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는 시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림 Apr 04. 2022

에르베 기베르《연민의 기록》

단어는 아름답고, 단어는 정확하고, 단어는 승리한다.

《유령 이미지》 한 권만을 읽어본 작가였다. 그마저도 무엇을 알아서가 아니라, 표지의 아름다운 얼굴에 홀린 듯 산 책이었다. 유진작가님이 그의 새 책을 번역하신다기에 《연민의 기록》 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번역되어 나와 있는 책들을 모두 읽었다.



지속적으로 약해지는 몸의 상태를 경험한 적이 없다. 확 안 좋았다가 서서히 좋아진 경험만 몇 번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투병이라기 보다는 삶의 한 과정이라 보아야 맞을 것이다.그러니 겪어보지 않은, 끝을 아는 몸의 기록은 낯설고 두렵다. 솔직한 이야기는 내게 언제나 부끄러움과 탄복을 동시에 느끼게 하므로. 그 기록이 솔직하고 섬세하면 더욱 그렇다.



그의 글은 처음부터 읽는 나를 그의 경험으로 강하게 끌고 들어갔다. 내가 그인 것처럼 고통을 느끼며 읽어야 했으나 괴롭지는 않았다. 아름다움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가 끝없는 절규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써낸 문장을 아름답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그러나 그 자신이 글을 쓸 때 가장 살아있다고 말했으며, 단어는 아름답고, 단어는 정확하고, 단어는 승리한다고 했으므로, 읽는 내가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그저 그에게 단어를 찾아내 주어 고맙다고 하면 될 것이다.



마침표가 있어야 할 곳에 쉼표를 찍는 방식으로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벌써 몇 번의 밤을 그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는 독자였다면 좋았을 텐데.



글을 읽으며 많이 헤매는 나 같은 독자는 종종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길을 찾곤 하는데, 유진 작가님의 글은 정말 최고이다. 늘 그렇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안이희옥《버지니아 울프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