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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Apr 29. 2024

'아이'라는 존재

성장하고 있는 하나의 인격체다.

아이들 역시 하나의 인격체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사실을 잊지 않아야만 한다.


1년에도 몇 번씩 화가 나게 만드는 뉴스를 보게 된다.


어떤 어린이 집에서는 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아이를 폭행하고, 내 자녀임에도 계속 울기만 한다고 폭행하다 사망에 이른다. 또 어떤 이들은 힘없는 아이들에 대해 성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사한다는 이름으로 아이가 다시 이 상황을 떠 올리게 만들어 더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아이가 평생 트라우마에 싸여 상처 가득한 사람으로 자라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사실 내가 직접 당한 일은 아니기에 무심히 넘어간 적도 있다. 그저 "나쁜 사람들..."이라며 공분하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런데 조카가 태어나고 나와 아내가 직접 낳은 두 아이들을 기르며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뉴스가 됐다. 아이를 키우면 사람이 달라진다더니 나도 어느새 그렇게 된 모양이다.


우리 집 아래층에는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과 미취학 아들이 있는 이웃이 있다. 이 아이들은 의례히 떠올리는 남자아이들과 같아서 동네방네 소리도 지르며 활발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이다. 가끔씩 들리는 아이들 엄마의 큰 소리와 엄마한테 혼나고 우는 소리도 들리기도 한다. (우리 집은 재건축을 추진 중인 오래된 아파트라 큰 소리는 올라온다)


며칠 전 밤 9시가 넘은 시각. 그 아랫집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냥 훌쩍훌쩍 우는 거라면 들리지 않았겠지만 대성통곡이다.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고 분한지 소리는 점점 커지고 이내 괴성을 지르며 울기 시작한다. '잠깐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웬걸, 거진 1시간 가까이 계속해서 들리고 울음은 잦아들지 않는다.


"무슨 일 있나?, 아빠가 아이 때리는 거 아냐?"라며 아내는 걱정의 말을 쏟아낸다. 한두 번 정도 아랫집 부부 싸움 하는 소리가 들린 적이 있었는데 물건을 부수는 소리도 들었던 터라 혹시나 아이들에게 그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아이의 대성통곡은 1시간 전이나 그 때나 동일했다. 추측해 보건대 다행히 때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인터폰을 들어 경비실에 연락을 했다.


"아랫집에 아이가 크게 우는 소리가 들려요. 아이한테..."

"아 그래요? 제가 연락해 보겠습니다"


더 화가 났다.


단순히 시끄럽다고 연락을 한 건 아니었다. 크게 우는 소리가 오래 들리는데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니 한번 확인이라도 해봐 달라는 거였다. 물론 경비아저씨라고 한들 그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대응을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경비아저씨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그저 시끄러우니까 조용하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끝까지 듣지도 않고 그냥 끊어 버렸다.


아내와 나는 곧바로 옷을 챙겨 입고 경비실에 내려갔다.


"쉬고 계시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연락을 드린 건 아이가 너무 오랫동안 대성통곡을 하며 절규하듯이 울고 있는데 아이가 걱정돼서 한번 확인해 달라고 말씀드린 거였습니다.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아... 죄송합니다. 보통 시끄럽다고만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렇게 오해했네요. 제가 연락해 봤는데 그 댁 사모님이 그저 아이가 울고 있다고만 하고 조용히 시키겠다고 하고 그냥 끊어버렸네요"


더 할 말은 없었다. 중간에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기도 곤란할 것이고, 권한도 없는 분에게 더 말하는 것도 무의미할 듯했다. 경비아저씨도 분명 곤란해할 것이다.


그 이후 아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직접 내려가서 물어보기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라며 한참을 걱정만 하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저녁, 아랫집 엄마를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그분은 나를 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후 넌지시 나에게 말을 건다.


"그날 저희 집 때문에 힘드셨죠?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아이 걱정이 앞서서요. 지금은 괜찮은가요?"

"네... 아이 아빠랑 의견 충돌이 좀 있었어요"


더 자세하게 듣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인터폰 한 번에 잠잠해졌는지 묻고 싶었다. 아이와 충분히 대화하고 서로 이해를 했는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아이들은 아직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 자기표현에 대해 서투를 수밖에 없다. 갓난아기 시절에는 그 표현이 울음으로 나온다. 불편하거나 배고프거나, 아프거나 모두 울음으로 표현된다. 부모들은 그 울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만 대응할 수 있다.  배고프면 젖을 물려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아이는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또한 그 울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는 건 아이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사랑이 뒷받침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 아이가 말을 하고 어느 정도 의사표현이 되면서,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표현의 방법과 수단은 더 늘어난다. 말 그대로 부모와 의사소통이 더 원활해진다. 이 시기부터 아이와 부모와의 갈등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부모들은 머릿속으로는 아이의 표현을 잘 살펴보고, 아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지친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로 아이가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대응하다 보면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반응한다. 사람이라 그렇다.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와 아이에게 쏟아내기도 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내 아이니까, 내가 나중에 보상해 주면 되니까... 이런 생각에 아이의 존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가 더 중요해지고 내가 편한 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아이들도 엄연한 인격체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다.


아이들은 세상을 조금밖에 살지 못해 주변을 살피거나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서투르고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의 잣대를 들이대고 왜 내 생각대로 못해주는 건지, 왜 그것밖에 못하는지를 나무라는 것은 안된다. 단지 그들은 모를 뿐이다. 모르는데 어떻게 잘할 수 있으랴.


부모로서의 역할 중 하나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자기표현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내와 이해,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다. 부모가 아이가 성장하도록 공간을 제공하고,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들 치고 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인정받고 존중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러려면 아이가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야 하고,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아이는 내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경험한다. 그래서 아이가 표현이 서투르고 내 뜻대로 못 따라오면 아이가 아직 그 상태라는 걸 인정하고 가르쳐 주고 기다려 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점점 아이는 혼자 걸을 수 있게 되고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어 한다. 점점 아이는 자라서 스스로 부모의 도움 없이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게 되고 부모의 곁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삶을 살아간다.


이 과정 속에서 내 아이가 나의 분신이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자칫 내가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것을 아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마땅히 버려야만 한다. 나와 아이의 존재는 엄연히 다른 존재고, 살아야 할 인생이 다르다. 나와 같을 수 없는 다른 인격체다.


그런데 부모도 사람이기에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모든걸 완벽하게 채워주려는 욕심도 버려야 한다. 부모로서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많은 것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실패하는 경험도 필요하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고,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도 알게 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부모들은 주어야 할 것과 주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경계를 잘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다 채워주려 하면 아이 스스로 성장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너무 좌절만 안기게 되면 아이는 상처 가득한 사람으로 자라난다.


우리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아이를 그 존재 자체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분명 나와는 다른 사람이기에 원하는 것과 행동 하나하나가 나와는 다르다. 모든 것을 부모의 입장에서만 판단해서는 안될 일이다. 부모와 아이의 사이에도 약간의 거리는 필요하다.


오늘은 아랫집에서 아이들이 크게 웃으며 즐겁게 노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들으면 분명 소음이지만 이 소리는 즐거운 소음이다. 이 아이들과 부모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고 성장할까. 오늘은 어떤 인정을 받으며 자랄까. 부디 아랫집 아이들이 항상 건강한 웃음이 끊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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