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산티아고 그리고 첫 주 이야기
- 나는 아직도 왜 내가 이 길 위에 섰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 그런 건 없어. 산티아고는 네 인생 가장 알맞은 시기에 널 불렀고, 넌 그 부름에 답한 것뿐이야. 그게 다야.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은 편안해졌다. 끊어질 것 같은 어깨 위의 짐이 불편해 내렸다 들었다를 반복하면서 내가 왜 이곳에 있을까 하는 물음이 수없이 머리를 덮쳤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회의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밀물로 되돌아와 나를 적셨다. 허우적거리며 정신 못 차리는 초보 순례자에게 베테랑 순례자가 오래된 조언을 건넸다.
- 네가 산티아고에 도착하지 못한대도 사실 별로 문제 되지 않아. 지금까지 네가 걸어왔다는 게 중요하지.
하늘에서 비는 내리고, 몸은 지쳤고, 더 이상 순례를 지속해 나갈 이유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호스텔을 나서면서 머리는 이미 기차역을 향했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으면 나는 오늘도 삼십키로를 걸어야 할 테고 또 터질 것 같은 다리를 감싸며 잠들어야겠지. 그래 나에게 돌 던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그만하자.
근데 남이 내게 돌 던지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돌 던지는걸 더 무서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스스로가 밉고 서러워 표정이 계속 구겨졌다. 거울로 봤다면 참 웃겼을 그 얼굴로 발이 향하는 방향을 돌렸다. 순례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 멈춘 줄 알았던 나의 순례 시계는 다시 돌기 시작했고 막막했던 하루를 마친 채 오늘을 기록해본다.
성재가 걸으면서 뭐 깨달은 거 없냐고 물었을 때 거창한 걸 대답해줘야 하나 싶어 어버버 했는데, 딱 하나 말해주고 싶은 게 생겼다. 이건 대단한 깨달음도 아니고 엄청난 진리도 아니다. 누군가에겐 코웃음 치며 넘길 만한 단순한 말이지만, 물론 그 사람은 콧대가 낮을 것이다.
철저한 결과중심주의 사회를 살아오면서 가시적인 결과물에만 목숨 걸었던 내가, 오늘에서야 결과보다 과정에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걷는 날들을 줄이면서도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겠지. 다만 그때도 내가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라는 물음에 단연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좀 더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어 이 길 위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