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산티아고 그리고 두 번째 주 이야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적지인 산티아고 보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더 그리워하겠구나,
성재랑 영상통화하며
헥헥 올라갔던 그 언덕을,
재민이랑 대화하려
자리 깔고 앉았던 그 길목을,
새벽녘
개들의 울부짖음에
벌벌 떨며 한 걸음씩 겨우 나아가는
내가 그립겠구나,
그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길 위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어떻게 변할지
혹은 변하지 않을지
심지어 카미노에 왜 오게 됐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카미노가 불러서 온 것 인걸,
차차 알려주겠죠.
그래도 이 길이 끝났을 땐
하나라도 답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오늘은 전날 묵은 숙소에
여권이랑 카드를 두고 길을 나섰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그걸 알게 됐죠.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걸어왔던
길었던 그 길을 돌아갔습니다.
돈도 많이 깨졌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제 카미노인걸요.
문득 이 길이,
이 과정이 산티아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걷기 시작한 그 순간,
어쩌면 산티아고에 도착한 게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작고 투박한 카페에서
주인 할아버지가 ‘코레아’라고 말하며
껴안아 주었고,
조용한 마을의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손에 사탕을 쥐어 주셨습니다.
도로 위 운전자는 저를 보더니
씩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
혼자 푸하하 웃음이 터지는가 하면,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이 너무 예뻐
길 위에서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참 위대한 자연입니다.
감히 말로 어찌 표현 못할.
온갖 타이틀과 수식어로
스스로를 대변하려 했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이런 위대한 풍경에도
감히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데,
더 이상은 스스로를
어떠한 이름에도
가두지 않기로 합니다.
이름 없는 이 바다 역시
그 자체로 존재하듯
나를 대표하는 건 오직 스스로이기로
마음먹습니다.
혼자 걸으니 힘들 때 옆에
징징거릴 사람이 없습니다.
다행입니다.
혼자서 헤쳐 나갈 수 있는 일들입니다.
혼자가 좋다면 당신은 강한 사람입니다.
그리움이 많다면 당신은
좋은 친구가 많은 사람입니다.
고로 당신도 좋은 사람입니다.
토마르에선 우연히 천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현명한 어른 천사였습니다.
문득 그 처럼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 질문으로 인해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물음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제 순례의 터닝 포인트를 남겼습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그것이 꼭 비극은 아님을,
엇나간 계획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것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길 위에 선지 어느덧 2주가 지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거창한 마음으로
걷지 않습니다.
어쩌다 보니 순례자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