리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겠구나 생각했다. 신문, 방송, 잡지 등에서 예술가를 인터뷰 한 담당자는 통상 그들에게 큰 비용 없이 섭외 진행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자료를 챙겨주는 문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출연료와 함께 준다면 더욱 좋다. 만약, 나도 K님이 자료 갖고 있지 않았다면 방송국에 연락해 약 10년 전 내 출연내용 찾기 위해 상당한 돈과 시간을 썼을 것이다. 어쩌면 입증자료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K님이 전해준 방송 출연 녹취 파일을 들어봤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기대됐다. 대화는 무척 유쾌했다. DJ 유희열 님은 음악 만드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음반 만드는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이 어떻게 만나 팀을 만들었고, 음악은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으며, 음반 만드는 과정을 모른다면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질문들을 건네주었다. 따뜻한 관심과 다정한 질문이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에게 창작에 대해 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고, 나도 그런 속 깊고 유쾌한 질문을 건넬 수 있는 어른이고 싶었다. 이제 30대가 된 내가 이 소송에 좀 더 용기를 내 봐야지 생각하게 된 계기기도 했다.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내가 방송 오디오 파일을 직접 ‘녹취’해야지 생각했는데, 재판부에 제출되는 자료는 전문 ‘속기사’를 통해서 번문한 원고만이 입증자료로 쓰일 수 있다. 또 돈이 나가는구나. 가슴 철렁했다. 실은 그전까지 ‘녹취록’을 이렇게 작업해서 제출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지속적으로 돈이 나가던 상황이라 ‘녹취 비용은 또 얼마가 들까?’ 싶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녹취하는 업체 3곳을 검색해 해당 파일을 보내 견적 문의하고, 가장 저렴한 혜정 속기에 의뢰했다. 의뢰하며, 앞서 보도된 한겨레신문 링크를 함께 전달드렸고 이 녹취록이 쓰이는 소송이 어떤 사건인지도 설명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큰 그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임할 때 조금이라도 더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녹취하시는 분도 ‘일의 맥락’을 이해하신다면 조금 덜 지치고, 좀 더 신경 써 주시지 않을까 싶었다. 몇 번의 수정 작업이 있었는데 가능한 범위 내에서 끝까지 꼼꼼하게 작업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2009년 9월 7일 출연한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일요 야설 무대 녹음 파일과 녹취록을 재판부에 입증자료로 제출하여 저작권자로서 나의 주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수 있었다. 제출된 녹취록 중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 일부를 공개한다.

녹취록 앞면에는 녹음장소, 녹음일자, 대화자, 작성일자를 쓴다.
'청춘', '집중'이라는 두 단어가 안 어울리는 단어인데 잘 붙어있다는 유희열님의 이야기와 그 문장을 쓰게 된 계기를 방송에서 이야기한 내용.


◐ 유희열 : ‘청춘’, ‘집중’이라는 말 참 두 단어가 안 어울리는 단어 중의 하나인데 두 단어가 잘 붙어있어요.

◐ 오수경 : 발음하기도 힘들지 않아요?

◐ 김정민 : 청춘집중.

◐ 유희열 : 이게 무슨 의미에서?

◐ 김정민 : 제가 예전부터 항상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난 우리가 좀 더 청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되게 치열하기 때문에 치열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청춘이라는 이 시절에, 그리고 또 청춘이라는 내 삶의 태도에 좀 더 집중해서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유희열 : 아~ 그랬군요. 되게 멋진 뜻이구나. 누가 지은 거예요?

◐ 오수경 : 이 친구(김정민)가요.

◐ 유희열 : -웃음-

1984 EP 앨범의 작업 방식과 수록된 곡들에 대해 방송에서 이야기 한 내용.


◐ 유희열 : 작업과정은 어떻게 이뤄졌어요?

◐ 김정민 : 우선요, 저희가 그 전에도, 앨범작업을 하기 전에도 ‘공연을 해야겠다’란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앨범작업을 먼저 했어요. 왜냐하면 둘이 형태가 다른 밴드들하고 다르기 때문에 ‘곡을 좀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 공연으로 우리가 모르는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악기를 힌트를 얻자’ 그래서 합주할 때마다 카메라로 찍어서 모니터 했었거든요.

◐ 오수경 : 예, 저희 정말 지독하게 했어요. 모니터 해가지고,

◐ 김정민 : 진짜.

◐ 오수경 : 드럼이 하이에서 어떻게 쳤는지 키가 어떻게 했는지 다 카피한 다음에,

◐ 김정민 : “똑같이 쳐주세요.” 막 이러고.

◐ 유희열 : -웃음-

◐ 오수경 : 그중에 좀 별로인 건 버리고.

◐ 김정민 : 진짜로.

◐ 오수경 : 그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어요.

◐ 김정민 : 그리고 여기 담긴 5곡은 편곡이 가장 어려운 5곡이에요.

◐ 유희열 : 아, 그래요?

◐ 오수경 : 네.

◐ 김정민 : 네.     


최종 녹취록이 만들어지기 전에 초안을 메일로 확인하고, 수정 요청하는데 속기사님께서 수정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정확하게 안내해 주신다.
해당 녹취록을 번문한 속기사님의 확인이 녹취록 마지막장에 들어간다.


 ※ 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브런치에 게시하는 이유는 저와 같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저작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본 게시물을 보시고, 임의의 매체 및 저작권법 관련 강연 등에 활용하실 경우 반드시 사전 협의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판결문은 SNS 등을 통해 공개하였으나, 본 브런치에 소개되는 내용은 제 개인의 정보가 있어 보다 정확하게 소개될 수 있길 바랍니다. 사전 협의 없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문의 : dearmothermu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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